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빵집 주인 친정 어머니
집순이가 어쩌다 외출했다 들어온 날은 왜 이렇게 바쁜지..,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식용유가 똑 떨어졌다. 서둘러 식용유 한 병 사들고 걸어오는데 조만치서 빵집이 나를 유혹한다.일루와 일루와 하면서. 요즘 소화가 안되서 밀가루 끊기로 했는데... 하며 두눈 꼬옥 감고그냥 지나쳐 가는데.... 넘어질까봐 두 눈은 못 감고 걸어가다가 살짝 들여다 본 빵집 안에서 앗싸~~심 봤다아~~~~
빵집 안에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의자에 앉아계셨다. 나는 얼른 문을 밀고 빵집안으로 들어갔다. 언니 어서 와 하며 빵집 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내 눈엔 할머니만 보였다. 와 비녀다. 도시에서는 만나 뵙기 힘든 비녀 꽂은 쪽진 ! 할머니시다. 우와 너무 좋다.
전에 빵을 사러왔을 때 동네 할머니들이 배가 고파서 빵을 사드시러 자주 빵집에 들어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오늘도 빵사드시러 온 할머니신가 싶어 반가움 반,짠한 마음 반, 마음이 쫌 어수선했다.
지난 겨울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식빵을 사러 빵집에 왔는데 할머니 한 분이 단팥빵을 잡숫고 계셨다. 여주인은 우유를 따끈하게 뎁혀 할머니에게 드리며 천천히 꼭꼭 씹어 잡수시라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허겁지겁 빵을 씹는지 마는지 급하게 잡숫고는 우유도 안드시고 부리나케 빵집을 나가셨다.
"에고, 아들 올 시간인가보네."
급히 나가시는 할머니를 보며 빵집 주인이 하는 말.
그게 무슨말이냐는 내말에
"언니, 저 할무니 집에 가시는 거야."
"그야 빵을 다 자셨으니 집에 가시겠지."
"아니 그게 아니고 저 할머니 며느리가 아들 집에 들어 오기 전에 집에 오라고 했다고.그래서 서둘러 집에 가시는 거라고."
"집안행사가 있나보다. 아들 며느리가 할머니 모시고 어딜 가려나보지."
"그게 아니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인 할머니보고 밖에 있다가 해지믄 그때 집에 들어오라고 그러는거라고. 하루종일 같이 있기 싫어서..."
"뭐라고? 이동네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고?"
"응, 그런 집 많아."
"어려운 집들도 아니잖아?"
"있는 사람들이 더해요...있는 집이라고 다 그런건 아니지만."
"아니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많아... 언니... 나도 며느리지만 못된 며느리가 ...생각보다 많아.
우리 빵집에 배가 고파서 빵 사먹으러 오시는 할머니들 많아."
"뭐? 배가 고파서? 진짜?"
"응, 진짜지, 그럼."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
"똥 많이 싼다고 밥을 많이 안준대. 그러니 할무니들은 늘 양이 부족해서 배 고파하시고.그래서 빵사먹으러 오시는 할머니들이 생각보다 많으셔."
듣고도 믿지못할 이야기에 기가찼던 기억.
오늘도 그런 할머니 중 한 분이신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무슨 빵이 할머니가 드시면 소화가 잘될까 하며 빵을 사드리려고 진열된 빵들을 둘러보는데 옆에 와서 서는 빵집 여주인 얼굴이 많이 안됐다.
"너 어디 아프냐?"
"응, 언니 봄이라 그릉가. 언니 나 요즘 기운도 없고 밥해 먹을 기운도 없어서 엄마가 와서 살림해주셔."
아 저 할머니가 친정어무니시구나.
연세가 89세인데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겆이하고 아픈 막내 딸내미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아들집에서 사시는데 딸네집에 오신지 일주일 되셨단다. 사나흘 있다가 갈 생각하고 왔는데 아픈 딸 두고 갈수가 없어 딸집에 눌러 계신지 일 주일이 넘은 고령의 친정엄마.
가져오신 혈압약이 떨어져서 오늘 밤 자고 낼 아침에 아들집으로 가신단다.
"힘드신데 아들보고 약을 가져오라고 하시지요."
"내가 가야지여. 자식이라도 바쁜데 귀찮게 하믄 안되지요."
하긴 울 심계옥엄니도 시골에 혼자 사실때 우리집에 오셨다가셔도 아무리 애들이 더 있다 가시라고 잡아도 당신이 가셔야한다고 정한 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셨었지.
할머니랑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가스 불 위에 올려놓은 동태찌게가 생각나 서둘러 인사하고 나오다 다시 들어갔다.
"언니 왜?"
빵집 여주인이 묻는다.
"엄니 한번만 안아봐도 돼요?"
"냄새나는 늙으이는 안아봐서 뭐하게여.."
"그냥여?할무니가 좋아서여.
할무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요."
"고마워요, 나도."
"고맙긴요, 뭐가요 할머니"
"늙은 친정어무니 내치지않고 모시고 살아줘서... 참 고마와요..."
"저희도 그렇게 키우셨잖아요.당연한걸요.건강하셔요, 할무니. 곧 또 뵐께요."
한번 꼬옥 안아드리고 빵집을 나서는데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보니 할머니가 손을 흔드신다.
"에그, 언니가 꼭 울 엄마 딸같으다."
"그냐? 그럼 딸하지뭐.
엄니 저! 가요~~~"
고개 숙여 인사하니 할머니가 하얗게 수줍은 소녀처럼 웃으신다.
그리고 또 손을 들어 빠이빠이를 하신다.
"잘가요.. 넘어지지 않게... 조심 조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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