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안하믄 카라에 때 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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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안하믄 카라에 때 껴"
  • 김인자
  • 승인 2017.07.18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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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할머니의 스카프, 그리고 덧신

"목에 땀띠나여 엄니. 이제 그만 스카프 빼요."
"괜찮아. 이거 안하믄 카라에 때 껴."
"때끼믄 대순가? 빨믄 되지."
"스카프는 세수 할 때 쪼물딱 쪼물딱 두 번만 비벼서 빨아 널믄 되는데 옷은 그게 되냐? 매일 빨 수도 없구"
"그래도 스카프는 아니다 엄니. 날이 이렇게 더운데."
"안 더워. 괜찮아."
땀을 줄줄 흘리시면서도 괜찮다시며 한사코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집을 나서는 울 심계옥엄니.

심계옥엄니 사랑터 가시는 날 아침.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우리 심계옥엄니 긴팔 옷에 목에는 스카프를 두르셨다. 뭐라고해도 안 들으시니 일 절만 하자. 괜히 기분좋게 사랑터 가시는데 기분 상하게 하지말고...
생각했지만,
하...
울 심계옥 엄니를 우짜믄 좋으냐? 양말 위에 또 덧신을 신으셨다.
"엄니"
조용히 다가가 팔짱을 끼었다.
"왜?"
"양말위에 덧신은 왜 신었어?"
"이거 실내화야."
"실내화?"
"응. 사랑터가서 신을라고. 을마 전까지 센터안에서 하얀 실내화를 신었거든. 근데 더워서 벗었다. 무겁기도 하고. 신발을 벗어버리니 세상에 발이 을마나 가볍고 좋은지 몰라."
"그럼 양말만 신지. 더운데."
"양말 드러워지잖아. 때도 잘 안지는데."
"덧버선은 안 더러워지나?"
"덧버선은 세수할 때 몇 번만 쪼물딱 거리믄 때가 금새 쏙 빠진다."
"그럼 양말 벗어버리고 덧버선만 신던가. 발에서 불나겠네."
"야야 모르는 소리마라. 양말위에 덧버선을 신어야지. 맨발에 덧버선을 신으믄 게껍데기 같아가지구 홀까닥 벗겨진다."
"아 그런겨?"
"어 그런겨."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은거 같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나는 우리 심계옥엄니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맨날 우리 심계옥엄니에게 진다.
목소리를 크게 내시는 것도 아닌데 한번도 말싸움에서(말싸움이라고 하기에도 뭣하지만)우리 심계옥엄니를 이겨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문 앞에도 가보신 적도 없고 한글도 깨치신지 얼마 안되셨는데 울 심계옥엄니가 말씀하시는걸 자세히 듣다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언어구사력이 참으로 놀라웁다.





"엄니, 오늘은 이 옷을 입고 가면 어떨까?"
아무리 예쁜 옷을 사다드려도(내눈에만 예쁜가?) 심계옥엄니가 입으시는 옷은 항상 정해져있다. 사랑터 갈 때도 늘 같은 옷을 입고 가신다. 항상 같은 옷을 입고 가시지만 계절이 바뀔때 마다 한번씩 바꾸시기는 한다. 쇼핑을 가서 예쁜 옷이 보이면 사다드려도 예쁘다 하시면서 좋아는 하시지만 정작 사랑터 가실 때는 늘 같은 옷을 입고 가신다.
"엄니, 사랑터 할무니들 이쁜 옷 입고 오시지 않아?"
"입고 오지."
"매일 매일 예쁜 옷 바꿔서 입고 오시지 않아?"
"그런 사람도 있지."
"엄니는 옷도 많은데 왜 매일 같은 옷만 입어?"
"뭐 옷 많다고 자랑하러 다니냐? 깨끗하게 빨아 입으믄 되는 것이지. 옷이 많은 사람도 있고 읍는 사람도 있고.여러 사람 모두 함께 있는 곳에서는 저 잘랐다고 혼자 너무 튀어도 안되고 또 모잘라도 안된다. 공평하게 교복을 입어야지."
"교복?"
"그래, 교복. 학생들이 핵교 갈때 입고 댕기는 교복말이다. 나는 이 옷이 내 교복이다."
울 심계옥엄니 교복 입고 카라에 때 낄까봐 스카프 두르고 사랑터핵교에 가신다. 여름 실내화 덧신 신고 지팽이 짚고 또각또각 똑바로 걸으려 노력하시며 핵교에 가신다. 울심계옥엄니.

잘 댕겨오셔요 엄니...
구멍 뽕뽕 뚫린 망사 스카프 어디서 팔지?
고실고실 한 바람숭숭 들어오는 망사스카프 사러가야겠다.
발바닥에도 바람 슝슝 통하는 망사 덧신 사서 심계옥엄니 신겨 드려야겠다.

더운 여름날 춥다고 옷 몇 개씩 껴입으시던 우리 할무니들이 보고 싶은 아침.
울 할무니들 잘 지내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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