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그물을 달고 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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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그물을 달고 나는 새
  • 김연식
  • 승인 2017.04.0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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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플라스틱 바다-2
 



 

플라스틱 그물을 달고 나는 새를 발견한 곳은 대서양 한가운데였다. 에스페란자 호는 브라질 아마존 산호를 탐사하고 아프리카 서안을 향하고 있었다.

 

잔잔한 바다를 가르자 파도에 놀란 날치들이 뛰어 올랐고, 굶주린 갈매기떼가 사방에 몰려들었다. 새들은 배를 따라 날며 기회를 엿보다 먹이를 향해 바다로 달려들었다. 대서양 먼 바다는 생명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녀석은 갈매기들 사이에서도 으뜸이었다. 날개를 펴면 짐작으로 1.5미터는 될 것 같았다. 무리의 대장 같아 보이는데 뭐가 이상했다. 완장이라도 찬 걸까? 날개에 뭐가 달려있었다. 쌍안경으로 보니 왼쪽 날개에 제 몸보다 긴 그물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어부들이 무심코 버린 폐그물이 날개에 걸린 것이다. 그걸 떼어내지 못하는 새는 절름발이처럼 하늘을 날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씁쓸한 장면이 눈앞에 있었다. 날개의 그물을 떼어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한참을 항해했을까? 대장 새가 사라지고 새들도 잠잠해졌다. 그러자 어디서 '꺼억꺼억' 애처로운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뱃머리 꼭대기에 그 녀석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날개 그물이 뱃머리 사다리에 걸린 것.

 

곧장 갑판원을 불렀다.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온 빅토르가 칼을 차고 사다리를 올랐다. 거구의 남자가 다가가자 갈매기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럴수록 플라스틱 줄은 단단하게 옭죄었다.



 

빅토르가 줄을 잘라내자 새는 균형을 잃고 바다로 떨어졌다. 얼른 난간으로 뛰어가 새를 살폈다. 수면에서 고개를 털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갈매기는 한참을 날지 않고 물위에 가만히 떠 있었다. 배는 점점 멀어졌다.


 

에스페란자는 서 아프리카의 불법 어업 현장을 조사하러 가는 참이다. 세네갈과 마우리타니아, 시에라리온 일대는 대서양 심해의 플랑크톤이 위로 솟아 영양이 풍부한 바다다. 지구상 어자원이 가장 넉넉하다.

 

그린피스는 이 일대 바다에 중국과 유럽의 대형 어업기업이 진출해 어자원을 남획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더구나 일부 중국 어선은 갈매기까지 낚아 미끼를 자급하고 있다.

 

이날 우리가 우연히 구조한 새는 운이 좋았다. 어선에 앉았더라면 꼼짝없이 고깃밥이 됐을테다. 어디 이 새 뿐이랴. 지금 어마어마하게 많은 새와 거북이, 고래가 플라스틱 바다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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