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현수막 디자이너에서 빈집 전문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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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현수막 디자이너에서 빈집 전문가로
  • 노지훈 시민기자
  • 승인 2018.10.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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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최환 사회적기업 빈집은행 대표



빈집은행 최환 대표 - 청년 디자이너에서 도시재생 전문가로

빈집은행 최환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장소는 의외로 크고 깔끔했다. 과거 용현동 동사무소였던 곳이 용현1,4동 주민센터가 확장이전하며 남겨진 공간이라고 한다. 용현동에서 빈집사업을 많이 하니 오히려 용현동에서 동사무소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청년 사회적기업이 모여서 자신들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공간으로 재편했고 이곳은 빈집은행 교육사업과 스마트 도시농부 교육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전국단위에서 청년들을 위해 이정도의 공간을 내주는 자지체가 있다는 것이 새롭고 건강하게 느껴졌다. 


구 용현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빈집은행


최환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소유했고 그것은 대학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꿈 많던 최대표는 수업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던 사회의 계층적 이면을 깨닫고 단순한 회사원 혹은 공무원은 포기한채 오직 3억을 위해 사회로 나와 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3억? 왜 3억이었을까? 숫자에 얽힌 복잡한 사연이 있을 듯 했지만 의외로 대답은 단순했다.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빠른 결혼이 왠지 제 삶의 목표였었고, 그 당시 결혼을 한다면 3억이라는 돈이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3억을 목표로 잡았고 학교의 수업을 들으며 단순하게 대기업, 혹은 공무원이 되기 보다는 사회에서 저의 장기를 살려 사업을 하면 금방 3억은 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앱계발을 하는 등 많은 경험으로 좌충우돌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기회를 주지 않더라구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했이 들었지요. 그때가 29~30살 정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거나 하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지난 세월 무엇이 가장 나를 즐겁게 했었나 하고요.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진 못했었습니다. 그러던중 해외봉사 활동이 생각났어요.”

 

“오, 해외봉사활동이요? 젊으실 때부터 활동가셨네요. 대단하십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때는 해외봉사활동이 그저 대기업을 가기위한 스펙용으로 필요했고 그래서 시작했던 거였거든요. 조금 부끄럽네요. 하지만 그 봉사활동에서 전공을 살려 만들었던 폐현수막 에코백이 생각났어요. 받는 사람들도 굉장히 좋아했지만 주변에서 칭찬이 대단했거든요. 그때의 좋았던 기억 때문에 폐현수막 디자이너를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기분으로요.”


2012년 패션쇼 업사이클링 제품들


최환 대표의 특이한 이력중에는 폐현수막을 이용한 업사이클링 사업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때마침 재활용, 특히 업사이클에 대한 분위기가 팽배하여 시도도 좋았고 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고 한다.

 

“폐현수막에 대한 재활용비용도 많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런던 이름이 들어간 회사에서 런던 디자이너와 콜라보하면서 사업을 했다면 성공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업은 100% 실패했어요. 하지만 저자신한테는 1000%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해볼수 있는 것은 다해봤고 특히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지자체의 지원 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해 지금의 바탕이 되었지요. 사업적으로는 아쉬운 것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적은 비용을 들여 많은 이익을 내는 그런 사업적 소질이 없었어요. 저는 아무도 시도 안하는, 즉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부분에 더욱 관심이 많았던 것이지요. 아무튼 그때 이후 제가 가야할 길이 확실해졌어요. 그러니 저한테는 1000% 성공인 것이지요.”

 

“그런 실패이후 지금의 빈집은행 대표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정말 좋았네요. 그런데 디자이너에서 도시재생사업가라니 너무 어울리지 않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사업적으로 너무 힘든 과정에서 사무실에서 집까지 돈이 없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이 인하대쪽이라 근처는 비싸고 점점 멀리 다닐 수 밖에 없었지요. 용현동 외곽으로 숭의동으로 중구로. 점점 걷는 거리는 멀어지고. 그러다 문득 걷는 골목길을 돌아보니 많은 빈집들이 보였습니다. 동네에 사람이 많아보여도 저렇게 빈집도 많구나. 저렇게 비울거면 나나 주지. 하면서 원망도 했지요. 그렇게 빈집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고 일본의 사례를 연구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빈집에 대한 사회문제가 시작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빈집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빈집은행이라는 상표도 제가 가지고 있지요. 그때가 벌써 4~5년 되었네요.”


빈집은행 입구


우리나라에서 빈집이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한지는 오래되었으나 그것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본격적인 이슈가 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 였다. 최환 대표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 일본사례를 연구해 본격적으로 빈집은행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전국 단위의 빈집은행을 만들려고 했지만 우리나라는 빈집에 대한 조사권한이 개인에게 없기 때문에 지자체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여기 사무실도 입주한지 2개월 되었습니다. 용현동에서 청년을 위해 공간을 마련해주신것이지요. 정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바탕으로 빈집은행은 계속 그 수를 늘려갈 예정입니다. 앞으로는 직접 매입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구요.”

 

번듯하고 멋지고 넓은 현대식의 빈집은행 공간은 처음 빈집은행 사업을 시작하면서 인연을 맺은 용현동과의 콜라보 작업이었다. 관내의 골치아픈 빈집들을 수리해주면서 자리를 잡지못하던 그에게 관내의 여러 사업을 진행하면서 신뢰를 쌓았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도시재생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용현동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새로운 개념중의 하나가 바로 스마트 도시농부. 빈집 중 가장 열악하다는 반지하 빌라를 개조하여 농장으로 만드는 신개념의 도시재생사업이다. 악성 중의 악성인 반지하 빈집을 수리하여 버섯을 재배하다니 기발하다 못해 대단하게 느껴졌다.


스마트 도시농부 교육시설 및 버섯재배


“그런데 주거지역 빈집에 버섯농장이라니 민원이 많지는 않았나요? 제 생각에는 저항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민원이 많았지요. 실외기 민원과 농장에 대한 불신 등이 있었습니다. 농장에 대한 불신이나 시설에 대한 민원은 해결이 의외로 쉬웠어요. 집에다가 농장을 만들어서 버섯을 재배한다니 동네 어르신들이 처음엔 화를 내셨지만 잘 말씀드리니 수긍을 하시더라구요. 쥐나 바퀴벌레가 살고 관리 안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깐요. 근데 실외기 민원은 정말 난감하더라구요.”

 

“실외기 민원이라니요? 에어컨 실외기 말하는 건가요?”

“네, 버섯의 생육기간동안 일정한 온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보온보습이 중요한데 에어컨을 설치하고 나니 실외기소음 때문에 민원이 계속들어오는 거에요.”

“아니, 에어컨 실외기야 다들 에어컨이 있을텐데 그 소리가 뭐가 크다고 민원이 들어오나요?”

“그래서 저도 놀랬습니다. 빈집이 많은 지역에서 실외기가 있는 집이 거의 없는 거에요. 빌라 한 채 통으로 실외기있는 곳이 저희 스마트농장 한군데, 동네에서도 거의 없고. 저도 너무 당황했습니다.”

빈집이 밀집한 동네는 그 환경이 열악하여 실외기가 없다는 말에는 필자도 당황했다. 이번 여름 유난히도 무더웠는데,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소와 사람들은 많은 듯 하다. 최환 대표 또한 그런 어르신들이 도움이 필요한 것에는 동의하고 있으나 자신은 일단은 청년사업에만 집중한다고 말을 이어갔다.

“장년, 노년층은 계속적으로 지원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되지 않는 듯해요. 저의 역량이 작아 다른 분야까지 하지 못하니 저는 청년분야에만 집중하여 청년들이 편하게 집을 구하고 뿌리내리고 사업하고 그 도시에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 앞으로의 사업방향도 그런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구요.”

“올해 버섯농장은 총 17개였습니다. 내년에는 20개를 목표로 하고 있고요. 앞으로 잘 지켜봐주십시오.”


빈집은행 최환 대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활기찼고 명료했다. 폐현수막과 빈집, 그 처음의 화려했던 모습이 쓸모가 없어졌을 때 버려지는게 그렇게도 자기와 같아 애착이 갔다는 최환 대표. 앞으로 오늘날 성공하고 있는 빈집은행처럼 멈추지 않고 세상에 계속 메시지들 던지는 건강한 뿌리의 커다란 나무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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