[심층기획] 공공기관 통폐합은 과연 혁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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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공공기관 통폐합은 과연 혁신일까?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5.09.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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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다른 기관들의 '근본 없는' 통폐합, 기관 내부서도 반대
인천지역 문화의 산실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 전경. 인천시는 이 시설을 관리하는 인천문화재단을 다른 연구기관 등과 통폐합하는 안을 검토 중에 있다.
 
지난 7월 29일 행정자치부가 지방자치단체의 혁신을 명목으로 발표한 ‘인천시 공공기관 통폐합안’은, 지역사회에 경악스러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인천문화재단과 인천발전연구원, 강화고려역사재단을 하나로 통폐합하고, 경제통상진흥원과 신용보증재단, 그리고 테크노파크와 정보산업진흥원을 역시 통폐합, 그리고 인천도시공사의 관광사업부와 의료관광재단, 국제교류재단을 인천관광공사로 흡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같은 행자부의 통폐합안을 확인한 지역사회에서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반응이 나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해도 해도 너무한 억지 통폐합’이라는 것이다. 경제 분야의 기관을 통폐합하는 내용도 지역경제계 내에서 '억지'라는 주장이 적지 않았지만 비슷한 카테고리에 있으니 넘어간다 치더라도, 관광공사에 흡수되는 기관에 국제교류재단이 포함돼 있는 것은 시선에 따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인천시의 통폐합 계획안. 인천문화재단이 인천발전연구원, 강화고려역사재단과 ‘연구 분야’ 명목으로 통폐합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인천문화재단을 인천발전연구원과 강화고려역사재단으로 묶어 통폐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 세 기관이 성격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데다 설립 취지 역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통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들 기관 내부와 시민사회의 전반적인 반응이다. 특히 ‘인천문화재단+인천발전연구원+강화고려역사재단’의 통합안은 ‘명분도 대의도 없다’는 이유로 세 통폐합안 중에서 가장 많은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논란의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바로 인천시였다. 시는 지난 8월 초 ‘인천시 공공기관 혁신을 위한 설문조사’라는 내용의 대시민 응답질의서를 시 홈페이지에 배부했다. 내용은 “시민에 대한 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설치된 공공기관이 지역의 다양한 공공복지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고 공공기관의 역량과 경쟁력을 제고해 신뢰받고 소통하는 기관으로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구체적인 혁신 실행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는 이유로 통폐합안을 공개한 것이다.
 
더구나 확인 결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통폐합안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나타나 있었다. 인천문화재단은 ‘문화관광분야’라는 명목으로 국제교류재단과 의료관광재단과 묶여 있으며, 인천발전연구원과 강화고려역사재단은 여성가족재단과 인재육성재단 등과 같은 카테고리의 기관으로 묶은 부분이 나와 있다. 심지어 인천의료원은 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과 묶여 있는 부분도 발견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설문의 내용(아래 그림 표시)에 ‘혁신’이라는 단어를 ‘남발’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용하면서, 통폐합이라는 내용의 표현은 그 어디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행자부는 이를 ‘통폐합 및 기능 조정’이라 되어 있다.). 이 설문만으로 보면 이것이 통폐합을 위한 내용인지의 여부조차 판단하기 힘들 정도인데, 현재 40개에 이르는 공공기관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를 안내하지 않은 채 8가지의 ‘혁신 사항’을 고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시가 공공기관 혁신을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 설문에 응하는 시민들로 하여금 기관의 정보나 내용 등이 전혀 없이 혁신 사항만을 기재토록 하는 부분이 보인다.
  
이런 설문의 내용이 그간 시 산하 공공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아 시민들이 신뢰할 수 없는 기관이 됐다는 분위기를 시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할 정도였다. 산하의 모든 공공기관 중에는 문제가 많은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는데, 이들 모두를 ‘일 못하는 한통속’으로 간주해 모두가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소위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하는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말 인천 문화예술 관련 민간단체 15개소의 관계자들은 인천시청에 모여 행자부와 시의 통폐합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때 이들 관계자 중 한 사람이, 당시 “인천시가 이들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을 스스로 조장해 혁신의 당위성을 마련하려고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발상 자체가 ‘혁신=통합’으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납득 불가능한 통폐합안을 위해 인천시가 분위기를 잡으려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인천문화재단 등 세 기관도 모두 ‘반대’ 입장 분명히
 
인천발전연구원(사진)은 문화재단 등과의 통폐합에 대해 "상위법 등이 다른 만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지역진흥재단
  
이번 '통합' 논란에 대해 인천발전연구원 측은 “일단 상위법이 다른데 어떻게 통폐합을 한다는 것이냐”며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천발전연구원 관계자는 “행자부의 그 발표를 들었을 때 내부에서는 뜬금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며 “인천발전연구원은 시의 주요 정책에 대해 연구하는 곳으로 문화재단 등과는 기능도 다르고 설립된 상위법 등도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지방자치단체마다 관할 연구기관이 모두 배치돼 있는 상황에서 인천발전연구원이 다른 기관과 통폐합돼 없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이면서 “시가 신중치 못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인천발전연구원이 문화재단과의 교류가 많지 않으며 기관 별 직원들끼리도 거의 모르는 상황에서 이걸 통폐합한다고 무엇을 얻을 지가 의문”이라며 “취지도 명목도 도대체 모르겠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강화고려역사재단 역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화고려역사재단 측의 정학수 연구기획팀장은 “우리 내부에서는 통폐합의 계획이 치밀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팀장은 “인천발전연구원은 시의 정책에 대한 연구를 위한 기관이고, 문화재단은 말 그대로 인천지역의 문화예술을 위한 기관이며, 우리 재단은 역사와 관련한 연구조사에 중점을 두고 시민들에게 역사에 대해 정보를 주고 교육 정도를 부수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세 기관의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이같은 통폐합안을 전해 들었을 때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내부의 의견을 정리해 시에 보낸 상태”라고 전했다. 정 팀장에 따르면, 강화고려역사재단이 지난 2013년 출범 당시 지역 역사의식에 대한 문제점과 방향 등이 지금도 큰 의미를 갖고 있고, 강화고려역사재단의 혁신이라면 성격이 다른 기관들과의 억지 통합보다 설립 취지의 목적을 달성키 위한 기능 강화가 보다 본질적인 혁신이라는 점 등의 내용을 담아 시에 공문으로 보냈다는 것.
 
정 팀장은 “우리가 통합을 반대한다기보다는, 성격이 전혀 비슷하지 않은 기관끼리 합병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시에 보낸 것”이라며, “현재 우리 재단의 연구직이 4명밖에 되지 않는데 이를 보강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바이지만, 정녕 통합을 해야겠다면 인천의 역사를 연구하는 기관끼리 통합해 ‘인천역사재단’ 정도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 등은 괜찮은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정 팀장은 “공통점이 거의 없는 인천발전연구원과 인천문화재단 등과 함께 묶어 통폐합하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해당 기관 모두가 반대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정 팀장의 예상은 '당연하게' 적중했다. 인천문화재단 역시 이러한 통폐합안에 대해 내부에서 반대의 뜻을 비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허은광 문화사업본부장은 “인천시 내부에서 이들 기관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허 본부장은 “인천시가 문화재단 내에도 연구팀이 있기 때문에 인천발전연구원과의 통합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문화재단 내에 연구부서가 없진 않으나 우리 연구부서는 재단에 필요한 사업과 행사 등을 연구하는 것인 만큼 인천발전연구원과의 연구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면서 “지난 7월 내부 혁신안을 시에 제출했는데, 이 혁신안의 내용에는 이들 기관에 대한 통합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허 본부장은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으로 각 지자체들이 우리같은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지역 문화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라며 “우리 문화재단을 통해 국비를 매칭하거나 아예 국비가 지원되는 사업이 전체 43%에 달하는 상황인데 만약 이러한 통폐합을 추진하게 되면 이러한 지원들이 없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걸 간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 지역사회도 극명한 반대 움직임 이어져
인천시는 “확정 아니다” 해명했지만...

 
인천시 관계자는 이들 통폐합안에 대해 “이들 기관을 반드시 통폐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기관 별 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해 혁신 방안을 제출토록 했고 각 기관의 기능들을 조정코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기관 별로 중복되는 사업들이 분명 있고 이를 통해 더 근본 취지에 맞는 사업들은 이동하는 등 일부 조정을 하겠다는 것이지 통폐합을 확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가 이들 기관의 통폐합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문제로 지적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시 관계자는 “이들 기관들의 사업이 많이 중복된다면 이는 통폐합 대상”이라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럴듯한 이야기이긴 하나 성격부터 다른 인천문화재단과 강화고려역사재단, 그리고 인천발전연구원을 ‘연구 분야’라며 한데 묶어놓고 이를 통폐합 대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실제 이들 기관의 사업이 중복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런 통폐합안의 원인으로 재정난이 언급되는 것 또한 문제다. 이와관련 시 관계자는 “재정난도 물론 있고 거기에 효율화를 위함도 있다”고 말했다. 근자에 나타난 재정악화 때문에 무려 10년이나 된 문화재단에 구조조정의 칼을 대려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천시의 경우 그 재정악화가 지난해 아시안게임으로 결정타를 맞은 것이 분명함에도 문화재단에 이를 돌리고 있는 셈이라 더욱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다수 나오고 있다.
 
인천지역 민간 문화예술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달 인천시청서 인천문화재단과 타 기관과의 통폐합안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
 
이미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이나 성명 등을 통해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냈다. 지역 문화예술 관련 단체들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통해 “인천시는 인천문화재단을 인천발전연구원, 강화고려역사재단과 ‘연구 분야’라는 이름으로 묶어 통폐합하려는 계획을 지역사회와의 상의나 공론화 과정도 없이 포함시키려 했다”면서 “이들 세 기관의 어설프고 억지스러운 통폐합 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각 기관 자체의 출범 목적과 고유한 기능, 차별화된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부 조직과 사업, 운영 체계를 점검하는 동시에 그 전문성과 공공성,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의 열린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세 기관 관계자들이 털어놓은 반대의 의견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측면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인천시가 지역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을 이유로 통폐합을 검토하면서도 인천도시공사로부터 관광공사를 독립시켜 출범하는 것을 두고 시민단체 및 문화예술단체들의 반발이 거센 분위기다. 통합을 할 거라는 기조라면 거기서 ‘시장 공약’이라는 이유로 관광공사만 예외로 빼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것이 이 단체들의 입장이다.
 
지역 문화예술단체인 ‘스페이스 빔’의 민운기 대표는 “심각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돼 지역사회에서 반대해왔던 인천관광공사의 설립은 강행하면서도, 지난 8월 시의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인천관광공사와의 통합 작업을 벌이고 있는 국제교류재단과 의료관광재단을 인천문화재단과 묶어 표기하는 것은 추후 인천문화재단을 관광공사에 통합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면서 “문화를 관광의 한 수단으로 문화를 생각하는 현 유정복 시장의 정책에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을 말했다.
 
민 대표는 “특히 인천문화재단은 지난 2005년 당시 전국 유일하게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 없이 통폐합을 언급하고 결정하는 것은 시민문화주권에 대한 도전”이라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계획안이 시 문화예술과를 배제한 상태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물론 민 대표의 주장(문화예술과 배제, 문화재단의 관광공사 통합 의도 추측 등) 중에서는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고 아직은 추측이나 주장 등의 단계인 것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민사회의 요구 아래 만들어진 문화재단에게 통폐합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시민문화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의 타당성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인천시민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일 터이다.
 
지역정가에서도 문화재단 등의 통폐합안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의당 인천시당은 지난 8월 “연구분야로 통폐합되는 인천발전연구원과 인천문화재단 강화고려역사재단의 경우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통합계획”이라며 “인천문화재단은 문화연구 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정책을 총괄하고 그에 대한 예산을 편성 집행하는 등 인천문화영역을 대표하는 컨트롤타워 같은 기관인 만큼,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문화재단의 통폐합은 시대의 흐름에도 역행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인천시가 진행했던 설문조사에 응한 시민은 총 195명이었다. 300만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인천시가 만약 이 설문조사를 통폐합의 근거자료로 내세운다면 큰 무리일 것이다. 그것을 시민사회가 감안해줄 리는 만무하다.
 
인천시의 공공기관 혁신 관련해 추진했던 설문조사 페이지. '참여자 195명'이 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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