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론에 묻혀버리는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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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론에 묻혀버리는 한국경제
  • 박영일
  • 승인 2010.01.2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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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박영일 인하대 교수

                              
                                   -근본적 문제점을 성찰한다 
                                          
                                                        박영일 교수(인하대,  국제통상학부) 
 
  올해 들어 한국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무성하다. 세계경제가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한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한국경제만은 작년 1-3분기에 2.0% 성장했다. 주요국 중 가장 빠른 회복세라고 국내외에서 상찬이 자자하다. 이를 근거로 국내외 전문기관들이 금년도 4-5% 대의 높은 성장률 전망치를 쏟아내고 있다. 정부도 5% 성장 목표를 정하고 자신만만이다.   
  
  낙관론은 거시지표만이 아니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들썩거리고 다시 거품을 우려할 정도다. 재벌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흑자를 누리고 1억 연봉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백화점에서 명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해외여행객도 다시 쇄도하는 모양이다. 고소득층의 호사만 보면 한국경제는 벌써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속내로는 중병을 앓고 있다. 안으로는 빈부격차가, 밖으로는 해외의존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성장에도 불구하고 작년 1-3분기 동안에 전국가구의 평균소득은 3.1%나 줄었다. 감소의 정도도 가난한 계층일수록 크다. 10분위소득계층의 최하 10%의 실질소득은 무려 14.9%나 줄었고, 그 바로 위 계층의 소득도 4.3% 줄었다. 작년 9월말 현재 가계부채가 713조원으로 늘었다. 실질가액 기준으로 총가처분소득의 80%에 달한다. 가계의 대량 파산이 남의 일이 아니다. 취업난은 계속되고 있다. 작년 11월말 현재 비경제활동인구가 1,670만 명, 사실상의 실업자가 400만 명에 달했다. 둘 다 사상 최고다.    
 
  이런 극명한 명암, 양극화는 이른바 ‘강부자정권’이라는 현 정부의 계급적 성격이 낳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제 살리기’는 곧 ‘성장률 높이기’라고 믿는 잘못된 경제관 때문에 ‘고용 없는 회복’을 낳았다. 집권 이후 두 해 동안 경제를 살리겠다고 성장률 외에는 어떤 가치도 거들떠보지 않고 불도저식으로 돌격했다. 그 밑에서 산과 강이 신음하고 민주주의와 인권도 유린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살리겠다는 경제의 근간이 붕괴되고 있다. 이제 어떻게 근간이 붕괴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고환율정책과 수출주도형 성장

  현 정부 성장정책의 한 축은 고환율을 통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이었다. 평균 원-달러 환율은 2007년 929원에서 2009년(1-11월) 1287원으로 1.4배, 수출구조가 우리와 경쟁적인 일본의 엔화에 대해서는 793원에서 1374원으로 1.7배가 상승했다. 그 결과, 경상수지가 2008년의 64억 달러 적자에서 2009년에 410억 달러 흑자로 전환했다. 외수가 경기회복을 견인했다. 주로 자동차, 전자전기제품, 철강·금속 등 자동화율이 높은 대규모장치산업에서 수출이 증가하고 수출대기업의 수익률은 개선됐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고 직접적인 고용창출에 기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 제품의 수출 확대에 대칭적으로 증가한 수입으로 내수산업에서 고용과 수입을 잃었다. 환율 상승분이 물가에 반영돼 내수지향적인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서민소비자들이 고환율의 대가를 부담했다. 무역의존도는 10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져 국민경제가 해외요인에 더 취약하게 됐다. 결국 고환율을 통한 수출주도형 경기회복은 재벌계 수출기업만 배불리고 빈부격차와 해외의존만 심화시키고 말았다.

  재정적자와 투자활성화 정책 

  성장의 또 다른 축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이른바 투자활성화 정책이었다. 정부는 경제를 살린다고 지난 2년 동안에 100조원이 넘는 재정적자를 무릅쓰면서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정부지출은 어떻게 쓰든 그에 상응하는 경기부양효과를 갖는다. 문제는 부양의 정도다. 민간부문에 파급돼 자율적이고 효율적인 성장기반을 다졌느냐 여부다.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기 위해 처음에 물 한 바가지를 붓는 것처럼, 정부지출은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견인해 내는 역할을 해야 정당성이 평가된다. 그런데 지난 그동안 정부지출은 ‘부자감세’와 토건사업에 치중했다. 이는 경제정의에도 반하고 효율성에도 반한 것이다. 
  
  고소득층은 세금 감면으로 생긴 추가적인 돈을 쓸 곳이 별로 없어 한계소비성향이 낮다. 설혹 돈을 쓰더라도 해외여행이나 외국산 명품을 사기 때문에 국내에서 고용도 생산도 유발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 토건사업도 땅 주인이나 건설재벌의 배만 불리지 고용효과나 파급효과가 미미하다. 토건사업의 폐해는 이웃 일본의 20년 불황이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그 돈을 국민들에게 골고루 뿌렸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법인세 인하나 재벌기업에 베푸는 각종 혜택도 마찬가지다. 소비가 침체하여 설비가 남아도는 상황에서 정부가 투자유인책을 제공한다고 기업이 신규로 투자할 리가 없다. 괜히 재벌기업만 살찌우는 일이다. 기업이 투자에 소극적인 최대 요인은 시장전망이 좋지 않고 상품이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에 주는 혜택의 반이라도 일자리의 90%를 만들어내는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에게 제공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더욱이, 막대한 재정적자는 앞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상환하거나 국민의 재산인 공기업을 팔아(이미 공기업 선진화란 명목으로 팔기 시작함) 메울 것이므로, 결국은 일반 국민에게 빼앗아 상위 1% 부유층에게 퍼주는 꼴이다.

  성장과 분배에 관한 근본적 성찰

  원론적으로 경제가 균형 있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생산’은 시장에 팔기 위해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제품이 팔려야 기계가 돌고 안 팔리면 생산도 없다. 말하자면, 상품을 살 구매력(돈)을 지닌 소비자가 없으면 생산할 수 없다. 구매력은 생산과정에 참여해서 번 임금이고, 소비자는 바로 노동자, 농민, 서민에 다름 아니다. 이들이 고용돼 임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향상되지 않으면 경제성장이나 회복은 있을 수 없다는 이치다. 흔히 말하는 ‘선성장·후분배’란 경제흐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말이다. 국민경제가 분배의 불균형을 동반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수가 아닌 외수에 의존하는 수출주도형 전략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용보장은 노동자에게는 생존이고, 사회 전체로서는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일자리 확보는 노동자의 숙련도와 기술을 향상시키고 개인의 자립과 자존의 원천인 동시에, 국민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향상시키고 유효수요를 창출한다. 모든 선진국이 국가차원에서 고용을 경제정책의 핵심에 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수출주도형 성장은 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자국의 실업을 상대국에 수출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근린궁핍화정책), 무역상대국도 가만 있지 않는다. 한 나라만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이 과거에 수출주도형 성장을 했던 것은 경제규모가 작아 무역상대국에 끼친 폐해가 미미했기 때문에 그들이 눈감아준 덕택이다. 그러나 정부가 자랑하듯 G-20 회의를 유치할 정도로 경제규모가 커진 현재는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금년에 들어오면서 환율이 하락하는 배후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의 근본문제는 국민총생산이나 1인당 소득 등 총량지표상의 빈곤이 아니다. 낮은 성장률도 아니다. 고르지 못해서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소위 동맥경화현상이다. 따라서 경제를 살리려면 넓게 고르게 나눠 순환을 촉진시켜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민들에 대한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 지금 당장, 무엇 때문에 하는지도 모르면서 생명의 원천이자 문화의 원천인 강을 죽이고 특혜와 부패로 건설재벌만을 살찌우는 4대강 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거기에 쏟아 부을 22조원이면 연봉 2천만 원짜리 일자리를 110만개나 만든다. 작년 11월 말 현재 공식실업자 82만 명을 전부 고용하고도 남는다. 

  경제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다. 물론 시장경제체제에서 가장 중요하고 불가결한 수단이지만. 따라서 경제성장은 국민 모두가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물질적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경제성장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켜 계층 간에 갈등과 대립만을 야기한다면 그런 성장은 안 하니만 못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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