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발전에 역행하는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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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발전에 역행하는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
  • 박인규
  • 승인 2018.03.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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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박인규 / (사)시민과대안연구소 소장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을 둘러싸고 전국 광역의회 안팎의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미 광역의회 선거구 획정이 국회의 직무유기로 법정시한을 넘겨 가결됨에 따라서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마저 늦어지게 되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이미 예비후보등록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이 출마할 선거구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후보자들이 예비후보를 등록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기초의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은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하고 인천광역시를 포함하여 전국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에서 2인 선거구를 줄이고 3~4인 선거구를 늘리는 방향으로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안을 만들었다. 2018년의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안을 2014년의 선거구와 비교해 보면 2인 선거구가 612개에서 485개로 줄어든 반면에 3인선거구는 393개에서 437개로 4인 선거구는 29개에서 65개로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소수정당들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요구가 반영되어 나타난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각 광역의회를 통과해야 하는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획정안이 순조롭게 광역의회의 문턱을 넘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다. 이미 대전광역시처럼 고심 끝에 내놓은 획정안이 완전히 무시한 채 2014년과 동일한 내용으로 가결된 좋지 않은 선례처럼 이러한 움직임이 전국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고 현실화되어 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인천의 경우도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절대다수가 거대 양당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점에서 획정안과 같은 의결이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와 같은 기초의회 선거구를 둘러싼 논란은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도와 연결되어 있다. 1991년에 지방자치제가 부활되어 최초로 지방의회선거를 치러진 이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는 기초의회의원 선거에 정당공천제도가 실시되지 않다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광역의회의원 선거는 계속 소선거구제로 치러졌지만 기초의회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시작하여 2006년 제4회 선거부터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병행하여 시행하고 있다. 2006년 당시 많은 시민단체들 특히 주민자치운동을 하는 풀뿌리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소수정당들까지도 정당정치의 활성화라는 명분하에 정당공천제를 수용하였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 신인들과 소수정당의 후보들도 원내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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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자치단체 후보 정당공천제를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중선거구제의 도입의 취지를 보다 잘 살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2인 선거구를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3인 이상 다인 선거구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지방자치의 발전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이는 거대 양당의 독식구조를 지탱해주는 제도적 장치이면서 동시에 정당 지역위원장의 독점적 지위를 보다 공고히 해주는 기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는 대표가 선출되어 의정활동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의원들은 자신을 선택해 준 유권자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차기 당선을 보장해 주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위원장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리고 지역위원장들은 지방의원들의 정치적 명줄은 쥐고 중앙정치 진출과 정치적 입지강화에 이들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든든한 발판이 되어줄 지방의원들 특히 지역 주민들과 가장 밀착되어 활동하는 기초의원들을 가능한 한 많이 당선시키려고 하는 것이고 그 제도적 장치가 바로 2인 선거구의 양산인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이 다양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의회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많은 토론과 숙의가 이루어지면서 의견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건만 이를 자칫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성숙된 결론이 나오게 되면 거대 정당들의 담합이나 밀어부치기식 의사결정으로 인한 사회갈등과 대립의 심화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다소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주적임은 물론이고 효율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은 이제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당과 지역 정치인들을 통해 지방의회에 올곧이 전달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밞아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여전히 낙후된 지방정치의 구조가 많은 우려를 낳고 있어서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정당공천배제 주장이 여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기왕에 있는 제도의 취지를 잘 살리려면 3인 이상 다인 선거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하는 것은 지방자치발전을 위한 시대적 요구인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헌법 개정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지방분권의 강화이고 이의 실시가 지방자치발전의 핵심 사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왜곡되기 쉬운 지방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거대양당에 의해 편식되기 쉬운 의석구조 하에서는 주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자치권이 지방분권의 강화와 자치단체장 견제에 쓰여 지기보다는 민의를 저버린 고양이에게 주어진 생선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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