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을 허용치 않은 아마존의 산호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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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을 허용치 않은 아마존의 산호지대
  • 김연식
  • 승인 2017.02.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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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열리지 않는 바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34)와 함께 하는 <위대한 항해>는 지난해 3월부터 격주(10월부터 3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비내리는 에스페란자 호 갑판에 우산을 쓴 선원과 잠수정이 있다>

 

에스페란자는 브라질 아마존 하구 산호지대를 최초로 수중 촬영합니다. 하구 도시 마카파에서 촬영장비와 유인잠수정, 사진사, 연구자 등을 태우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잠수정은 캐나다의 누이트코(Nuytco)라는 업체에서 잠시 빌렸습니다. 2인용 잠수정과 비상시 구조용 1인 잠수정 등 두 척입니다. 물속은 전파가 통과하지 못합니다. 음파로 통신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잠수정과 에스페란자에 각각 음파를 보내고 받는 장치를 달았습니다. 둘 사이 대화는 어렸을 적 종이컵에 실을 달아 만든 전화기처럼 둔탁합니다. ‘에스페란자’라는 소리가 ‘에드베란다’로 들립니다. 대화가 잘 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대가 큽니다.
 

부두에 걸어둔 굵은 밧줄을 풀고 강물의 흐름을 따라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프로펠러가 돌자 강바닥에 있던 뿌연 침전물이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배는 천천히 강물을 따라 바다로 향했습니다. 이틀을 항해해야 닿습니다. 강을 항해하는 내내 한두 명이 탄 작은 보트들이 배 앞을 질러갔습니다. 대도시 마카파 주변에 외따로 떨어져 사는 원주민들입니다. 현지 직원에게 물으니 전기도 없이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며 사는 사람들이 수를 파악할 수 없이 많답니다. 윗옷 없이 바지만 입은 남자들이 보트를 몰았습니다. 그린피스라고 써진 배가 지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다른 세상의 만남입니다. 제 눈에 저들이 신기한 것처럼 그들도 우리가 신기할 것입니다.

 

이틀 먼 길이지만 사람들은 바쁩니다. 처음 배에 오른 연구자나 사진사들은 멀미를 앓을 게 뻔합니다. 다들 멀미약을 먹고 어지러운 와중에도 사뭇 진지합니다. 선장과 연구자 사이에 무거운 대화가 오갑니다. 건너 듣자하니 브라질 당국에서 잠수를 허가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근처에서 석유를 캐낼 다국적 석유기업과 이들에게 채굴권을 팔아넘길 정부에게 우리의 잠수 소식은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정부가 박수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산호초 지대는 브라질 배타적 경제수역 밖입니다. 공해상이니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지만 반대는 부담입니다. 반대를 무릅쓸지 허가를 기다릴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실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다 된 밥상을 물릴 수는 없지요.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로 봐서는 어떻게든 밀어 붙이려나 봅니다. 정부의 방침에 곧이곧대로 순응한다면, 저항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항했기에 우리나라에 4,19와 6월 항쟁이 있었고, 지금 광화문 촛불시위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와의 문제는 그린피스 브라질 사무소 직원들의 몫. 변호사와 학자들을 동원해 허가를 받아낼 것입니다. 선장 조엘은 항로를 유지하라 당부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언가에 막혀 주춤하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합니다. 때때로 좌우로 흔들리기도 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습니다. 브라질 사무소 직원 줄리아나와 마리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멀미 때문에 한손에 양동이를 들고 다닙니다. 점심 식사 시간인데도 식당이 한가합니다. 가만 세어보니 종일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타실에 오르니 바람이 시속 40킬로미터로 붑니다. 갑판에 나가면 몸이 휘청합니다. 강을 벗어나니 물 빛깔은 미숫가루 같은 황토색에서 초록으로 다시 파랑으로 서서히 변합니다. 바다입니다. 파도가 점점 솟구칩니다.
 

-파도가 2미터를 넘으면 잠수함을 진수할 수 없어요. 위험합니다.

잠수함을 관리하는 제프가 선장에게 말했습니다.

-배를 옆으로 돌려서 우현에서 파도를 받으면 좌현은 그나마 잔잔합니다.

-조금 잔잔해져도 잠수정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이 그만큼 흔들리니 결과적으로 충격은 마찬가지입니다. 2미터 이상은 안돼요.
 

날씨 때문에 다들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대화는 점점 딱딱해집니다. 거친 날씨로 예민한 선원들, 파도로 인해 불투명해진 잠수정 진수, 게다가 브라질 정부의 반대까지. 부푼 마음으로 항구를 떠났건만 하루 만에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습니다. 배는 빈 바다를 떠돕니다. 적도의 바다는 주로 잔잔하기 마련인데 하필 이런 때 날씨가 돕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다행히 브라질 정부의 잠수 허가를 받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반대쯤이야 무시할 수 있지만, 날씨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배는 산호초 일대를 오가며 음파탐지기로 실제 수심을 측정하는 일로 소일합니다. 해도의 수심은 엉뚱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틀. 이틀이 지나면 첫 번째 탐사를 마치고 항구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한주가 지나야 두 번째 탐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기회가 있다지만 저 아래 바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서 결과를 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다음 주에 날씨가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입니다.

 

결국 선장 조엘은 잠수정대신 수중 카메라를 내려 보내기로 했습니다. 굵은 케이블에 연결되어 수심 600미터까지 내려갈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배에서 케이블을 올리고 내려 높이를 조절할 뿐,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아래 무어가 있는지 확인하자는 심정입니다. 카메라는 갑판을 떠나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수면 위에서 선체를 툭 치더니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원들이 수중 카메라를 진수하고 있다>

 

수심이 80미터입니다. 10미터, 20미터, 30미터. 천천히 줄을 풀었습니다. 다들 모니터 뒤에서 숨죽입니다. 60미터, 70미터, 80미터, 그리고 90미터가 되자 화면에 뭐가 나타났습니다. 산호초인 것 같다 싶었는데, 순간 배가 흔들리면서 화면이 툭 꺼졌습니다.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줄을 감아올렸더니 카메라는 온데간데없이 줄 끝이 끊어져서 올라왔습니다. 카메라가 바위틈에 끼었거나, 줄에 부하가 심하게 걸린 모양입니다. 뜯어진 줄 끝을 보니 허망했습니다. 단순히 카메라를 잃어버린 게 아닙니다. 이제 날씨만 바라봐야 한다는 것,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확인된 산호초 지대, 거기까지 닿을 수 있는 잠수정, 손발을 맞춘 선원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지만 바다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날씨 앞에서 멈춰야했습니다. 거듭 깨닫습니다. 자연을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에스페란자는 풀이 죽은 채 근처 도시 벨렘(Belem)으로 향했습니다. 배는 어디 경기에서 처참히 패배한 선수들이 탄 것처럼 내내 조용했습니다.



<통신사 텍사스가 수중 카메라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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