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물도 안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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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물도 안마셨다"
  • 김인자
  • 승인 2017.09.12 0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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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가을 나들이

"여보세요, 사랑터예요.어르신 벌써 나와 기다리고 계시죠? 차가 시동이 안걸려서 못가고 있어요. 어떻게든 시동이 걸리는 대로 바로 갈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사랑터 차도 아픈가보다.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오랜동안 일만 해서.
"엄니, 다리 아프시죠? 차가 좀 늦는다는데 집에 들어갔다 나올까요?"
"아고야 천리길을 또 다시 걸어가라고? 그나저나 차가 단단히 탈이 났나부다."
"그러게 왜 이렇게 안오지? 감감 무소식이네..."
"내색마라. 선생님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시겠냐."
사랑터 선생님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시동이 걸려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어르신, 많이 기다리셨지요?"
"별로 안 기다렸습니다."
"안 기다리시긴요. 어르신 빨리 나와 계시는 거 저희가 다 아는데요. 다리 아프시지요? 어르신 죄송합니다."
"내 다리야 늘 아픈 다린데여. 무탈하게 왔음 됐지여."
심계옥엄니가 요양사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차에 오르시자 요양사선생님이 소근소근 내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물으신다.
"어르신 어제 강화갔다오셔서 힘들어하지 않으셨어요?"
"예, 선생님 엄니가 힘들다고 겉으로 말씀하시진 않았는데 밤에 주무실 때 좀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잘 걷지 못하시는 울 엄니 모시고 다니시느라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어르신이 시장안에는 안 들어가시고 시장 입구에 앉아있으면 안되겠냐 하셔서 어르신은 시장에 들어가지 않으셨어요."
"아 예, 그르셨군요."
"심계옥 어르신은 저희를 조금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세요. 화장실 가시자고 해도 안가도 된다고 하시고 물도 안드시고 그르세요."

며칠 전 치매주간보호센터인 사랑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강화풍물시장으로 가을나들이 다녀오셨다. 시장구경이니 아무래도 많이 걸어야하고 또 강화까지 가려면 짧은 거리가 아니라서 심계옥엄니 혹시 멀미라도 하실까봐 이번 가을 나들이는 못 가시겠다 그리 생각하고 있었는데 갈지 말지 안내장에 똥글뱅이를 쳐서 내라는 요양사 선생님 말씀에 심계옥엄니 "나두 가고 싶어요." 하시는거다. 지팡이가 없으면 잘 걷지 못하는 심계옥엄니. 가시는 엄니도 힘들고 모시고 다니는 요양사 선생님도 힘들 것이 분명하기에 심계옥엄니 가신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았더랬다. 그런데 생전 다른 사람한테 피해주는 일은 하지 않으시는 심계옥엄니가 나도 가고 싶어요 하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차마 가지마시란 말을 못했다.
나이 마흔에 혼자 되셔서 네살배기 딸하나 혼자 키우시면서 안해본 고생이 없었던 울 심계옥엄니. 동네 사람들과 그 흔한 쌀계 관광 한번 가본 적이 없는 울어매. 그런 어메가 당신이 먼저 나서서 가고 싶다 말씀하시는 걸 보고 사랑터 차 떠나고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치매에 걸리시기 전에는 나 어디 가고 싶다고 한번도 말해본 적 없는 울 어메. 어디 모시고 가려하면 나다니는거 취미 없다,멀미나서 가기 싫다시던 울어메가 얼마나 가고 싶으셨으면 치매에 걸리신 지금 나도 가고싶어요 라고 말씀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지금보다 다리 힘도 많고 양쪽 눈이 다보이실때 좋은거 많이 보여드리고 맛있는거 많이 사드릴걸. 나는 참 나쁜 딸이다...

"엄니, 힘들지 않았어요?"
"선생님들 힘들게 할까봐 시장안에는 일부러 안 들어갔어. 내가 안들어가니까 선생님도 안들어갔어.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힘들어도 내가 조금이라도 걸어볼걸 그랬나... 그랬으믄 선생님도 시장 구경을 했을텐데 그게 참 미안하다."
"잘하셨어요. 엄니가 힘들어하심 선생님이 더 힘드시지. 점심은 잘 자셨어요?"
"응, 설렁탕 먹었어.든든하드라. 국물은 안 마셨어."
"왜요?"
"화장실 가고 싶을까봐..그래서 물도 안마셨다. 자꾸만 화장실 가자고 선생님들 귀찮게 할까봐서. 다른 할무니들 연신 화장실 간다고 나서니 선생님들이 밥이나 제대로 먹었겠냐? 선생님들이 아주 고생들이 많다. 우리 늙은이들 보살피느냐고.거기다가 나는 잘 걷지도 못하니 되도록이면 선생님들 손가지 않게 하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하려고 했다."
"그래도 소변 참으면 안되여."
"참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물을 안먹었다."

할무니들이 아프지 않으셨음 좋겠다.
할무니들이 타고 다니는 차도 안 아팠음 좋겠다.
그리고 치매에 걸리셨어도 다른 사람들 먼저 생각하는 착한 울 심계옥엄니. 지금보다 다리 힘 더 빠지시기 전에 지팡이라도 의지해 걸으실 수 있을 때 좋은 데 많이 모시고 다녀야겠다. 시간이 지나 진작에 많이 모시고 다닐걸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려야겠다. 이것 저것 잘 드실 수 있는 지금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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