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으로 환승 대기, 루원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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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식으로 환승 대기, 루원시티
  • 유광식
  • 승인 2020.11.23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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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서구 가정역 주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저물녘 구 가정오거리 구역, 2020ⓒ유광식
저물녘 구 가정오거리 구역, 2020ⓒ유광식

 

겨울에 앞서 살얼음을 걷는 듯하다. 격상된 방역단계로 인해 우리들의 만남과 대화 또한 제한되게 생겼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격언은 전설이 되었고 말이다. 집중보다는 산만한 위치를 권장하는 현 사회의 모습에서 이 시대가 전환의 시대임을 읽는다. 구슬프게 비가 내린다. 가정역 환승정류장에 도착했다.

 

가정역 광역노선 환승 정류장, 2020ⓒ유광식
가정역 광역노선 환승 정류장, 2020ⓒ유광식
루원시티 개발 현장 옆 주택가(개발에 불이 붙었다.) 2019ⓒ유광식
루원시티 개발 현장 옆 주택가(개발에 불이 붙었다.) 2019ⓒ유광식

 

인천 서구는 3등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구청 구역(심곡동)을 중앙에 두고 위로는 검단, 아래로는 가정-석남-가좌가 자리한다. 현재 가정역 주변은 삽질이 한창이다. 집적된 건물들이 쉼 없이 지어지는 모습은 가정역이 그만큼 교통과 활동의 요충지라는 방증일 것이다.

어렸을 적에 언뜻 서인천 나들목 지하차도를 지나던 기억이 떠오른다. 격렬한 트럭들과 어둡고 굴절된 지하차도를 지나 터널 밖으로 나오면 ‘살았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정도로 당시엔 자동차가 많고 집들도 빽빽했었다. 거친 느낌이라서 벗어나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

런데 ‘가정’이라는 지명은 분위기와 다르게 다소곳하다. 이곳은 루원시티 건설을 위해 기존 주택이 철거된 후 한동안 나대지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건물이 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다. 올해 유난히 타워 크레인을 앞세운 낚시질(건설)이 많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택 공사현장 입구, 2012ⓒ유광식
주택 공사현장 입구, 2012ⓒ유광식
구 가정오거리 주택(은영네는 잘살고 있겠지ㅎ), 2012ⓒ유광식
구 가정오거리 주택(은영네는 잘살고 있겠지ㅎ), 2012ⓒ유광식

 

가만히 생각하면 가정식 백반의 경우처럼 담백한 구성이 어울릴 공간이지만 고층아파트와 상가, 기관들이 들어올 계획으로, 이후 스카이라인이 장난이 아닐 것 같다. 청라를 잇는 BRT 굴절버스는 더는 좁고 휘어진 어두운 도로를 달리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상당히 빠르게 달린다. ‘루원’은 과거의 번잡함을 다시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낚싯대도 엄청 대형이라 조만간 대형 건물이 주변 천마산과 원적산을 가릴 것이다. 근처에는 모든 변화를 실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정동 한신빌리지와 신현동 하늘채 아파트가 있다. 독보적인 전망을 자랑했던 ‘이 편한 세상, 하늘채’는 이제 주변 아파트에 하늘의 권좌를 내주어야 할 판이다. 이다지도 불편한 세상이라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가정1동 행정복지센터(인근 새 공간으로 옮겼다.), 2018ⓒ유광식
가정1동 행정복지센터(인근 새 공간으로 옮겼다.), 2018ⓒ유광식
새 아파트 건설과 신현동 하늘채 A, 2019ⓒ유광식
새 아파트 건설과 신현동 하늘채 A, 2019ⓒ유광식
저물녘 가정역 풍경, 2020ⓒ유광식
저물녘 가정역 풍경, 2020ⓒ유광식

 

가정동과 심곡동을 잇는 상아 고갯길은 이제 구도로 길이 되어 진입이 망설여진다. 언제 한번은 인도도 없는 그 길에 도보로 진입했다가 나보다도 되레 자동차들이 놀라는 눈치였다. 좁은 왕복 2차로 도로는 산기슭의 풍광과 더불어 곡선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안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상아 고갯길을 품는 승학산에는 봉화 시설이 남아 있다. 교통과 통신의 교차로, 가정역 부근이 새롭게 링크되기 직전이다. 앞으로 코로나-19가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현재 낚시질이 잘 되는 것으로 보면 명소, 포인트이긴 한가보다. 흙을 퍼낸 후 돌 끌어 올린 새 가정별장, ‘루(樓)’가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 

 

상아 고갯길이 있는 승학산(101m)과 개발지, 2020ⓒ유광식
상아 고갯길이 있는 승학산(101m)과 개발지, 2020ⓒ유광식

 

정류장이 도로 중앙에 있다. 지하철에서 내려 환승까지는 10분을 기다려야 한다. 핸드폰을 잠시 접고 멍하니 앞을 보고 있자니 변화의 한복판에 놓인 것처럼 주변이 빙빙 돌아가며 감시탑에 올라있는 듯하다. 참새 한 마리가 정류장 끄트머리 잔디밭에 생을 다하고 누워 있었다. 반듯한 모습으로 옆으로 누운 자세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안쓰러웠다. 자동차가 오가는 너무 시끄러운 구석이었기 때문이다.   

 

가정동 주택가, 2019ⓒ유광식
가정동 주택가, 2019ⓒ유광식
루원시티 개발 현장 속 나이브한 인도, 2020ⓒ유광식
루원시티 개발 현장 속 나이브한 인도, 2020ⓒ유광식

 

어떤 공간의 복잡함이 거둬지면 앞으로 다시 복잡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가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거리비례 원칙에 따라 건물도 좀 더 가정식답게 조성되면 어떨까. 가정역 부근이 자동차, 개발 소음에 덮이는 곳이 아닌 담백한 길목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대로는 절대 안 될 것이지만, 공감하는 시선이나마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파란색 701번 굴절버스가 도착했다. ‘삑~! 환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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