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노동운동의 발화지는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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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노동운동의 발화지는 인천”
  • 윤성문 기자
  • 승인 2017.07.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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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노동자상 추진위’ 세미나...다음달 12일 동상 건립 예정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과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는 7일 인천대 제물포캠퍼스에서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의 의의와 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이희환 황해문화 편집위원은 한국 노동운동이 처음으로 발화한 곳은 인천이라며, 개항장은 조선에 자본주의체제가 자리 잡는 역사적 현장이었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인천은 부산, 원산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하며, 근대적인 도시인프라와 생산관계를 빠르게 갖춰 나갔다. 이에 어느 지역보다 일찍이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는 토대가 마련됐다.
 
인천의 본격적인 노동운동은 1924년 인천 노동 총동맹이 결성되며 본연의 성격을 띠기 시작하는데, 생존권 보호와 민족적 저항의 양면적인 성격이 특징으로 꼽힌다. 이 결과 업종별 노조 결성이 잇따랐고 그 수만 10여개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위원은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의 ‘개항기 인천항 부두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라는 논문을 인용하며, 한국 최초의 노조가 인천항에 설립됐고 이 노조에 의해 노동쟁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윤 교수가 논문에 사용한 조선신보(1892년 5월12일 자)는 당시 인천부두 두량군(斗量軍) 노동자들에 대해서 ‘이들은 일본 상인뿐만 아니라 조선 상인을 대상으로 해서도 때때로 파업(스트라이크)을 일으키는데, 그중에는 조합이 선동하는 것도 많다’고 적시했다.
 
그동안 학계와 노동계에 알려진 한국 최초의 노조는 1898년 함경남도 성진에서 부두노동자 47명에 의해 창립된 ‘성진부두노동조합’으로 알려졌다. 또 최초의 근대적 노사분쟁도 같은 해 목포에서 발생한 부두노동자들의 쟁의로 기록돼 왔다.
 
이 위원은 1883년에 개항한 인천이 1890년대 후반에 개항한 성진이나 목포보다 먼저 개항한 점을 볼 때, 인천에서 최초로 노조가 결성되고 노동쟁의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자료 발굴과 전문가들의 폭넓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조선신보가 12호밖에 남지 않아 후속 연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한국노동운동사는 새롭게 써야 된다고 이 위원은 강조했다.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는 1930년대 건설된 군수공장인 조병창과 대규모 공장 등 강제동원의 사례와 현장을 소개했다.
 
김 이사는 “각종 피징용자 명부에 따르면 인천지역에서는 2만4천여 명이 징용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들은 조병창을 비롯해 남구 용현동 일대에 있던 일본공장들에 강제 동원됐다”고 밝혔다.
 
한편, 일제 징용노동자상은 8월12일 평화의 소녀상이 위치한 부평공원에 세워질 예정이다. 징용노동자상 인천추진위는 올 2월부터 징용노동자상 건립을 위한 모금에 나서, 약 8천만 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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