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의 야구정신을 이어받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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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의 야구정신을 이어받을 필요가 있다"
  • 양진채
  • 승인 2018.11.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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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끝)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터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이번 회로 <소설로 읽는 인천> 마지막 연재이다. 어떤 소설을 같이 읽을까 고민이 많았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현대소설은 거의 다 다루기도 했지만, 이왕이면 마지막 회이니 지엽적인 것보다 인천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2018한국스리즈 야구경기에서 SK 와이번스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모임을 하는데 다들 야구 경기를 보느라, 점수를 확인하느라 모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날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가 펼쳐졌고 이겼다. 여기저기 카톡이 울려댔다. 감동뿐만 아니라 모두들 SK 와이번스가 인천의 자존심을 세웠다고 흥분했다. 야구를 즐기지 않는 나조차 덩달아 분위기에 들떴다. 아, 그렇지! 그때 오래 전에 읽은 박민규의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퍼뜩 떠올랐다. 오늘의 이 기쁨에는 오래 전 씻을 수 없는 패배도 한 몫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의 붐이 일기 시작하던 그때 인천시민이면 누구나 기억할 인천의 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 우리는 오랫동안 인천의 자존심을 걸고 목마르게 야구 경기를 응원해왔던 것이다.

  각 팀의 마스코트가 MBC RK 배팅자세의 청룡, 삼성이 야구공을 문 사자, OB가 배팅 자세의 곰, 해태가 포효하는 호랑이일 때 삼미의 마스코트는 슈퍼맨이었다. 슈퍼맨이 배트를 들고 언제든 홈런을 날릴 것 같았지만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비운의 야구단이 되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1982년을 프로야구 원년으로 기억할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이기만 하면 야구 이야기를 하던 시절,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주인공과 몇몇 친구들은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소년 팬클럽에 가입한다. 드디어 시작한 프로야구 원년 시즌. 이름과 달리 슈퍼스타가 없는 팀인 삼미는 매번 진다. 나와 절친한 '조성훈'은 끝까지 삼미를 응원하고 그만큼 절망과 상처도 쌓여간다.

  박민규 소설가는 삼미 슈퍼스타즈와 그 야구단을 응원했던 주인공의 삶을 통해 성장의 고통과 상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무거운 주제인데 글은 경쾌하다. 눈물과 웃음이 같은 지점에 있다.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이 책은 역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고, 작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낙오자들‘에게 띄우는 조금은 슬픈, 그러나 유쾌한 연가’라는 띠지의 선전 문구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 주인공의 친구인 조성훈이 승률 1할 2푼 5리라는 대기록을 세운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창단할 것을 제안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삼미의 야구정신을 이어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삼미의 야구정신이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비틀어 말한다. 이것은 조롱이 아니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승패를 위해 존재했던 팀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자기수양’을 위한 야구. 이것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민규 소설가는 조성훈의 입을 통해,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직장과 일터에 헌납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이 아니겠냐고 말하는 것이다.
  요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박민규의 이 책은 한때 표절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예전 야구팬 동호회 사이트에 올라온 글의 많은 부분, 심지어 문장투까지 베껴 썼다는 혐의가 붙었다. 작가는 그 부분을 일정부분 시인했다. 그럼에도 개정판까지 나올 수 있었던 데는 이 책이 가지는 문장의 힘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의 소설이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큰 비결인 그의 문장을 맛 볼 차례이다.

 
  
   <표지>                                                            <개정판>
 
 
  프로야구 원년. 우리의 슈퍼스타즈는 마치 지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패배의 화신과도 같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 오늘도 지고, 내일도 지고, 2연전을 했으니 하루를 푹 쉬고, 그 다음 날도 지는 것이다. 또 다르게는 일관되게 진다고도 말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용의주도하게 진다고도 말할 수 있겠으나, 더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주도면밀하게 진다고도 말할 수 있고, 쉽게 말하자면 거의 진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기 때문일까. 프로야구가 개막되고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 유니세프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인천의 소년들은 점차 늙어가고 있었다.
 
  평범한 야구 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 고교야구나 아마야구에 있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팀이 프로야구라는-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며, 물론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 세계에 무턱대고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비록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 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그해의 여름을 기억하는 일은 체스판의 흑과 백을 구분하는 일만큼이나 선명하고 간편하다. 실제로 나는 공부를 하거나 쉬거나 둘 중의 한 가지만 했으니까. 가끔 힘이 들 때면, 수돗가의 미지근한 물에 얼굴을 적시며 삼미 슈퍼스타즈를 생각하고는 했다. 그게 다다.
노력이 헛되지 않아 그는 일류대에 입학하고, 어려움 없이 국내 최대의 대기업에 입사한다. 삼미와는 달리 프로의 세계에 무사히 안착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과연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평범하고 평범한 가문의 외동아들이었고, 거의 이대로 평범하고 평범한 가문의 아버지가 될 확률이 높은 인생이었다. 타율로 치면 2할 2푼 7리 정도이고, 뚜렷한 안타를 친 적도, 그렇다고 모두의 기억에 남을 만한 홈런을 친 적도 없다. 발이 빠른 것도 아니다. 도루를 하거나 심판을 폭행해 퇴장을 당할 만큼의 배짱도 없다. 이대로 간다면…. 맙소사, 이건 흡사 삼미 슈퍼스타즈가 아닌가.
 
  그것은,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진 별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내 인생이 알게 모르게 삼미 슈퍼스타즈와 흡사했던 것처럼, 삼미의 야구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야구였단 사실이다.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다. 가끔 홈런도 치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던 야구였다. 즉 지지리도 못하는 야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야구를 했다는 쪽이 확실히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마치 쉬지 않고 달리는 전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느낌이었다. 간혹 그 흔들리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쉴 적이면, 어김없이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주치는 전철의 창가에 선 누군가의 얼굴처럼, 그 희고 아름다웠던 얼굴은 휙 하고 다가왔다 사라져버렸다. 헤어진다는 것은 - 서로 다른 노선의 전철에 각자의 몸을 싣는 것이다. 스칠 수는 있어도, 만날 수는 없다.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뭐야, 너무 쉽잖아?
  틀렸어! 그건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야. 이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야구’인 것이지. 왜? 이 세계는 언제나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야.
 
  삼천포에서의 일주일은 언제나 생생하다. 남일대 해수욕장(국내 최소 규모)에서 우리는 캐치볼과 러닝을 하고, 밤이면 맥주를 마시며 삼미 슈퍼스타즈의 시합 비디오를 보거나, 웃고 떠들거나, 자거나 했다. 언제나 새 치약을 꾹 눌렀을 때와 같은 기분의 시간이 우리의 주변에 흘러넘쳤으므로, 우리의 시간은 그런 민트향이라든지, 박하향이라든지, 죽염 성분이 가미된 솔잎향으로 가득했다.

 

  이 소설을 읽는 인천 시민, 특히 원년 야구를 좋아했던 시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애증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SK 와이번스 우승을 그토록 환호하는 이면에는 삼미의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취지에 빗나갔을지 몰라도 프로야구 경기에서 응원하는 팀이 이겨 기쁜 건 어쩔 수 없다. 승률을 가리는 운동경기에 승률을 안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힐만 감독은 당당히 인천명예시민으로 추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짜릿한 명수부를 펼친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그렇게 박수를 보내고, 맥주잔을 높이 들면 되는 것이다.

 
   ⓒ김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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