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맛보는 겨울철 진미, 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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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맛보는 겨울철 진미, 굴회
  • 이세기
  • 승인 2016.01.0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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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섬이야기⑨] 이세기 / 시인

▲ 굴바구니와 조새


굴이 제철이다. 굴은 매서운 추위인 삼동에 채취할수록 맛이 좋다. 알이 통통하고 실한데다 향도 진하다. 섬사람들은 갯바위에서 채취한 생굴을 ‘강굴’이라고 한다. 강굴에 ‘강’은 ‘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닷물이나 민물을 섞지 않고 생굴을 체에 밭쳐 낸 것을 의미한다.

섬사람들은 생굴은 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곧 굴에 물기가 적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에 오래 담가 두거나, 바닷물이 많이 섞인 굴은 ‘맹탕이나 다름없다’하여 싫어한다.

그래서일까? 섬사람들은 유난히 ‘되게’라는 말을 자주 쓴다. 되게라는 말에는 ‘참’이라는 뜻을 품고 있고, ‘거짓이 없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되게 밭쳐진 굴은 시장에서 파는 물맛 나는 굴과 다르게 ‘눈속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즉 갯바위에서 금세 따온 강굴이라야 굴 본래의 내음과 맛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되게는 풀을 ‘되게 쑨다’고 하는 말과 같다. ‘걸쭉하다’, ‘박박’이라는 말도 ‘되게’라는 의미다. ‘진실되다’, ‘거짓이 없이 참되다’라는 어감으로 쓰는 말인 것이다. 갯것을 팔거나, 요리할 때 덕적군도 섬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굴은 엄동이라고 불리는 12, 1, 2월에 나는 것을 최고로 친다.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특히 정월을 전후해서 채취되는 굴은 맛이 좋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겨울인 이맘때쯤 채취된 굴로 만든 요리가 겨울 섬음식의 백미다. 싱싱한 겨울 ‘갯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맛이다. 향긋한 생굴 맛에서 풍부한 갯내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굴에서 나는 비릿한 맛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굴은 이 비릿한 맛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지 온전하게 겨울의 진미인 굴을 맛볼 수 있다.

굴은 겨울철에 먹는 으뜸 보양식이다. 생굴로도 먹지만 굴국, 굴부침, 굴회, 굴무침, 어리굴젓 등으로 요리해서 많이 먹는다. 굴국은 무를 채로 썰어 생굴과 함께 넣어서 끓인다. 뽀얗게 국물이 우러난 굴국은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생굴은 날것으로 먹을 때 가장 풍미가 난다. 간장에 찍어 먹어도 좋다. 요즘 사람들이야 초고추장으로 찍어 먹지만 섬사람들은 간장에 식초를 넣어 생굴을 찍어 먹는다. 생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본래의 맛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어리굴젓은 흔히 고춧가루를 넣고 빨갛게 삭힌 것을 말하나 이는 충청도식이다. 당진, 서산, 간월도 등지에서 이렇게 한다. 하지만 덕적군도에서는 생굴을 소금에 절여 삭인 다음에 양념을 넣어 무쳐 내온 것을 어리굴젓이라고 한다. 어리굴젓 중에 일 년 이상 묵힌 젓은 녹젓이라해서 최고로 친다.

덕적군도의 경우는 김장을 할 때 배추 속에다 생굴을 넣는다. 이외에도 김장 김치에 황석어(황새기), 밴댕이, 갈치, 새우 등을 넣는데, 이는 본래 섬에서 생겨난 김장 풍습이다. 생선이 삭은 맛은 김장김치의 또 다른 별미다. 강화도에서는 순무김치에 황석어나 밴댕이를 넣는다. 아삭한 순무 맛과 삭은 황석어와 밴댕이가 어울려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인천 앞바다 섬은 갯티가 발달되어 있어 굴양식을 따로 하지 않는다. 갯바위에 온통 자연산 굴이 돋는다. 굴은 조새라는 도구로 갯바위에서 채취한다. 조새는 ‘굴방쇠’라고도 하고 ‘좨’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독갑다리, 배다리 철교 아래 등의 철물점에서 주로 팔았다. 배다리 가까운 우각로에도 철물을 만드는 대장간과 철공소가 많았기 때문에 질 좋은 좨가 나왔다.

좨는 부리인 ‘쓱쇠’와 ‘쓰메기’라고 하는 부분이 생명이다. 이곳이 무르면 안 된다. 좨의 부리인 쓱쇠는 주로 떡쇠를 쓰고, 꼬챙이인 쓰메기는 스텐쇠로 쓴다. 부리와 꼬챙이가 무르면 줄로 날을 세웠다. 하지만 좨의 부리는 이내 무르고 닳아서 겨울 한철이면 두세 벌은 있어야 겨울을 났다. 그만큼 갯가 일은 고되고 힘이 든다.

섬사람들에게 겨울철 주수입이 바로 굴이다. 며칠씩 굴을 쪼아 모은 굴은 ‘초롱’이라고 하는 양철통에 모아 여객선에 실어 육지로 보낸다. 부둣가 상회에서 나와 굴을 도매로 가져간다. 목돈을 만지기 위해서는 댓 초롱은 족히 넘어야 한다. 그러니 한겨울에 불어오는 칼바람의 북풍을 견디면서 굴을 쪼는 일은 웬만한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생살을 파고드는 추위와 맞서야한다. 손은 꽁꽁 바닷물에 얼어 푸르댕댕해지고, 쪼그리고 앉아 굴을 쪼아야 하기 때문에 팔목과 등, 다리 관절이 성치 않다. 섬사람들이 신경통이 많은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굴은 사시사철 다 먹기는 하지만 6, 7월 여름철에는 알이 배 먹지 않는다. 굴은 이때가 휴식기이다. 8월은 살이 빠지는 시기이다. 또한 이 때 채취되는 굴은 맛이 아리고, 독성이 있어 먹지 않는다. 가끔 입맛이 없을 때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기 위해 적은 양을 채취할 뿐, 날로는 식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때 먹는 굴된장국 맛은 일품이다.

양식굴이 흔한 요즘에는 계절을 굳이 따지지 않지만, 갯바위에서 채취되는 강굴은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가을 무렵에 첫물을 보기 시작하여 이듬해 5월 무렵에 끝물을 본다. 그러다 9월 무렵부터 다시 쪼기 시작하나 대개 맛있는 굴은 10월 중순부터 나온다.

 
▲ 굴회
 

굴음식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굴회를 빼놓을 수 없다. 생굴로 만든 물회를 굴회라고 하는데, 섬사람들이나 출향한 섬출신들은 유난히 굴회를 좋아한다. 나 역시 감기가 걸렸을 때에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굴회가 한없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굴회는 갯티에서 채취한 생굴에 쪽파, 마늘, 간장, 깨, 식초, 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든다. 식초는 막걸리초를 쓴다. 시큼한 것이 막걸리 식초만한 것이 없다. 요즘에는 화학 식초를 사용하지만 막걸리 식초만한 맛이 나오지 않는다. 물회에 식초가 들어가면 굴이 탱탱하게 된다. 새콤달콤한 맛이 시원하다.

그런데 섬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막걸리 식초와 된장이다. 집집마다 광에 막걸리를 담갔다. 누룩을 빻아서 윗목에 말린 다음 항아리에 넣으면 보글보글 끓는다. 막걸리에 솔잎을 띄워 발효시킨다. 맨 위에는 청주, 다음으로 맑은 약주, 동동주, 막걸리 순으로 뜬다. 막걸리 식초는 막걸리를 삭혀서 쓴다. 또한 섬사람들은 날음식을 요리할 때 반드시 된장을 넣는다. 배앓이를 방지하게 위해서이다. 이 역시 병원이 없는 섬에서 터득한 요령일 것이다.
막걸리 식초는 굴회뿐만 아니라, 간재미회나 민어회 등 선어회를 먹을 때 ‘막걸리로 빤다’라고 한다. 반드시 막걸리로 회를 빨고, 막걸리 식초로 초장을 해서 먹었다. 막걸리 식초는 감칠맛이 뛰어나다.

굴회는 시큼하고, 생굴 향이 풍부할수록 좋다. 물론 이 맛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싱싱한 강굴이 최고요, 식초가 좋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굴 특유의 시원한 맛과 풍미를 함께 먹게 된다.

겨울철 섬에서 몸을 보양하는 것이 이 굴회이다. 굴회 한사발이면 너끈히 겨울을 이겨낸다. 제 아무리 칼바람 추위일지라도 견딜 수 있는 진미를 갖춘 섬음식인 것이다. 하지만 이 맛있는 제철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엄동의 갯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고된 갯노동을 이겨내야 한다. 굴방쇠로 온종일 갯바위에 붙어 파란불을 튕기면서 굴을 쪼는 섬사람들의 수고스러움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머지않아 갯티에서 조새로 굴을 쪼는 할머니들도 사라질 것이다. 양식굴에 밀려서 전통적인 굴 채취도 이젠 구경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같이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운 날에는 시장통 좌판에서 파는 강굴을 사서 속이 시원한 굴회를 해먹는 것은 어떨까. 세상이 캄캄하여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세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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