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장식품', 도심 흉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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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장식품', 도심 흉물로 전락
  • 이병기
  • 승인 2011.03.1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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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자체적 관리나 기초자치단체 감독 모두 '엉망'


부평 로데오거리 한 빌딩에 설치된 미술장식품 '페르소나'.
작품에 묻어 있는 페인트와 어수선한 주변으로 예술작품이 도심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취재: 이병기 기자

무미건조한 도시의 고층 빌딩 숲에서 시민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예술적 감흥을 주기 위해 설치된 공공조형물이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미술장식품'이라고 불리는 공공조형물에 대한 지적은 비단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2014년 아시안게임을 앞둔 인천으로서는 더욱 시급히 점검해야 할 사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 규정'은 지난 1972년부터 정부의 문화예술진흥법 중 하나로 시행되고 있다. 연면적 1만㎡ 이상인 대형건축물에 대해 건축비 100분의 1 범위 내에서 회화나 조각 등 조형예술물이나 벽화, 분수대 등 환경조형물과 같은 '미술장식품'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물 구석에 설치된 미술작품. 기둥과 광고물에 가려 제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인천의 각 기초단체들도 문화예술진흥조례 안에 미술장식품 설치를 규정해 운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면적 1만㎡ 이상 공동주택은 건축비의 1천분의 1%, 근린생활시설을 비롯한 공공용 시설은 1천분의 5~7% 수준으로 유지된다.

미술장식을 설치한 건축주나 관리책임자는 미술품의 관리 의무를 지니지만, 이를 직접 시행하는 곳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초단체는 미술품의 지속적 사후관리를 감독하는 책임을 지니도록 조례로 규정된다. 그러나 기초단체의 미술장식품 감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구월동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한 미술장식품. 낙서 자국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층 빌딩이 밀집돼 있고, 건축시기가 다소 다른 구월동 로데오 거리나 부평 문화의 거리, 주안역 앞 미추거리에서는 볼썽사나운 미술품들의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부평의 한 건물에 설치된 페르소나 조형물. 아랫쪽에는 지저분하게 페인트가 묻어 있고, 건축 자재로 보이는 물건의 도난을 방지하고자 조형물에 끈을 묶어놨다.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해야 할 작품이 관리·감독소홀로 을씨년스럽다.

같은 지역 또 다른 건물에는 미술품이 건물 구석에 세워져 있다. 기둥과 광고물 사이에 가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서는 미술품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구월동 로데오 거리 내 동남빌딩 앞에는 '터'란 작품이 설치돼 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벤치 모양으로 설계된 이 조형물에는 하트그림과 욕설이 낙서돼 있다. 미술품을 세웠던 초기에는 작품 해설 표지석도 있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돌로 만들어진 한 미술품은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 세워져 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작은 샛길이 있긴 하지만, 인적이 뜸해 사람들이 얼마나 볼 수 있을지 의아스럽다. 미술품 주변은 근처 상가에서 내놓은 물건과 스티커 자국으로 지저분하다.

부피가 적지 않은 미술장식품을 거리에 세워 지나는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가뜩이나 통행량도 많은 거리인데, 좁은 도로에 미술품을 설치해 사람 세 명이 간신히 어깨를 맞대고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아진다. 


이곳에서 조형물로 나와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일부 건물들은 조형물이 아닌 그림으로 건물 내부에 전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에 있는 미술품의 경우 기초단체의 감독이 재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개인이 임의로 위치를 옮기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다른 지역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안역 앞 미추거리에는 남구에서 설치한 조형물이 있다. 원통형 기둥 위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은 곳곳이 녹슨 상태. 기둥에는 광고 전단지를 붙였던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달려 있다. 대부분의 시민은 관심조차 없이 그냥 지나치지만, 조형물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안역 앞 미추거리에 세워진 남구 조형물

주안역 건너편 경향프라자 건물에 있는 모자상에는 오랜 세월 풍파로 겉이 벗겨진 흔적이 선명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자상의 좌대와 주변이 온통 상업 광고물로 뒤덮여 있었다.

최근 지어진 건물의 미술장식품들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고, 독특한 개성도 살리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밀레니엄 빌딩에 설치된 '궤적-무한공간'이나 '원-공간의 확장' 조형물은 짧긴 해도 작품 설명이 명시돼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비슷한 주제에서 탈피해 작가의 개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송도컨벤시아나 미추홀 타워 조형물에서는 작품 설명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주안역 앞에 건축된 리가스퀘어 빌딩에는 '즐거운 상상' 제목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공주석씨 외 4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작품은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번 쯤 상상해 보는 서핑보드를 주제로 일상의 탈출과 즐거운 상상으로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마음을 조형화했다.

미술장식품 몰린 부평구와 남동구, 관리 제대로 안돼


구월동 로데오 거리 내 한 조형물. 주변이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오가는 시민들이 적을 뿐더러 주변은 쌓아놓은 물건과 스티거 자국으로 지저분하다.

인천지역 내에서도 고층건물이 많이 위치한 부평구와 남동구에는 100개 이상의 미술장식품이 설치돼 있다.

부평구 관계자는 "1년에 한 번은 미술장식품을 점검해야 하는데, 작년에는 하지 못했다"면서 "이로 인해 인천시에서 지적을 받아 3월 말까지 점검중이다"라고 말했다. 부평구에는 120개의 미술장식품이 설치돼 있다.

남동구 관계자는 "보통 1년에서 2년 주기로 점검하게 돼 있다"면서 "구청 담당자가 감독을 하고는 있지만, 애로사항이 많다"라고 하소연했다.


주안역 앞 경향프라자에 설치된 '모자상' 미술장식품.
인천지역 미술장식품 중 '모자상'이란 주제로 설치된 작품만 10개가 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작품의 창의성 없이 비슷한 형상의 조형물이 난립하는 경향도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담당자 혼자서 관내 모든 미술장식품 감독을 하고 있다"면서 "2009년에 점검을 했기 때문에 작년에는 감독을 나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2009년 점검 결과를 물어보자 "당시는 담당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최근 오픈한 주안역 앞 리가스퀘어 빌딩에 설치된 '즐거운 상상' 조형물남동구 역시 올 3월까지 지역 내 127개 작품을 점검할 예정이지만, 담당자 혼자서 얼마만큼 감독에 나설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인천시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각 기초단체와 경제자유구역청에서 미술장식품 심의와 관리를 맡고 있다"면서 "미술장식품의 경우 설치는 되는데, 조각품 재질이라든지 사후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천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도심의 흉물로 변할 수도 있어 힘든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김창수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건축물 미술장식품은 그것이 위치한 장소, 즉 도시의 역사와 환경적 맥락 속에서 재평가해야 한다"면서 "대체적으로 '공공미술'로서의 기능은 물론, '건축물 장식'이라는 기능도 재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어떤 미술작품은 주변환경이 작품이 지닌 최소한의 의도마저 훼손시켜 하나의 시각적·정서적 공해물로 존재한다"면서 "다수의 미술작품에 제목과 작품해설이 없어 감상자에게는 불친절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천의 미술장식품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도시의 주인인 시민에 대한 무관심과 불친절이다"면서 "또 지역적 특수성이나 장소성에 대한 고민의 부재도 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송도 컨벤시아 내 조형물


송도 갯벌타워 조형물


송도 밀레니엄 빌딩 '원-공간의 확장'(좌)과 '궤적-무한공간' 조형물


구월동 로데오 거리 내 농협 건물에 설치된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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