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과격시위 속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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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과격시위 속의 불편한 진실
  • 박인규
  • 승인 2015.11.18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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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박인규 / (사)시민과대안연구소 소장

최근 한국과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두 사건으로 한국의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와 언론이 매우 부산하다. 129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IS(이슬람국가)의 잔혹한 테러로 인해 유럽과 전 세계로 테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결코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국제사회 역시 테러행위를 규탄하며 이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에 서울 도심에서는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렸다. 2008년 이후 최대 규모의 도심 집회에서 10만이 넘는 참가자들이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고, 광화문을 향해 행진하는 집회 참가자들과 차단벽을 설치하고 물대포를 쏘면서 이를 저지하는 경찰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부상을 당했고 심지어는 참가 농민 한 명이 직사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태에 빠져있는 상태다.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폭력’을 매개로 하여 연일 언론의 주요 기사로 다루어지면서 묘한 시점에 묘한 방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여당과 많은 보수성향의 언론은 집회 참가자들의 다소 과격한 행위를 IS에 의한 테러와 오버랩시키며 마치 동일한 행위인 양 취급하면서 테러대처와 과격시위 근절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에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들과 밥쌀 수입 반대를 외치는 농민들,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공권력에 저항해 흉기를 휘두르고 도심을 마비시키는 폭도로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테러분자를 연상시키는 말과 글의 성찬을 벌이고 있다.

테러는 물론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어떤 사건과 행위에는 그를 발생시킨 원인이 존재하는 법인데 이에 대한 분석과 논의는 접어둔 채 상대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응징만이 한껏 부각되고 있다. 사건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 사람마다 집단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이해관계와 이념 그리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그 해법 또한 마찬가지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금 당장은 사건의 충격에 휩싸여 있어서 우리의 이성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나설 만큼 냉정하게 작동하기에는 다소 이르다 하더라도 현상에 대한 표피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IS의 테러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자비없는 응징을 외치며 즉각적인 보복에 나서는 프랑스 정부의 모습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로서 당연한 대응이라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희생자들을 눈물로 애도하는 많은 프랑스 시민들 가운데 이러한 경색된 분위기에 편승해 인종차별을 부추기며 난민유입을 반대하는 세력이 득세하고 오랜 세월 프랑스 사회가 쌓아온 사회적약자들에 대한 관용의 미덕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대착오적인 21세기판 대십자군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IS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끊임없는 폭력과 이에 대한 대응폭력의 악순환은 단지 그들이 무지해서도 아니고 천성적으로 폭력을 좋아해서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미국과 서방세계가 취해온 중동에 대한 인식과 전략에 기인하는 것이며 여기에 중동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역사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 천착해서 근본원인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최첨단 무기를 동원한 폭격도 대규모 지상군 투입을 통한 전면적인 군사적 대응도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에 휩싸여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설사 IS가 약화되거나 소멸한다하더라도 탈레반과 알카에다 그리고 IS로 이어지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폭력의 진화를 본다면 더욱 잔혹한 폭력테러집단이 탄생하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일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700조원에 이르는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은 재벌기업들의 반대편에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비정규직 양산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저항이 있고, 한미FTA를 비롯한 거의 모든 FTA의 피해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것도 모자라 정부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한 가입 추진에 몸서리치는 농민들의 절규가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식들을 차가운 바다에 잃었지만 진상규명 요구에 성의없이 대처하는 정부에 대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분노가 커져가고 있고, 불통과 오만의 성벽을 더욱 굳게 쌓아가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저항하는 양심적인 세력들의 함성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과 많은 보수언론들은 국내외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반테러 움직임에 편승해 집회 참가자들의 분노에 찬 요구와 함성을 외면한 채 단지 일부의 과격한 행위를 좌파와 종북주의자들의 준동으로 색칠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테러행위로까지 착각하게 만드는 여론몰이를 해가고 있다. 폭력시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며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그 발생 원인에 눈감은 채 오로지 정치적 반사이익에만 몰두하는 것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사회적 갈등과 대립만을 더욱 부추기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지금 정치권과 언론에 필요한 것은 냉정함을 되찾고 세계사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진정으로 다수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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