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구열 높은 섬, 김 양식으로 자식들을 키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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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열 높은 섬, 김 양식으로 자식들을 키워내다
  • 류재형
  • 승인 2017.09.1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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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갑도의 김 양식

[인천in]이 지난해 연재해온 류재형 사진가의 <힐링의 섬 문갑도>에 이어 <문갑도 사람들의 전통 생활도구>를 9월 부터 매주 한차례씩 연재합니다. 인천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문갑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통 생활도구와 전통음식 발굴 프로젝트를 현장에서 생생히 보고하는 연재입니다. [인천in]은 이 연재를 통해 문갑도 주민의 자긍심과 인천의 섬이 가지는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문갑도에서 김양식에 사용한 김 틀(남준심댁 소장 물건)



625전쟁 때는 육지로 피난 나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여기저기 흩어져 마을 산으로 피신해 방공호를 파고 숨어지내며 마을을 지켜냈다. 뱃터에 함포사격을 맞았지만 밤에는 집에 내려와 밥을 해가지고 산으로 이고 가 나누어 먹었다.

 

문갑도는 1970년대 초까지 조기와 민어의 파시, 그리고 새우가 많이 잡혀서 덕적도나 인근 섬에서 문갑도를 문갑광(보관하는 창고라는 의미)이라 불리울 정도였다.

당시 밥과 김치기 주식이었지만 고기가 너무 흔해 말리고 찌고 알을 보관해 겨울에 먹고도 남았다.

 

이후 물고기와 새우가 사라지고 마을이 쇠락의 길을 걷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섬을 떠나고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조합을 결성하여 김 양식에 들어간다.


7월이면 산에서 참나무를 베어와 바다로 이어 날라 갯벌에 박았고, 그물을 띄워 김의 종자(포자)를 달아 김을 양식했다.

허리만큼 차는 바닷물을 따라 들어가 손으로 김을 채취해 바닷가 드럼에 담았고, 해변에서는 김 틀에 떠서 말려 필았다.

양쪽에 똑같이 김틀을 쌓아 놓고 번갈아 김물을 한 대씩 떠서 건조대에 붙여 말렸다.

시도 때도 없이 비나 눈이 오면 밤이고 낮이고 건조대에서 김을 걷어 들였다가 날이 맑으면 다시 널었다.
 

이렇게 해서 많은 문갑도의 자녀들을 육지로 보냈다.

덕적군도의 주변 섬들 중에서 문갑도가 유독 학구열이 높았다. 당시 덕적면의 본도인 덕적도보다도 유학생이 더 많았다 한다. 당시 문갑도에서 인천으로 학교를 보내면 마을에서는 유학을 보냈다고 했다.

지금은 이렇게 해서 성공한 자녀들이 문갑도 고향에 들어와 정착하고 마을 이장을 지내기도 하고, 마을 지도자가 되었고, 문갑도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고 있다.

문갑도 마을 분들은 평균 연령 65세 이상의 고령이지만 아직도 건강하고 맑은 성품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김 발을 양쪽으로 나란히 놓고 한쪽에 김 물을 부어 모양을 잡고 바로 옆으로 이동해 또 김 물을 붓는다>



김 틀 작업을 시연해 보이는 남준심 어르신


김을 널어말리는 건조대(김웅현 댁 소장 물건)

 


김 건조대 중간 중간에는 뒤에서 못을 박아 튀어나게 해 여기에 김발을 달아 말렸다

 

1970년대 말 문갑해변에서 김을 뜨는 광경(김남준댁 소장 사진)

 

1970년대 말의 김 양식장에서 문갑도 출신이 기념촬영을 하다(김남준댁 소장 사진)


1958년도 말에 인천에서 촬영한 문갑도 출신 유학생들(김진규댁 소장 사진)

 

문갑도 야경

문갑도 헬기장 앞에서 바라본 문갑도 앞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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