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씨앗과 책읽기
상태바
복숭아 씨앗과 책읽기
  • 최종규
  • 승인 2011.09.21 0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과 삶] 아줌마 자전거, 아저씨 자전거

ㄱ. 아줌마 자전거, 아저씨 자전거

 일본 사진쟁이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를 읽다가 문득 생각한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기에도 ‘애 둘을 태우는 아줌마 자전거’ 모습이 들어왔고, 어김없이 찍혔다. 아이 하나는 자전거 앞이나 뒤에 걸상을 붙여 앉힌 다음 아이 하나는 등에 업고 마실을 다니는 아주머니가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이나 미국이나 꽤 있다. 이러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분 또한 제법 많다.

 그런데 한 가지는 없다. 아이를 둘씩 자전거에 태우며 저잣거리에 장보러 다니는 아주머니는 있지만, 아이를 하나라든지 둘을 자전거에 태우며 저잣거리에 장보러 다니는 아저씨는 없다(또는 아주 드물다). 아이를 둘씩 자전거에 태우며 어린이집에 맡기거나 데려오는 아주머니는 흔하게 만나지만, 아이를 하나라든지 둘을 자전거에 태워 어린이집을 드나드는 아저씨는 없다(아니면 아주 드물다).

 이제는 아주머니도 자가용을 많이 몬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저씨는 으레 자가용을 몬다. 아주머니는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며 장보기를 마치거나 어린이집에 들러 집으로 돌아오고도 집안일을 시원시원 해낼 뿐 아니라, 밥도 예쁘게 차린다. 아저씨 가운데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로 아이들을 태운 다음, 집에서 집안일을 거뜬히 치르면서 밥 또한 곱게 차리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저씨들은 자전거를 몰아도 혼자 씽씽 내달리는 비싸구려 자전거에만 눈길을 두곤 한다.


ㄴ. 복숭아 씨앗

 복숭아를 달콤하게 먹고 나면 굵직한 씨앗이 나옵니다. 복숭아 씨앗은 딱딱한 껍데기에 싸여 안쪽에 곱게 깃듭니다. 이 씨앗이 보드라운 흙 품에 안겨 힘차게 뿌리를 내리면 복숭아 새싹이 돋고, 이 복숭아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서 복숭아나무로 큰다면, 사람들이 맛나게 즐기는 복숭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복숭아 씨앗부터 돌보아 어린나무로 키운 한 그루를 장만해서 복숭아나무를 심어 복숭아를 얻을 수 있겠지요. 누군가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해서 돈을 번 다음 복숭아 열매를 저잣거리에서 장만할 수 있을 테고요. 어느 쪽이 되든 복숭아를 먹기는 똑같습니다. 스스로 복숭아나무를 돌보며 복숭아 열매를 얻든, 돈으로 저잣거리에서 복숭아 열매를 사든, 복숭아를 먹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나, 복숭아 한 알을 먹는 매무새와 삶은 서로 다릅니다.

 손수 모판을 만들어 모를 심은 다음에 피를 뽑고 논둑 김을 맨 다음 낫으로 벼를 베어 낟알을 하나하나 떨군 다음 키질을 해서 돌을 고르고, 나중에 방아를 찧어 겨를 벗긴 다음 쌀을 조리로 일고 나서 잘 씻어서 쌀뜨물로 된장국을 끓이고 이 쌀로 밥을 지어 먹을 때에는, 그저 돈만 벌어 쌀을 사다 먹을 때하고 같을 수 없겠지요.

 어느 쪽이 가장 옳은 삶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자가용을 몰면서 살아야 합니다. 자가용으로 씽씽 내달리지 않고서는 바쁜 일을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몹시 바쁘고 힘들면서도 자가용을 몰지 않고 자전거를 몰거나 두 다리로 걷거나 버스나 전철을 탑니다.

 옳으니 그르니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꼭 따져야 한다면, 내 삶을 어떻게 빛내고 내 꿈을 어떻게 펼치며 내 하루를 어떻게 즐기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새벽부터 밤까지 집일과 아이돌보기를 하느라 꼬박 보내느라 책을 한 번도 손에 쥐지 못합니다. 아니, 손에 책을 쥐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손에서 물기 마를 겨를이 없으니 이대로 휘몰아치면서 눈이 저절로 감겨 고스란히 곯아떨어질 판입니다.

ㄷ. 손목 책읽기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 몸과 마음을 하나도 모릅니다. 아픈 사람은 안 아픈 사람이 마음껏 뛸 때에 몸과 마음이 어떠한가를 조금도 모릅니다. 돈있는 사람은 돈없는 사람 고단한 삶을 터럭만큼도 모릅니다. 돈없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 넉넉한 삶을 모래알만큼도 모릅니다.

 그제 아침 둘째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데 왼손목이 찌릿하면서 조금도 힘을 줄 수 없습니다. 왼손목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비빔질이나 헹굼질뿐 아니라 바가지로 물을 뜰 수조차 없습니다. 밥을 할 때에 왼손으로 도마를 들어 씻는다든지, 왼손으로 그릇이나 접시를 들어 오른손에는 수세미를 들 때에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칫 그릇이나 접시를 놓칠 뻔할 뿐 아니라 자꾸 아파서 아예 들지를 못합니다. 어찌저찌 다 한 빨래를 짤 수도 없고 털 수도 없습니다. 다 끓인 미역국을 그릇에 담아 들어 옮길 수도 없습니다. 이런 손으로 무얼 할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겉보기로는 멀쩡하다지만 속에서 망가졌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픈 왼손목으로 책짐 싸기는 그대로 합니다. 비질을 하며 방을 씁니다. 기저귀 빨래도 그대로 하고, 밥도 고스란히 합니다. 첫째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 마실을 다녀옵니다.

 이틀이 지난 아침, 왼손목이 찌릿찌릿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럭저럭 쓸 수는 있습니다. 아니, 안 쓰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안 쓴다면 우리 집일을 할 사람이 없고, 갓난쟁이 기저귀를 댈 수 없을 뿐 아니라, 첫째랑 옆지기한테 밥을 먹일 수 없습니다. 이 왼손목을 어찌저찌 쓰지 않는다면 우리 집안 밥벌이 노릇까지 하는 글쓰기나 사진찍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제와 어제 잠자리에 누워 왼손목을 오른손으로 살며시 쥐고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왼손목이 아프니 집일을 하는 데에 품이 더 들고, 품이 더 드니 더 고단해서 그야말로 하루 한 쪽 책읽기조차 아예 생각을 못합니다. 손목이 아프면 가벼운 책을 들 때에도 찌릿하면서 눈물이 찔끔 납니다. 무겁다 싶도록 만든 책은 이런 손목으로는 들어서 읽을 수 없기도 하지만, 들어서 나를 수 없기도 합니다. 가벼운 종이로 조그맣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면, 손목이 아픈 사람은 차마 건드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읽도록 만드는 책이라는 어린이책은 으레 겉을 두껍게 합니다. 그림책은 겉종이가 꽤 두껍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거칠게 보니까 이렇게 만든다지만, 아이들은 처음부터 책을 거칠게 보지 않습니다. 제 어버이가 책을 보드라이 매만지면서 읽으면,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보드라이 매만지면서 예쁘게 건사합니다. 아이들은 겉종이가 두꺼운 책을 들면서 무겁다고 느낍니다. 어른 가운데에도 손목이 아픈 사람은 겉종이가 두껍거나 무거운 책은 참으로 무겁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겉종이가 얇고 가벼워도 예쁘고 정갈히 건사할 줄 알 뿐 아니라, 어버이나 어른한테서 이렇게 책을 다루어야 하는 줄 배워야 합니다. 거칠게 다루고 많이 넘기니까 두껍게 겉종이를 댄다고 하지만, 가볍고 얇게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곱고 알뜰히 건사해서 오래오래 즐길 수 있도록 만들 뿐 아니라, 책을 어떻게 다루고 넘기며 즐겨야 하는가를 아이들 스스로 깨닫도록 마음밥부터 찬찬히 먹이는 어른으로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