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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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로 떠나볼까?
  • 이혜정
  • 승인 2010.09.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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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역사·문화·자연…'보물' 같은 존재

취재:이혜정 기자

인천시 강화군의 역사·문화·자연을 '인천시티투어'로 체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강화에는 남한과 북한을 끼고 유유히 흐르는 서해와 넓고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곳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하는 자연환경과 역사의 흔적이 배어 있는 명소가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강화남단에 발달한 갯벌과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빼어난 풍경 중 하나이다.

 
▲ 강화도 장화리에서 바라본 '낙조'

강화도는 아름다운 자연 만큼이나 고려시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선사시대 무덤양식을 볼 수 있는 '고인돌', 한국의 사찰 중 역사가 길기로 이름난 '전등사' 등 강화 명소들은 마치 교과서를 펼쳐 보는 듯하다. 강화가 자연 그대로 보존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오래 전 바다를 통해 한반도의 심장인 서울로 진입하기 위해선 강화도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고려시대 강화도는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이었다. 때론 외세의 침략을 막는 전초기지 구실을 했다.

고려시대 말 몽고 침략에 맞서 왕실을 옮긴 '고려궁지'.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구한말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과 맞서 싸웠던 '초지진'과 '광성보'는 살아 있는 역사 현장이다.

이밖에 해안선을 따라 바다향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강화 나들길'은 가족과 함께 여가를 보내기에 좋다. 또한 아름다운 낙조와 갯벌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도 다녀가야 할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뜻 깊은 역사의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 강화도를 매주 주말에 떠나는 '인천시티투어'를 이용해 보자.


▲ 169점의 유물들이 보존·전시된 '강화역사관' 

■ 강화역사관
1984년에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사업으로 착공돼 1988년에 준공하고 9월 14일에 개관했다. 역사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총건평 267평 건물. 홍이포 1문과 소포 2문 등 대포 3문을 비롯해 철재 종류가 38종, 석재 종류가 69종, 목재와 지기 종류가 49종, 기타 문구 종류와 의상 등 총 169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략을 피해 궁궐과 관아가 들어섰던 '고려궁지' 

■ 고려궁지
고려 고종 19년 몽골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뒤 39년 동안 사용한 궁궐과 관아가 들어섰던 공간이다. 1270년 강화조약을 맺어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됐다.

끊임없는 외세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 조선시대 살림집의 유형을 잘 갖추고 있는 '용흥궁' 

■ 용흥궁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됐다. 조선 철종의 '잠저'.정상 법통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집을 잠저라고 한다.

대개 잠저는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짓는다. 용흥궁도 원래는 초가였으나, 1853년(철종 4)에 강화 유수 '정기세'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됐다. 그 뒤 1903년에 청안군 '이재순'이 중건했다.

좁은 골목 사이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이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이다.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헐린 것을 1974년에 보수했다. 조선시대 살림집의 유형을 잘 갖추고 있는 집이다.


 
▲ 북한 땅과 주민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 

■ 강화평화전망대
2008년 9월에 세워진 평화전망대는 강화 최북단 민통선 안에 위치해 북한 땅과 주민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남북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 평화적 통일의 기반을 다져 나가는 민북 지역의 문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설됐다.


 
▲ 선사시대 때 집단의 협동단결심을 상징한 무덤양식 '고인돌' 

■ 고인돌
'지석묘'라고도 불리는 고인돌은 서너 개의 받침돌 위에 한 개의 넓고 커다란 돌(덮개돌)을 얹어 놓은 형태의 선사시대 무덤양식이다. 계급분화가 시작된 청동기 시대 무렵에 주로 만들어졌다. 탁자형의 북방식과 괴석만 놓이는 남방식이 있다.

고인돌은 주로 경제력과 정치권력을 지닌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돌화살촉이나 간검돌, 민무늬토기, 청동제품 등 주요 부장품이 함께 발견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힘을 모으지 않으면 세울 수 없었던 고인돌은 집단의 협동단결심을 상징했다. 당시는 그만큼 동원될 수 있는 인원이 충분한 집단ㆍ가족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 '초지진' 

■ 초지진
사적 제225호로 강화의 동남단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하고 김포시 대명리와 마주 보이는 곳이다. 고종 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극동함대와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장소다.

현재 초지진의 성축과 홀로 남은 노송에는 당시 포탄자국이 남아 있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서 격전지인 길상면 초지진의 옛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아 사학자는 물론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광성보' 

■ 광성보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인 광성보. 그 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덕진진·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해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 포로가 되기를 거부해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했다.

이 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墩臺)를 1976년에 복원했다.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魚在淵) 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정비했다.


 
▲ 현존하는 한국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긴 '전등사' 

■ 전등사
'전등사'는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정족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존하는 한국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아도화상이 처음 절을 지을 때는 '진종사'로 명명했다.

충렬왕 8년인 1282년 충렬왕의 왕비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등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뜻한다.

고려 왕실은 전등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계속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조선 광해군 대에 이르러 화재로 건물이 소실돼 1621년 재건했다. 숙종 때는 '조선왕조실록'을 전등사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1726년 영조가 전등사를 직접 방문해 '취향당' 편액을 내렸고, 1749년에는 중수용 목재를 시주하기도 했다.

전등사 대웅전은 보물 178호로 지정돼 있다. 약사전(보물 179호), 범종(보물 제393호) 등 보물급 유적을 비롯해 국가사적, 인천시 지정 유형문화재 등이 있다.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은 벌거벗은 여인을 묘사하고 있는데, 대웅전 중수를 맡은 도편수가 달아난 여인에 대한 배반감으로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 층단식으로 이루어진 '선원사지' 

■ 선원사지
사적 제259호다. 1232년(고려 고종 19) 최이가 호국사찰로 창건했다. 여기에 '대장도감'을 설치해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 목판을 만들어 보관했다. 고려시대에는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2대 선사였으나, l398년 훼철돼 그 유지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폐허가 됐다.

절터는 산 중턱에서 경사가 끝나는 지점까지 층단식으로 이루어졌다. 건물터로 추정되는 사역의 중심지는 남북 길이 250m, 동서 170m에 이른다. 전사역은 대략 4구역으로 구분되는데, 제일 아래 층단은 도로에서 22m 떨어진 지점으로 석축(石築)의 길이는 60m이다. 이 석축은 동서쪽이 ㄱ자로 꺾여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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