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헌책방 일꾼과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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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헌책방 일꾼과 '짜장면'
  • 최종규
  • 승인 2011.10.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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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착하면서 따스한 이야기

ㄱ. 서울 어느 출판사에 들를 때

 서울로 와서 어느 출판사를 들른다. 출판사 사장님이 일하는 방에 앉는다. 열린 창문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낮에 서울에 닿아 여러 시간을 보내며 처음으로 듣는 풀벌레 소리이다. 강변역에서 버스를 내릴 때에도 듣지 못한 소리요,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면서도 듣지 못한 소리이다. 출판사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 귀에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 안긴다. 아, 좋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이곳에서 나오는 책에도 풀벌레 기운이 조용히 깃들겠지. 이곳 일꾼들이 풀벌레 우는 소리를 깨닫든 못 깨닫든 풀벌레 기운은 살그머니 책마다 감돌겠지.

 풀벌레 한 마리 깃들 조그마한 수풀조차 없이 온통 시멘트와 철근으로 지은 우람한 건물만 덩그러니 잔뜩 선 책마을에서는 어떤 책이 태어날까. 줄거리가 알차고 짜임새가 훌륭하며 이야기가 멋들어진 책은 날마다 참 많이 태어난다. 그런데, 이 알차고 훌륭하며 멋들어지다는 책에 풀벌레 조그마한 울음소리가 스미지 못한다면? 값지고 뜻있으며 예쁘장한 책이라 하더라도 풀벌레 한 마리 조용히 울먹이는 소리가 깃들지 못한다면, 난 이 책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집어들어 읽어내지 못한다. 풀벌레 소리 흐르지 않는 책을 손에 쥐면 자꾸 눈물이 나며 슬프다.

ㄴ. 여관 텔레비전

 여관에서 잠을 깬다. 새벽 다섯 시를 조금 넘는다. 여관에서 묵어도 새벽에 잠이 깨기는 똑같다. 침대에서 뒹굴다가 텔레비전을 켜 본다. 운동경기를 보여주는 방송이 참 많다. 드문드문 영화가 나오고, 어떤 영화는 아래쪽에 ‘아이들이 보기에 알맞지 않은 시간대이니 아이들이 보지 않도록 잘 살펴 주십시오’ 비슷한 글월을 내보낸다. 열아홉 살 밑으로는 보지 말라는 빨갛다는 영화도 흐른다. 그렇지만 이런 영화 오른쪽 윗자리에 ‘19’이라는 동그란 딱지가 안 붙는다. 그저 서슴없이 흐른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은 하나같이 죽은 얼굴이다. 이 죽은 얼굴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지능이 있는 벌레가 며칠 만에 군인 10만을 죽였다. 이 벌레들 때문에 지구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줄거리를 보여주는 미국 영화가 흐른다. 어쩌면 이렇게 터무니없다 싶은 영화를 다 만들고 다 보여주는가 싶어 놀랍다. 게다가 이 ‘외계별 벌레 죽이기 영화’는 ‘벌레는 징그럽게 생겼으니 다 죽여야 해’ 같은 말을 거리끼지 않고 내뱉을 뿐 아니라, 벌레를 아주 모질게 고문을 하고 생체실험까지 한다. 게다가 벌레를 죽이거나 괴롭히면서 군인들이 낄낄대며 소리 높여 웃는다. 더욱이, ‘벌레를 잡는 거룩한 일’을 하도록 온 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군인이 됩시다’ 하고 외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패러디라는 영화인가? 아니면 참말 바보스러운 영화인가? 미국은 전쟁무기를 만들어 힘여린 나라를 짓밟아 지하자원을 빼앗을 뿐 아니라, 이렇게 전쟁영화를 끝없이 만들면서 사람들 마음에 ‘전쟁영웅’과 ‘전쟁놀이’ 마음을 심는 슬픈 짓을 언제까지 벌이려나.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들 착하면서 따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송을 하나라도 찾아볼 수 있기를 빌지만, 단추를 꾹꾹 눌러 한 바퀴를 돌아도 모조리 ‘물건 사고팔기’와 ‘주식’과 ‘하느님 사랑’과 ‘대입시험 문제풀이’와 ‘연예인 뒷얘기 호박씨 까기’와 ‘운동경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러한 방송을 즐기니까 이러한 방송만 있는 셈인가. 사람들한테 이러한 방송을 보여주며 길들이려고 이러한 방송만 넘치는 노릇인가. 골이 아프다. 여관 침대에 조금 더 누워서 머리를 식혀야겠다. 가게에 들러 김밥을 산 다음, 전철을 타고 얼른 춘천으로 가서 우리 네 식구 조용히 살아갈 멧기슭 옆에 낀 조그마한 살림집을 찾아보아야겠다.


ㄷ. 착한 헌책방

 착한 헌책방 아저씨가 짜장면을 시킨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짜장면을 한 다섯 달 만에 먹는다고 이야기한다. 짜장면 한 그릇에 4500원이다. 얼마 안 된다. 몇 젓가락 휘저으니 금세 바닥이 보인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하고 처음 짜장면을 먹던 날을 돌이킨다. 벌써 열일곱 해나 지난 옛일이다. 열일곱 해 동안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헌책을 팔아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 곧 일흔 나이가 될 헌책방 아저씨 두 다리는 얼마나 오래오래 이곳에서 튼튼히 버틸 수 있을까.

 나라 곳곳에서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재개발 바람이 분다. 재개발 바람이 그치면 개발 바람이 불고, 개발 바람이 멎을라치면 재개발 바람이 분다. 살가운 바람은 불지 않는다. 책을 읽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려는 알뜰한 사람들 휘파람 소리가 실리는 바람은 불지 않는다.

착한 헌책방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시끄럽다. 빗소리를 시끄럽다고 느낀다. 벌써 두 달째 햇살을 가로막기 때문에 빗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낀다. 비야, 네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자꾸 너를 탓하고 마는구나. 비야, 비야, 네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꾸 너를 탓해야 할까.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올해에 양수기가 잘 돌아서 헌책방 바닥이 물바다가 되지 않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착한 헌책방 바닥을 내려다본다. 바닥이 물자국으로 가득하다. 참말 물바다는 아니지만 물자국이 많다. 비가 퍼부을 때마다 착한 헌책방이 걱정스러웠고, 수십만 권에 이르는 이 책들이 새로운 임자를 못 만난 채 물을 먹고 말까 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둘째를 낳아 함께 살아가며 올해 들어 이 착한 헌책방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한테 둘째 이야기를 들려준다. 착한 헌책방 아저씨는 아주 잘 되었다며 고마운 인사말을 아낌없이 베푼다.

 착한 헌책방을 즐겨찾는 나는 얼마나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까. 나는 얼마나 착한 아버지일까. 나는 얼마나 착한 옆지기일까. 나는 얼마나 착한 동무이거나 일꾼이거나 사내일까. 착한 헌책방에서 장만한 착한 책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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