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가을일수록 한결 불그스름한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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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일수록 한결 불그스름한 햇살
  • 최종규
  • 승인 2010.11.28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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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찍기] 짧은 가을햇살 즐기기

2009년 11월 24일, 인천 중구 율목동 한켠. 가을햇살에 빨래를 널어 말리는 조그마한 살림집 아기자기한 살림새입니다.
 바야흐로 가을이 저물 무렵이면 골목마다 꽃 기운이 수그러듭니다. 한 해 내내 꽃잔치를 이루는 골목집은 12월을 맞아서도 겨울국화가 흐드러집니다. 12월 두어 주까지는 꽃이 시들지 않은 골목집을 골목 안쪽에서는 어렵잖이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 겨울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맨 먼저 이 겨울꽃을 돌보는 골목이웃일 테고, 다음으로는 이들 골목이웃하고 담벼락을 맞대는 이웃집 사람이겠지요.

 이른여름이든 늦여름이든 낮나절은 으레 예닐곱 시까지 이어집니다. 저녁 일곱 시쯤 되어야 비로소 해가 기웁니다. 그러나 늦가을이 되면 저녁 다섯 시면 금세 해가 똑 떨어집니다. 늦게 뜨는 해가 일찍 집니다. 늦가을부터 늦겨울까지 해바라기 하기란 퍽 힘들어요.

 그런데 늦가을 햇살은 꽤나 불그스름합니다. 불그스름한 빛살이 동네를 포근히 감쌉니다. 햇살보다는 저녁 어둑살이 훨씬 오래도록 동네를 어루만지는데, 이렇게 어둑살이 깊이 드리우기 앞서 이웃집 마실을 하노라면,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씨라 하더라도 퍽 따스하다 싶은 빛무늬를 마주합니다. 외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늦가을 햇살이 한결 따스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봄이나 여름에는 불그스름한 햇살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겨울에도 불그스름 햇살은 쉬 마주하지 못합니다. 아니, 불그스름 햇살이란 오로지 가을녘에만, 게다가 깊은 가을녘에만 마주하는지 모릅니다. 아주 짧게 찾아왔다가, 참말 금세 지나가는 불그스름 햇살이라 할 수 있어요.

 오래오래 즐길 수 없고, 조금 즐길 만하다 싶으면 어느덧 사라지는 가을입니다. 시원하다 싶은 바람이 부는구나 했더니 갑자기 된서리가 내리며 추운 가을이고, 겨울이 아닌데 왜 이리 춥냐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어느새 다시금 포근한 가을입니다. 밤과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이 사뭇 다른 가을날, 이 빛과 빛살과 빛무늬와 빛그림자를 사랑스레 껴안아 봅니다.


36. 인천 중구 송월동3가. 2010.10.7.16:44 + F8, 1/80초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닥치면 햇살은 차츰 짧아집니다. 짧아지는 햇살인 만큼, 낮 다섯 시가 가까운 때는 벌써 해가 뉘엿뉘엿 기웁니다. 여름날까지는 쨍쨍 무더운 햇살이었을 이맘때 불그스름하게 물드는 저녁빛을 받는 골목집 창문과 빨래줄과 옷걸이와 행주 몇 점을 바라봅니다.

37. 인천 남구 숭의4동. 2010.9.8.08:51 + F10, 1/80초
 아파트에서 연탄을 때는 일이란 이제 없습니다. 1970년대에 지었던 작은 아파트라면 방마다 연탄 한 장 넣어 때도록 만들었습니다. 골목동네 작은 집들은 오늘도 연탄으로 불을 땝니다. 연탄집 나무문짝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입니다.

38. 인천 부평구 십정1동. 2010.10.2.09:54 + F7.1, 1/50초
 5층짜리 나즈막한 작은 아파트 동호수를 살피면, 예전에도 ‘A B C’처럼 알파벳을 쓰는 데가 있었지만, ‘가 나 다’처럼 한글을 쓰는 곳이 퍽 많습니다. 십정1동 골목아파트 가동 3∼4호 줄 들머리이든 1∼2호 줄 들머리이든 한결같이 곱습니다. 들머리 위쪽에는 꽃그릇이나 질그릇이 놓입니다.

39. 인천 남구 주안2동. 2010.10.8.08:30 + F13, 1/80초
 동네 골목집 가운데 감나무 키우는 집이 꽤 많습니다. 애써 키운 감나무에서 얻은 열매는 집집마다 알뜰살뜰 껍질을 벗겨 빨래와 함께 해바라기를 시킵니다.

40. 인천 동구 송현1동. 2010.11.10.14:56 + F13, 1/60초
 소담스레 자라는 배추라면 한 포기만 해도 큼직한 고무통이 꽉 찹니다. 처음에는 두 포기를 심은 다음 한 포기는 어릴 때에 뜯어서 다 먹고, 다른 한 포기를 남겨 잎이 도톰하게 달리도록 알뜰히 키우겠지요.

41. 인천 중구 송학동2가. 2010.10.7.16:34 + F5.6, 1/80초
 자유공원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깔아 놓은 돌이 흔한 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지난날 이 돌은 어디에서 어떤 주춧돌로 쓰였을까 궁금합니다. 나중에 ‘공원 현대화’라는 이름을 내걸어 이 돌을 싹 걷어내지는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돌을 하나둘 밟고 올라선 다음 뒤를 돌아봅니다. 하루 공부를 마친 인성초등학교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거나 혼자서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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