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 무관심 속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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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 무관심 속에 사라진다
  • 김주희
  • 승인 2011.03.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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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세관창고 철거 논란으로 바라본 미등록문화재

취재: 김주희 기자


해체후 이전·복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인천세관창고(사진 오른쪽 건물)
길 건너편에서 수인선 공사가 한창이다.

지은 지 100년 가까운 인천세관창고가 수인선 공사로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새삼 지역 내 근대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무관심 속에 인천의 역사를 담은 건축물들이 소리 없이 사라진 마당에, 더 이상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이 철거되지 않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뜻있는 시민과 전문가 사이에서 일고 있다.

인천시도 뒤늦게 재발방지 차원에서 지역 내 등록문화재급 건축물을 모두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예산도 없이 추진하는 일인데다, 지난 2004년에도 조사 뒤 후속조치가 따르지 않았던 터라 이번 조사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

 ▲전쟁도 견딘 100년 건축물

철거 논란이 이는 인천세관 부속 제7호 창고는 1917년경 섰다. 현 인천항 1부두 출입구 앞 인천세관 제1장치장에 붉은 벽돌로 지은 연면적 147㎡의 작은 건물이다.

이 창고는 일제강점기인 1918년 공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완공된 인천항 제1부두 배후부지에 들어선 것이다. 인천항은 동양 최초의 갑문식 도크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천세관도 1924년 5월 7호 창고 옆에 들어서지만, 6·25 한국전쟁 중 소실됐다.

인천항 축항 당시 지은 건축물로는 현재 7호 창고와 선사 사무실로 쓰는 2동(현재 경비실로 사용)이 남아 있다.

이들 건축물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무엇보다 100년 인천항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몇 안 되는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무관심 속에 철거 위기 맞아

7호 창고 철거 문제가 공식화한 것은 지난해 8월 중순 열린 인천시 문화재위원회 회의 때다. 당시 본격화한 수인선 공사가 인근 유형문화재 8호인 옛 인천우체국 미칠 영향을 검토하던 중 7호 창고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지정문화재 반경 200m 내에서 공사가 진행될 경우, 문화재위원회가 이를 검토하도록 돼 있다. 최근 불거진 옛 인천세관 부지 LPG 충전소 설치 논란도 이런 이유로 벌어졌다.

시 문화재위원회는 당시 공사 주체인 한국철도시설공단에 7호 창고에 대한 보존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7호 창고가 지정문화재도 등록문화재도 아니어서, 시와 문화재위원회 모두 보존을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더군다나 철도시설관리공단 등이 주장하듯 2006년 12월 수인선 국제터미널역 설계와 공사 승인이 날 때 7호 창고와 관련해서는 어떤 문제 제기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시 문화재위원회 지난 2월 완전 철거보다는 7호 창고를 해체해 보관해 두었다가 주요부분을 국제터미널역 역사 건립시 활용하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인천세관 제7호 창고

철도시설관리공단과 시공사는 지난 3월10일 7호 창고를 해체하려다 돌연 이를 보류했다. 7호 창고를 살리자는 지역 여론이 거세게 일자, 윤석윤 인천시 행정부시장이 보존방안을 찾으라고 관련 부서에 지시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부서인 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이번 주까지 7호 창고에 대한 보존 방안을 찾겠다"라고 말했지만, 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해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는 최근 문화재위원과 소유주인 관세청 등과 회의를 열어 7호 창고를 다른 장소로 이전해 복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7호 창고 철거 문제는 아니었지만, 앞서 2000년대 초반 수인선 국제여객터미널역의 노선 변경 요구가 해당 지자체인 중구에서 있었다.

이 문제는 2003년과 2007년에도 제기됐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주민의 교통편의를 위해 남인천~인천역 도심구간 지하노선의 설계를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철도시설공단은 제2국제여객터미널 이용객 편의를 위해 노선을 고집했다. 제2국제역객터미널은 2014년 남항으로 이전하게 된다.

 ▲뒷북 행정

7호 창고가 철거나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 창고가 등록문화재가 아니어다. 이 때문에 시 문화재과는 부랴부랴 지역 내 미등록문화재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시 관계자는 "현재로선 (미등록문화재라) 창고 철거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근대문화유산이 각종 개발 사업에 사라지지 않도록 자치구를 대상으로 미등록문화재 전수조사를 벌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조사된 근대건축물 중 보존가치가 있는 것을 등록문화재화 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런데 이미 시는 지난 2004년 인천대에 용역을 맡겨 지역 내 근대건축물 목록을 작성한 바 있다. 더군다나 목록만 작성했을 뿐 이후 후속 조치가 없었다.

시가 자체적으로 조사를 벌이지 않고 일선 지자체에 맡긴 것도 문제인데다, 어떤 건축물을 조사하라는 기준도 정하지 않아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선 지자체에서는 이번 조사를 두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지역의 전문가는 "목록 작성 이후 새롭게 지정된 등록문화재가 없었다"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7호 창고도 이때 등록문화재로 지정했으면 철거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처럼 사후약방문식 전수조사가 아니라 조사대상 건축물 기준을 명확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해 하는 게 맞다"라고 강조했다.

 ▲등록문화재 관리 체계화해야

등록문화재가 개인 소유일 경우 매매가 가능하고 세금 감면 혜택도 있지만, 그래도 재산권 행사에 어느 정도 규제가 있기 마련이라 대부분의 소유주가 신청을 꺼린다.

최근 동구 금창동 배다리에 있는 100년 가까운 인천양조장 소유주가 이 건축물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하려 했다가 포기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인천시 동구 금창동 배다리에 있는 인천양조장 한옥. 지은 지 90년쯤 된 이 건축물은
소유주가 등록문화재로 신청하려다 재산권 제한 등의 이유로 포기했다.(사진=인천시립박물관)

인천양조장에 사는 주현숙씨는 "집(인천양조장)도 개인이 아닌 법인 소유다. 국가에서 수리비용을 받아 고치면 어찌됐든 그만큼 부담도 되고 불편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우리 손에서 권한이 떠나는 느낌을 받았다. 가족회의 끝에 등록문화재로 신청하지 않고 고쳐서 쓰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주씨는 "원자재가 부쩍 올라 수리비가 종전보다 더 많이 나와 집수리를 어떻게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 소유물은 그렇다 치고 국가나 공공기관 소유 근대건축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7호 창고 역시 관세청 소유다.

1959년에 지은 인천세관청사도 인천해양항만청 기숙사로 쓰이다 대책도 없이 개인 사업자에게 넘어가 지난해 헐렸다. 그러다 보니 이 터를 산 L씨와 시가 LPG 충전소 설치 문제를 놓고 소송까지 벌이게 됐다.

국토해양부는 내항재개발사업을 벌이며 인천항 내 화물운송용 '축항선'을 철거한다는 계획이다.

인천발전연구원 김용하 박사는 최근 낸 '중구 역사문화공간 정비와 지역 활성화에 관한 연구'에서 "인천경제를 이끌었던 산업유산인 축항선의 활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축항선은 재개발될 내항의 내부 교통망은 물론 외부를 잇는 대안으로 가치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수인선 구간 중에서 7호 창고 이외에도 이미 보존을 외친 지역 여론은 무시된 채 소래역사가 사라진지 오래다.

수인선 인천구간 중 유일한 역사인 송도역사는 현 공사 구간에 포함되지 않아 철거 위기는 넘겼지만, 보존·활용 방안은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인천시 조동암 문화체육관광국장은 "7호 창고를 계기로 근대건축물을 보존하는 방안을 찾겠다"면서 "개인보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소유한 근대건축물을 등록문화재로 우선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인천시 중구 용동에 있는 인천흥업주식회사 건물. 1930년대 중반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며
인천흥업은 개항기 인천갑부 최승우가 대부업을 위해 세운 회사다. 역시 미등록문화재다.

등록문화재란

국가와 지방정부는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보호하려고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 등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정문화재는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엄격한 규제를 통해 항구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제도다.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로 나뉘며 국보,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 명승, 사적 및 명승, 천연기념물 및 중요민속자료 등 8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인천에는 국가지정유형문화재로 답동성당과 전등사 등이 있고, 시지정유형문화재로는 인천도호부청사, 인천우체국, 홍예문 등이 있다.

이와 달리 등록문화재는 근·현대에 형성된 근대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려고 지난 2001년 7월 처음 도입·시행한 제도다. 지정문화재만큼 강하게 규제하지 않아 개인 소유물은 매매도 가능하고 일정부분은 허가 없이 보수할 수 있다. 건축물 보수때 국가에서 비용을 지원한다.

인천에는 일제강점기 인천부청사로 쓴 현 중구청사와 자장면이 탄생한 옛 공화춘, 인하대에 있는 수준원점, 제물포고 강당 등 5곳이 있다.

이밖에도 등록문화재는 아니어도 보존대상 건축물로 지정한 근대건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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