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조림 맛있게 만들어 주셨던 손맛 좋은 할무니
상태바
갈치조림 맛있게 만들어 주셨던 손맛 좋은 할무니
  • 김인자
  • 승인 2018.01.23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 독거할머니 기일에


"니 어디 아프나?"
"아니여, 안 아픈데."
"아니긴. 모가 아니야?
고 잘나게 밥 멫 숟갈 입에 떠 넣고 자꾸만 뒷간을 들락거리니 살이 붙어있간? 김선생 니 아직도 쏙이 안 좋나?"
"속이 안좋긴. 할무니가 만들어 주신 게살전이 맛있어서 많이 먹어서 그릉걸. 개안해 할무니, 걱정하지마세요~"
"아구야 뭘 먹었어? 그게 먹은거라고? 뭘 걸판지게 남들처럼 먹어야 힘을 쓸게 아닌가배. 고거 먹고 또 온 세상 오만군데 안가는데 없이 돌아댕기니 몸땡이가 남아나갔냐?"
"할무니, 나 엄청 많이 먹어요. 밀가루 먹어서 그릉가?"
"많이 묵긴 뭘 많이 먹어? 나는 암꺼나 먹어도 암시롱도 안하다. 젊은게 아무거나 먹어도 머든 소활시켜야지. 내가 김선생 니 나이때는 쇠를 집어 삼켰어도 소화만 잘 시켰니라."

꽃게살 발라서 옥수수 알갱이 넣고 계란넣어 부친 전을 좋아하는 나. 밀가루를 먹으면 먹은 즉시 화장실 직행인 나를 위해 밀가루 대신 계란만 넣어 게살옥수수전을 부쳐주셨던 할머니.
오늘은 그 할머니의 기일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씩 꼭 꼭 찾아뵈었던 독거할머니. 할머니가 편찮으시면서부터는 일주일에 서너 번 씩 그러다가 매일 찾아갔었다.
무하고 간장만 넣고도 갈치조림을 맛있게 만들어 주셨던 손맛 좋은 독거할무니.

"이게 모라꼬?"
"고동."
"그래, 맞다. 고동. 이거 나 서울 살 때 됫박으로 한 됫박 씩 사서 쪽쪽 빨아먹곤 했었는데. 내 이걸 을마나 빨아댔던지 헷바닥이 다 얼얼했다.
그나저나 이건 왜 빨아도 안 나오냐?
속이 볐나?"
"할무니 그거 뒤쪽도 뚫어야 되요. 그리고 나서 빨아야 알맹이가 쏙 빠져여."
"뒤도 뚫어? 그걸 무슨 수로 뚫냐?"
"뻰치로 ~"
"뻰찌로?"
"응,뻰찌로 뒤를 톡 짤라내고 이케 앞에서 쪽하고 빨면 쏙하고 빠져여."
"뻰찌가 어딨냐?"
"여깄지~"
"아고 울 김선생은 많이 배운 선생님이라 그런가 당최 모르는게 없구만 그래."
"맛있어여? 할무니?"
"그래, 맛나다. 아주 맛나."
그 작은게 머 그리 맛났겠냐만 할무니는 아주 맛난 음식을 드시는 것처럼 행복한 얼굴로 고동을 쪽쪽 빠셨다.

"이게 이름이 모라구?"
"홍게. 이게 또 그렇게 맛있다네."
"맛있대? 나는 이 나이까지 살았어두 이런건 처음 먹어본다."
게살을 발라 할머니 입에 넣어드리면 할머니는 오만상을 찡그리시면서도 맛있게 드셨다.
"이게 머가 맛있냐? 닝닝한게 머 암맛도 없구만. 그래 이걸 그 비싼 돈을 주고 샀냐?
그 돈이면 꽃게 넉넉히 사다가 고치장 조금 풀고 고추가루 확 풀어서 션하게 부글부글 지져먹는게 백 번 낫겠구만.
이건 뭐 삐쩍 말라가지고 살도 별로 읍구
우리 김선생 괜히 죽갔다구 벌어서 이딴데 돈쓰지 마라. 돈만 아깝다. 이런거 다시는 사오지 마라. 알았냐?"
"맛 없어? 할머니? 다들 맛있다던데. 그래서 울 할머니도 한 번 맛보시라고 사왔지."
"나는 맛읍따. 비싸다구 다 맛있는게 아냐.
싸도 맛있는게 을마나 많은데.
우리 김선생 순진하니까 장삿꾼들이 안 팔리는거 막 떠넘긴거다. 다시는 이런데 귀한 돈 쓰지마라."

예전 생각만 하고 생선 파는 할머니들이 보고싶어 연안부두에 갔다.
그러나 사고 싶은 것들을 살 수가 없어서 다시 소래포구로 갔다.


"연이네 할머니는 물고기할머니입니다.

할머니한테선 비린 바다 냄새가 납니다.
옷도 비리고 머리카락도 버리고 손도
비리고 발도 비립니다.

그래서 물고기할머니입니다."

('비밀상자' 중 - 김인자 글 김보라 그림)


간김에 돌아가신 독거할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것들을 사기로 했다.

홍게할머니
대하할머니
갈치할머니
굴할머니
그리고 고동할머니

생선파시는 할머니들과 이야기하다보니 봉지봉지 마이 샀네.

이거저거 샀다.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들의 바다친구들을
만난 날

운수 좋은 날

오늘은 내가 좋아했던
우리 독거할무니의
기일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