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콩국수만 먹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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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콩국수만 먹을거야"
  • 김인자
  • 승인 2018.05.0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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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기력이 쇠하시는 아버님(1)
 
"아부지, 오늘 저랑 점심 먹어요."
"야야, 난 아무 것두 먹기 싫다. 입에 뭘 넣기가 싫어."
"그럼 안되요, 아부지. 머시든 드시고 싶은게 있나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맛난거 사드리께요. 12시에 모시러 갈 테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전화 꼭 받으셔야돼요. 저번처럼 전화도 받지 않으시고 저 바람 맞히시면 안돼요."
"나는 콩국수 아니면 안 먹는다."
"콩국수요?"
"응, 콩국수 먹으러 갈거믄 가고 딴 거는 안 먹을거니까 바쁜데 오지마라."
 
요즘 시아부지께서 도통 식사를 안하신다. 밥 냄새만 맡아도 싫다시며 식사를 안하시니 하루 하루 기력이 떨어지시는게 눈에 보였다.
그러다보니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며칠 전에는 앞마당서 걸으시다가 넘어지셨다. 손등이며 얼굴이며 무릎이 죄다 까져서 생채기가 나셨다. 그래도 뼈는 상하지 않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약을 발라드리면서 너무 맘이 아팠다.
 
"아부지, 요기도 아파여?"
"응, 여기도 아파."
넘어지신지 며칠 되셔서 상처부위는 꾸둑꾸둑해지고 딱지가 앉아 있었다.
아기가 되신 시아부지.
"에구, 아부지 이 잘 생긴 얼굴 누가 이케 해 놨어어. 아부지, 얼굴 요짝으로 함 돌려봐요."
속상한 맘에 조금 너스레를 떨었더니 시아부지가 애기처럼 "요기도 한번 봐봐라. 요기도 다쳤다."하신다.
에구, 우리 아부지 큰일 날 뻔 하셨네. 이거 어뜩할거야아? 잘생긴 울아부지 얼굴 다 뵈려놨네."
내 너스레에 시아부지가 어린아이처럼 벙싯벙싯 웃으신다.
시아부지 얼굴이며 손이며 다리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살펴가며 꼼꼼히 약을 발라 드렸다.
약을 바르면서 보니 시아부지 다리가 안 본 새에 학다리처럼 가늘어지셨다.
이러니 넘어지시지. 마음이 짠했다.
 
"아부지?"
"응? 왜에."
"아부지, 밥 잡숫기 싫어요?"
"응, 싫다. 냄새도 맡기 싫어."
"나두 그른데. 아부지 저두 낼부터 밥 안먹을라구요."
"왜 밥을 안 먹어? 밥을 먹어야 힘을 쓰지."
"그니까요. 아부지가 안 드시는데 새끼가 되가지구 밥을 돼지처럼 먹으믄 안되잖아요. 그치 아부지?"
"에구, 그릉게 어딨냐?"
"어딨긴? 여깄네. 아부지."
 
"콩국수 해요?"
"아직 안해요."
"그럼 언제부터 할까요?"
"글쎄요. 다음주 말이나 5월이나 되야?"
 
시아부지 모시러 가기 전에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에 있는 식당들은 죄다 뒤졌다. 간판에 콩국수라고 써놓은 집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서 물었다, 콩국수 하냐고. ?
두 시간을 넘게 찾아 다녔으나 콩국수는 어디서도 팔지 않았다. 마트에도 가보고 혹시나 계양산 아래 식당들은 콩국수를 팔지도 모른단 생각에 위에서 부터 훑어 내려오면서 문을 연 식당들은 전부 다 들어가서 물었다. 콩국수 팔아요? 하고.
그러나 콩국수를 파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아부지, 지금 천천히 큰길가로 나오세요.
저 10분이면 도착해요."
시아부지께는 차마 콩국수파는 집이 없다는 말씀을 못 드렸다.
"그럼 나 점심먹으러 안간다."그러실까봐.
 
아부지 ~
저만치 차 유리밖으로 길가에 앉아 계신 시아부지가 보였다. 멀리서 봐도 기력이 하나두 없어보이는 우리 시아부지. 바라다보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처음 시집올 때만 해도 우리 시아부지는 호랑이도 때려잡고 멧돼지도 때려잡고 쌀도 몇 가마니씩 척척 드실만큼 힘쎈 어른이셨는데.
 
"아부지, 우리 콩국수말고 더 맛있는거 먹으러가요."
"싫다, 나는 콩국수 아니믄 암껏도 먹기싫다."
"콩국수보단 아부지 기운 없으시니까 장어 같은거 어때요? 우리 아부지 힘 펄펄 나시게요."
"나는 콩국수가 좋아. 작년 이맘때도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었는데 콩국수 두어 번 먹고 내가 입맛이 돌았다."
콩국수를 드시고 입맛이 돌았다는 시아부지.
"그르셨구나. 그럼 우리 아부지 오늘 콩국수 꼭 드셔야지요. 아부지,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아부지 콩국수 꼭 잡숫게 해드리께요."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고 재래시장까지 가보았으나 차 세울 곳이 없어서 콩국수집을 찾아보지도 못했다. 아부지 혼자 차에 계시게 할 수도 없고해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시아버지께서 부평시장으로 가자신다.
 
"원 이르케 식당이 많은데 콩국수 파는데 하나 없대냐? 부평시장으로 가보자. 거기 가보고 거기도 없으면 장어 먹으러가자."
 
"부평시장에요? 거기선 콩국수 팔아요? 아부지?"
"응, 거긴 할거야. 내가 작년 이맘때 거기 가서 콩국수 두 번 먹고 기운 났거든."
 
"아부지, 여기에요?"
"아니, 좀 더 가야돼."
 
상호도 모르고 그냥 부평쪽으로 가자는 시아부지 말씀에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부지, 더 가야 돼요?"
"응, 계속 가."
"아부지, 저기까지 가요?"
"응,저기 저 로타리에서 한바쿠 돌아."
 
차를 세우고 시아부지 손을 잡고 콩국수집을 찾아가는 길.
아버지가 넘어지실까봐 슬쩍 시아버지 팔짱을 꼈다.
몇 년 전 만해도 우리 시아버지는 내가 팔짱을 끼면 "나 아직 그런 때 아니다. 안 잡아줘도 된다." 하시며 팔을 빼셨는데 오늘은 팔짱을 껴도 손을 잡아도 우리 시아부지 가만히 계신다.
시아부지 손을 잡고 팔짱도 꼈는데 오늘은 좋은게 아니라 왠지 서글프다.
"야야 나 아직 끄덕없다. 안 잡아줘도 돼."하며 손을 빼시던 호기로우신 시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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