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게으른 법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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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게으른 법과 정의
  • 김연식
  • 승인 2017.08.03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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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0년 넘게 방치된 스페인 해안의 불법 시설물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에스페란자호 항해사 김연식씨와 함께 하는 <위대한 항해>는 지난해 3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감시 선박 에스페란자호에서 부딪치며 겪는 현장의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의 그린피스 항해사의 눈으로 보여드립니다.


 

-악당은 부지런하고 의인은 늘 그에 뒤진다.

-꼼수는 교묘하고 법은 게으르다.
 

 

요즘 뉴스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굳이 사례를 꼽아야 할까.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 가습기 살균제 문제, 여러 공직 후보자 청문회, 세월호사건, 최근에는 갑질 군인과 회장들까지.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묻혀있는 잘못을 차치하고 드러난 혐의만 봐도 추악하건만, 법 집행은 지지부진하다. 대중의 분노에는 지구력이 부족하다. 그런 탓에 쉽사리 잊히고 덮이기도 한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법망을 피해 요리조리 꼼수를 쓰고, 때로는 법의 게으름을 악용하는 자들은 어디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지런하다. 공권력은 늘 그에 뒤진다. 어쩌면 그게 세상이고 우리는 그에 맞춰 좀 더 부지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 호는 8월 첫날 스페인 해안 일대를 항해하고 있다. 정부가 10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 해상국립공원 내 불법 시설물을 이제는 국제적으로 알려서라도 해결하자는 의도다. 첫 방문은 스페인 남동부 알메리아(Almeria)주의 카르보네라스(Carboneras)시에 있는 알가로비코(Algarrobico) 호텔이다.

 


 


12년 전인 2005년, 아름다운 해안에 호텔이 들어선다. 이 지역은 이전부터 해상국립공원이었다. 건축이 불가한 곳에 호텔이 들어설 수 있었던 과정은 빤하다. 호텔주의 로비와 지역 정부의 비리, 묵인이 있었다. 그린피스 스페인 사무소는 처음부터 이를 문제제기했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완공을 앞두고 지역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호텔주는 뒤늦게 사업을 중단한다. 차라리 스페인 사람들이 좀 더 부지런했더라면 호텔주는 손해를 덜 보고, 해상공원은 덜 파괴되지 않았을까 싶다. 공사를 멈춘 호텔은 12년간 불을 밝히지 않고 흉물로 남았다.
 

놀라운 것은, 누가 봐도 빤한 불법 건축물을 ‘불법’으로 판결하는데 11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스페인 법원은 지난해에 이 건물에 대해 그리 판결했다. 판결에 11년이 걸렸고, 이제 이 흉물을 제거해 해상국립공원을 복구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스페인 사무소 직원들은 호텔 벽에 페인트로 ‘불법건축물’ 표시를 하고, 스페인 사무소를 이 폐허로 옮겨 외부에 알리기까지 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방치되고 있는 거죠?

- 여긴 스페인이잖아요.


그린피스 스페인 사무소 직원의 허무한 답이다. 스페인. ‘시에스타’. 여유가 넘쳐 공식적으로 낮잠을 자는 나라. 뭐든 느리고, 때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나라. 여기서 우리나라 같은 ‘일사천리’를 기대하면 식당에서 맥주 한잔도 할 수 없다. 중국에 ‘꽌시(인맥)’가 있는 것과 비슷한 문화 특성이다.

스페인 사무소 직원은 ‘이 일대에 이런 불법 건축물이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근처 해안. 여기는 해안선이 온통 흉물스러운 철판으로 막혀 있다. 알가로비코 호텔처럼 사기업이 요트 부두를 짓다 말았다. 부두 골조는 녹이 슨 채로 방치되었다. 처참하다.

꼼수를 쓰고, 그게 드러나 중단되고 재판받고, 그 사이 사업주는 도망가거나 파산한다. 해안은 파괴된 채로 방치된다. 잘못 없는 시민과 이 지구는 그저 앉아서 당할 뿐이다.


정의가 게으름을, 법 집행이 굼벵이 걸음임을 어찌 탓만 하고 있을까. 우리는 정의가 끝내 이기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다만 좀 더 서두르려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느릿느릿 스페인이라 이렇다지만,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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