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도 분리교육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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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교육도 분리교육 아닌가요?”
  • 한상원
  • 승인 2017.08.0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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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 사랑하는 대인고 수학영재반 아이들 / 한상원 대인고 교사

<대인고등학교 수학영재반>


2016년부터 우리학교 1학년에도 단위학교 수학 영재학급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작년에 필자는 2학년 수학을 담당하고 있어, 1학년에만 개설된 수학영재 학급의 담임교사가 될 이유가 없어 무관심했다. (교직에 몸담은 2003년부터 성적으로 반을 구성하는 시스템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오긴 했지만.) 그런데 올해는 1학년 수학을 담당하게 되어 본의 아니게 영재학급 담임을 맡게 됐다. 학생 선발부터 관리, 수업까지 필자의 또 다른 업무가 늘어난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기왕 맡게 된 것, 그동안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해보자고 다짐했다. 주제 탐구 발표 수업, 수학교양도서 강독 및 세미나, 초청 강연과 수학문화원 체험 활동이 주를 이루는 1박 2일 수학캠프 등의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수학영재반 교육활동에 아이들마다 반응은 다양하고 호불호도 물론 있겠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필자: 수학 주제 탐구와 발표수업을 직접 해보니깐 어때?

신민기 학생: 발표할 수학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그런데 막상 주제를 선정하고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 자료 그리고 수학 도서를 찾아보면서, 교과서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되어 흥미로웠어요. 다른 친구들이 발표 할 때 주변을 둘러보면 가끔 졸고 있는 애들이 있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수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다 보니 질문에 대한 반응도 좋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괜찮았던 것 같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능력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고요.

 

필자: 수학 교양 도서 읽고 세미나로 진행하는 수업은 괜찮았니?

남지웅 학생: 몇몇 학생들은 여름방학 방과후학교 기간 동안 선행학습을 하자고 했지만, 선생님께서 선행보다는 이번 기회에 수학교양서적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 보자고 제안을 해주신 것이 고마웠어요. 실은 저는 수학영재 수업만큼이라도 단순한 수학문제 풀이에서 벗어나 수학의 역사나 철학을 접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강독으로 책 1권을 거의 다 읽고 짧게라도 수학 철학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필자: 수학캠프 체험활동 소감을 솔직하게 얘기해 줄래?

김지훈 학생: 처음에 수학캠프에 참여할 때는 별다른 생각을 못했었는데, 대학교 수학과 교수님의 ‘인공지능과 수학’에 대한 강연이나, 우리학교 과학 선생님의 ‘수학과 과학의 만남’이라는 강의를 들으며 수학이 다양한 학문과 우리 일상, 그리고 자연의 원리와도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에 흥미로웠어요. 수학독서퀴즈 대회에서는 평소에 수학 관련 도서와 인터넷을 검색하며 알게 된 정보로 정답을 맞춰 상품을 받아 더욱 좋았고요. 수학문화원에서는 수학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교구를 통해 수학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가 되어 수학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 된 것 같아요. 최고였어요.



<수학캠프 체험활동>
 


수학 영재학급 교육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평을 해준 위와 같은 학생들이 있어 다가올 2학기가 기대가 된다. 그러나 필자는 또 다른 (행복한) 고민이 있다. 단위학교에서 과연 위와 같은 수학영재 학급을 앞으로도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가.......

 

왜냐하면, 최근 인터넷 언론이나 뉴스에서 현 정부의 ‘자사고, 특목고 폐지’ 정책과 맞물려, 영재고와 과학고에 대한 비판이 함께 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필자가 예전부터 바라던 바였다.) 아래와 같이 해당 기사의 타이틀만 보아도 대략 어떤 내용의 기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 몸통은 영재고다.” (2017.07.21. 뉴스타파)

“국고로 영재고 키웠더니, 10명중 1명 의대行” (2017.07.17. 조선일보)

“과학·영재고 학생, 대학 고학년 되면 일반고에 추월당해” (2017.07.13. YTN)

“영재고·과학고, 위탁교육기관 전환 논의 솔솔” (2017.07.18. 뉴스1)

 

논리적 비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사고와 특목고, 그리고 영재고와 과학고의 존재 이유가 학생 맞춤형 교육과 수월성 교육에 있다면, 단위학교의 영재학급 운영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프랙탈의 성질 중 하나 인 ‘자기닮음’처럼 말이다.

 

영어/수학 수준별 이동수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수준별 수업의 근본 취지인 학생 주도의 교과수준 선택이 아니라, 성적을 기준으로 일방적인 반편성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변질된 수준별 이동수업은 과거의 우열반 편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수준별 이동수업에 대해 이러한 비판이 있자, 인천시교육청은 약 2년 전, ‘단위학교의 수준별 이동수업 시행여부는 교과협의회 결정사항’이라고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 강제성이 없는 정책 협의사항이기 때문에, 여전히 수준별 이동수업을 시행되고 있는 학교들이 있다.)

 

이제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에 부합하도록, 교육부가 나서서 단위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분리교육의 적폐들을 하나씩 청산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정규수업 속에서 실력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함께 어우러져, 생활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통해 배울 수 있게 된다. 공동체 원리를 수업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필자가 영재학급에서 시도하고자 했던 협력학습, 과제탐구, 발표수업, 독서토론, 교과 체험활동도 정규수업 속에서 녹아내면 그만이다. 다행이 이러한 수업방식은 내년에 고등학교 1학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올해 초, 수학영재 학급에 들어오고 싶어도 수학성적 상위 20% 기준에 못 미처, 또는 면접 점수와 합격 인원수 제한 때문에 불합격한 학생들의 눈물과 학부모들의 하소연이 기억난다. 학생을 뽑아 줄 수 없는 영재학급 운영규정과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더 이상, 학교 교육이 성적과 서열로 우리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수를 위한 보편적 교육보다 소수를 위한 특권/특혜/분리 교육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수학영재반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단위학교 영재학급 제도를 없애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학과제탐구 발표수업>

<수학교양도서 퀴즈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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