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시민이 만드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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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시민이 만드는 축제
  • 김종서
  • 승인 2011.12.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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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김종서 / 인천프랑스문화원 원장·인천대 불문과 겸임교수


프랑스 빌레흐반

우리는 축제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수많은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우리 일상 속에 늘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행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늘 하나 같이 "우리 지역은 문화의 볼모지"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은 문화행사가 있다. 문제는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이나 즐기는 사람들이 서로 갖고 있는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전문가도 많고 의식수준이 높은 관객도 많이 있다. 단지 그 '판'이 문제이다.

축제가 끝나고 합평회에 가보면 항상 예산 부족과 시민들의 참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축제 결과를 놓고 비판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축제의 성공을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구체적 대안과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을 찾아보기 위해 조금 특별한 프랑스의 한 도시 축제를 소개한다.

축제에는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드러나야 한다

프랑스 론-알프스 지방의 리용과 마주하고 있는 인구 15만 명의 빌레흐반이라는 도시가 있다. 현재 이 도시는 프랑스 지역에서도 도시공간 예술의 대표도시로 유명하다. 국립극장(TNP), 국립현대무용학교, 현대미술관, 역사박물관, 미디어, 영상문화 산업단지들이 모여 있어 대중예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도시이다. 빌레흐반은 단순히 장점이 많은 도시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집약도시, 이민자들의 도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강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에 레 젱비뜨(Les Invites)라는 대표 축제가 매년 6월 중순 4일간 열린다. 레 젱비뜨 축제는 다른 축제와는 다르게 예술성과 대중성이 함께 어우러져 공공장소에서 하는 축제로서, 프랑스에서도 대표적 거리예술축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레 젱비뜨는 다른 축제와 비슷하지 않은 독특한 그들만의 특징을 갖고 있다.

19세기 말 산업지역에 세워진 빌레흐반은 전통적으로 노동자와 이주민들이 모여 만든 도시이다. 다시 말해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이 리용이나 다른 도시에 비해 많이 열악한 도시였다. 세계 경제공황 시대였던 1934년 빌레흐반 시장이자 의사였던 라자르 구종(Lazare Goujon)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화장실과 샤워실이 구비된 아파트 그라뜨-씨엘(Gratte-Ciel)과 시청, 그리고 노동국을 만든다. 이 세 개 건물은 아직도 이 도시 정체성과 역사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노동국에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보건소, 보육원, 평생학습관, 문화시설들이 있어 지역 노동자와 이주민들의 건강과 교육, 문화를 함께 실현시킬 수 있는 장소다. 이 건물은 1972년 국립극장(TNP, Théâtre National Populaire)으로 지정되어 현재 빌레흐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주변도시에서도 공연을 보기 위해 찾고 있다.

바로 이 세 개 건물 앞에서 레 젱비뜨 축제가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왜냐하면 이 공공장소는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모두 이곳에 모여 빌레흐반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높인다. 4일간 축제에 도시는 도시공간예술 무대로 변형된다. 도시공간예술이란 도시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도시의 공공장소를 무대로 연출시키는 예술이다. 따라서 도시 곳곳이 무대로 되어 지역전체에서 대중음악, 세계음악, 거리공연들이 무료로 펼쳐지고 해마다 약 8만 명의 주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축제를 즐긴다.

빌레흐반의 레 젱비뜨(Les Invites)라는 축제이름의 의미는 단순히 공공장소에 예술작품들을 가져다 놓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예술적 행위에 대한 참여, 그리고 주민들 스스로 축제의 주체로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빌레흐반은 예술가들을 초대하고 주민들은 외부사람들을 초대한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제작 장소,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

빌레흐반의 현 시장 의지로 세워진 프라파즈 예술센터는 축제를 위한 전용공간인 동시에 축제의 제작장소이기도 하며 주민들이 직접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교감의 장소이다. 2002년 예술감독과 직원 두 명으로 시작한 축제사무국은 현재 6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으며, 센터는 사무국과 제작소(목재, 금속, 도료, 옷감, 합성수지 등)와 예술극단들을 위한 레지던시 공간이 있다. 센터는 축제의 축이다. 다시 말해 축제에 필요한 주제부터 구체적 연출까지, 도시공간장식을 위한 공동작업과 창작이 함께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축제 준비와 창작과정 중심은 시민들이라는 점이다. 센터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1년 내내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들을 통해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축제의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한다. 특히 축제 4개월 전부터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 예술가와 시민들이 함께 축제를 위해 고민하고 공동작업을 실시한다. 시민들은 전문참가자, 일반참가자, 자원봉사자 등으로 나뉘며 전문참가자들은 목공, 재봉 등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일반참가자와 자원봉사자는 소품과 간단한 무대장식들을 만든다. 예를 들어 2010년 <역사의 끈>이라는 현재 도시의 모습을 담은 갤러리제작에 6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하였고 2,500~3,000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시민참여는 개인과 개인, 주민모두가 함께 공동작품을 만들어감으로써 축제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일 뿐 아니라, 축제를 즐기고 지역 간 장벽을 허물며 예술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축제를 위해 지역 단체와 시민들을 위한 소통과 홍보 시간을 마련한다

축제의 성공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지역사회단체, 언론들과의 긴밀한 협조에 있다. 매년 축제의 주제가 결정되면 2월경 당해 연도 축제에 대한 설명회에 지역단체와 시민들을 초청한다. 빌레흐반 지역시민단체 1만 명을 대표하는  200여명의 대표자가 회의에 참석하며 예술감독, 초청예술가, 무대제작자들이 축제 주제와 축소모형, 사진과 그림 등으로 기획발표회를 한다. 이러한 발표를 통해 참가자들과 시민들은 충분한 소통을 기회를 얻게 되고 지역언론들 또한 축제 정보들에 대해 홍보한다.

축제 기획발표 후, 프라파즈 예술센터에서는 매주 화요일 지역의 모든 사람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작은 만남(다과회)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만남에는 시장, 의원들, 예술가, 문화관계자, 시민들이 함께 모여 축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한다. 이러한 소통을 통해 축제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축제를 홍보하는 효과를 얻는다. 따라서 이러한 소통과 홍보를 통해 축제는 주민들을 위해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현재 레 젱비뜨는 축제는 10년을 맞았다. 이 축제 특징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경계 없는 예술적 교류를 목표로 한다는 것과 4대륙 도시공간예술 공동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획 목적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미대륙에서 각 지역 시민과 예술가들이 상호 교류하여 각각의 도시공간 안에서 공공장소를 함께 만들어 문화의 다양성을 실현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축제의 성공은 시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참여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예술가와 시민들이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소를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문화적 실천은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정책에서 선택적 요소가 아니라 필수적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의 향유는 지역사회 주민으로서 자긍심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레 젱비뜨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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