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줍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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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줍는 아침
  • 김명남
  • 승인 2012.05.01 13: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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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김명남 / 시인


할멈 둘이 앞서 걸어가고 있다

살얼음 갯바위 틈새
얼어죽은 한 마리 주꾸미라도 주우려

갯바위를 걸어서
굴바구니 들고 갯티에 가는

생계 줍는 아침

(이세기 시집 『언 손』, 창비,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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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보통 아침이미지처럼 싱그러운 아침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어둠이 걷히는 시간은 생계를 살펴야 하는 시간이다. 생계를 주우러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다. 생계이다. 아침밥 먹는 일보다 더 급한 게 갯벌로 나가 때 맞춰 한 마리라도 더 건지는 일이 일상일 섬마을.

인천 서해 섬이다. 뭍사람들이 볼 때 그냥 다 같은 갯벌이지만 섬사람들에겐 갯벌도 제각기 다르다. 갯바위, 갯티, 갯벌. 모두 하나이지만 별개이다. 갯티는 갯바위와 갯벌 사이의 공간으로 모래갯벌이다. 갯티에서 바다 쪽으로 더 나가면 뭍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갯벌이다. 인천 섬지역 방언인 갯티는 삶을 이끌어가는 신성한 장소이며, 어른들에겐 일터로 노동의 공간이며, 아이들에겐 놀이터이다. 그렇기에 갯티는 섬사람들의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가막조개가 나오는 갯벌과 달리 갯티에서는 주로 굴, 고둥, 돌김, 돌미역, 파래, 낙지, 박하지, 바지락 등을 캔다. 갯티는 밭이다. 그러니 섬사람들의 삶 자체가 갯티인 것.

겨울이다. 갯바위 틈새에 살얼음이 얼 정도이니 얼마나 춥겠는가. 살을 에는 추운 날 아침, 섬의 어머니들은 굴바구니 들고 갯티로 나간다. 농부가 밭에서 농작물을 캐듯 굴을 캔다. 아니 생계를 캔다.

굼실굼실 이어진 갯가를 따라 가면 고물고물 수많은 생명을 만난다. 고개 들면 거친 바람에 바다가 팔딱거린다. 속살을 뒤집는 바다는 오늘도 삶을 품고 생을 그러모은다. 심장이 파닥거리듯 바다는 제 온몸으로 거쳐온 시간을 뒤척인다.

시인은 팔딱거리는 삶을 읊는다. 시인의 고향은 인천 덕적군도 섬 중 하나인 문갑도. 바로 그 덕적군도에 속한 굴업도가 한때 핵폐기장이 들어설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덕적군도 도서민들이 온몸으로 막아 핵폐기장 건설은 철회되었지만 이제 그 굴업도에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아우성이다. 애써 지킨 터전이 녹색사막으로 황폐해질 암담함의 그늘이 짙게 깔리어있는 것이다. 덕적군도 섬들은 하나의 운명이다. 굴업도에 골프장이 생기면 주변 다른 섬들도 생태를 잃고, 섬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 분명한 일일 터!

시인은 섬사람들의 애환을 함께하면서 생생한 언어로 시를 쓴다. 고난스러운 삶의 여정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심장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서해섬지역을 우리 문학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시인이 계속 고향에 대한 끈을 놓지 않기를. 그래서 먼훗날 그의 시가 이 시대를 살았던 서해 섬사람들의 삶을 받아 적고 기록한 증언과 증거가 되길. 시인이 건져올린 짭조름한 언어가 인천 섬문화사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시인은 서해 도서 지역의 ‘갯팃길’을 제안한다. 각 지자체마다 둘레길을 만들고 있는데 인천도 특성상 섬지역을 하나로 잇는 ‘갯팃길’을 만들면 자연스레 생태환경보호와 지역주민들의 소득원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에서 귀 기울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제안으로 설득력이 높다. 덕적군도 섬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갯팃길’은 섬들을 재발견하고 섬의 생태와 섬문화를 알리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묻노니, 생계 줍는 아침을 맞이하도록 우리가 섬을 지킬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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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명남(金明南)
2000년 『작가들』여름호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시간이 일렁이는 소리를 듣다』가 있음. 인천작가회의 사무국장 역임. 인천부곡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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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표 2012-05-04 07:36:34
공감가는 시와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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