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아니면 타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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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아니면 타기 힘들다"
  • 박병일
  • 승인 2011.09.15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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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의 자동차 이야기] '슈퍼 자이언트 카' 캐딜락

제너럴 모터스의 간판스타 ‘캐딜락’(Cadillac)

1976년 형 캐딜락 엘도라도

세계 3대 최고급 승용차를 꼽으라면 단연 롤스로이스, 벤츠, 그리고 캐딜락이다. 미국에서도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한 번 타 보기도 힘들다는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업계 선두 주자 제너럴 모터스의 간판 스타이며, 링컨 컨티넨탈과 함께 대통령 전용차로 쓰인다.

캐딜락이 백악관 전용차가 된 것은 미국의 제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때부터였다. 후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자 자신의 캐딜락을 몰고 4개월 동안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또 전설적인 팝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 팬이었다. 그는 취미로 자동차를 모으다가 마음에 드는 친구가 생기면 선뜻 선물로 주곤 했지만, 캐딜락만은 예외였다고 한다.

탐험가 이름을 딴 ‘캐딜락’

캐딜락 자동차 회사를 세운 사람은 헨리 릴랜드다. 그는 1902년에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여 캐딜락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회사들이 창업자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사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릴랜드는 1701년에 디트로이트를 발견한 프랑스 탐험가 앙트완느 드 모드 캐딜락 장군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캐딜락이라고 했다.

한 때 총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던 릴랜드는 1천분의 1의 오차까지도 잡아내는 귀신같은 기술자였다. 이런 릴랜드의 솜씨로 엄격하고 꼼꼼하게 만들어진 캐딜락 1호 모델 A는 1902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기통에 시속 48km의 속도를 냈던 2인승 승용차 모델 A는 다음 해에 열린 뉴욕 모터쇼에서 단 일주일 만에 일년치 예약이 다 끝날 정도로 반응이 대단했다. 캐딜락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무렵, 영국의 자동차 판매업자인 바네트는 캐딜락을 영국으로 들여갔으나, 영국 귀족들은 이 차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고심하던 바네트에게 캐딜락은 부품을 바꿔 끼워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정밀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깎고 다듬어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같은 모델이라도 모양에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자동차 고장이 나면 부품을 갈아 끼우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1천분의 1의 오차까지도 허용치 않았던 캐딜락만은 예외였다. 바네트는 황실 자동차 클럽이라는 권위 있는 단체에서 캐딜락을 실험해 보이기로 결심했다.

1908년, 바네트는 캐딜락의 신형 모델 3대를 황실 자동차 클럽 회원들이 보는 앞에서 모조리 분해한 다음, 부품들을 마구 섞었다. 어떤 것이 어느 차 부품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 다음, 바네트는 그 뒤섞인 부품들로 차를 다시 조립하였다. 그리고 다시 조립한 이 차들로 800km를 쉬지 않고 달려 보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정밀 검사를 해봐도 분해하기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웬만한 차 같으면 고물이 되어 버렸을 텐데 말이다.

이 사건으로 캐딜락은 우수성을 인정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황실 클럽에서 수여하는 드와 트로피를 받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드와 트로피를 받은 바로 그 해, 캐딜락은 당시 무섭게 성장하고 있던 제너럴 모터스 사에 넘어갔다. 제너럴 모터스 간판 차종으로 내세운다는 조건으로 릴랜드가 제너럴 모터스의 듀런트에게 판 것이었다. 당시에 제너럴 모터스는 뷰익, 올즈모빌, 폰티액을 거느린 거대한 기업이었다.

초대형 승용차 캐딜락 V16

1920년대 미국에서는 포드, 크라이슬러, 제네럴 모터스가 최고의 자동차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1928년에 제너럴 모터스가 선두 자리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포드나 크라이슬러는 제너럴 모터스의 막강한 경쟁자였다. 제너럴 모터스는 두 경쟁 회사를 따돌리기 위해, 최고급차 개발에 박차를 가한 끝에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 드디어 야심작 캐딜락 V16을 내놓았다. 캐딜락 V16은 세계 최초로 16기통을 단 초대형 승용차로서, 7,400cc급 165마력에서 시속 160km로 달릴 수 있었다. 유연한 외형, 상상을 초월하는 힘으로 V16은 1930년대 미국 상류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캐딜락 V16이 바로 앞서 얘기했던, 미국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이탈리아 마피아의 대부 알 카포네가 좋아했던 차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동차 왕국의 탄생

제너럴 모터스를 처음 세운 사람은 윌리엄 듀런트라는 사람이다. 그는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나,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보험 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돈 버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져, 스물다섯 살 때 결국 마차 공장을 차렸다.

한편 그 무렵, 미국에는 크고 작은 자동차 회사들이 계속 생기고 있었다. 마차 시대는 가고, 자동차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동차를 만들 재능이 없었던 듀런트는 그래서 한 가지 생각을 해냈다.

‘힘들게 몇 달씩, 그것도 재산까지 털어 가면서 자동차를 만들 필요가 있나! 그래, 돈이 없어 쩔쩔매는 자동차 회사에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그 회사를 차지하자.’

이렇게 생각한 듀런트는 자동차를 개발해 놓고도 돈이 없어서 팔지 못하는 회사를 찾아보았다. 마침 뷰익이라는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1904년, 뷰익 자동차 회사를 세웠던 뷰익은 듀런트에게 빌린 빚을 갚다 끝내는 자신이 세웠던 회사를 억울하게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뷰익 자동차 회사를 소넹 넣은 듀런트는 비슷한 방법으로 계속 회사를 키워갔다. 우선 큰 돈을 들여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 제너럴 모터스라는 자동차 그룹을 세우고 올즈모빌, 캐딜락을 사들였다. 당시 올즈모빌은 포드를 앞지르는, 미국에서 제일 큰 자동차 회사였다.

그 후 듀런트의 사업 실력을 높이 산 유욕의 은행과 증권 회사들은 듀런트가 원하는 대로 돈을 빌려 주기 시작했다.

듀런트의 다음 목표는 포드 자동차였다. 그러나 포드는 넘어가지 않았다. 헨리 포드가 현금 800만 달러(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를 한꺼번에 주지 않으면 회사를 넘기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포드를 사들이는 데 실패하자, 듀런트에게 막대한 돈을 빌려주었던 뉴욕의 금융가에서는 듀런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러 자동차 회사들을 사들이느라 듀런트가 은행에서 빌린 돈의 액수가 엄청난데 비해 유런트가 사들인 회사들을 관리하는 데는 전혀 소질이 없어서, 뷰익과 캐딜락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적자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은행들은 더 이상 듀런트에게 제너럴 모터스를 맡겨 둘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고, 듀런트는 제너럴 모터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듀런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루이 시보레라는 사람을 끌어들여, 그의 기술로 ‘시보레’라는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시보레에서 만든 자동차는 나오자마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 포드보다 디자인과 가격이 다양해서 고객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차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돈이 모이기 시작하자, 듀런트는 루이 몰래 회사 돈으로 제너럴 모터스의 주식을 하나둘 사들이기 시작했다. 1915년 말 듀런트는 드디어 제너럴 모터스 주식을 50% 이상 가진 대주주로 되었다. 제너럴 모터스를 되찾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식을 줄 모르는 야심

듀런트가 없는 동안 제너럴 모터스는 탄탄한 회사로 되어 있었다. 캐딜락, 뷰익, 올즈모빌, 모두 돈을 착실히 벌어들였고, 덕분에 미국 제일의 자동차 회사까지도 넘보게 되었다.

그러나 듀런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닥치는 대로 회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마구잡이식 경영 때문에 제너럴 모터스는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경제공황까지 겹쳤고, 회사의 똑똑한 사람들은 하나둘 제너럴 모터스를 떠났다. 결국 듀런트는 또다시 회사에서 쫓겨나고 말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사기꾼 기질이 많았던 듀런트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평생 화려한 일생을 살았지만, 1947년 세상을 떠날 때는 완전히 무일푼이었다. 이 모두가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욕심이 없었다면 오늘날 제너럴 모터스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1953년 캐딜락 시리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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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호 2011-09-15 17:18:52
2기 시민기자 장태호입니다
자동차 매니아로서 많이 기대하고 있읍니다
좋은글 많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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