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에서 얻은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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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에서 얻은 '성과'
  • 최일화
  • 승인 2012.05.0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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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
타고르 시인 옛집 다섯 채가 모여 있는  '우타라얀' 필자는 지난 2월 초부터 4월 중순까지 72일간 인도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주로 타고르가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오랫동안 집필활동을 하던 산티니케탄에 머물렀습니다.

다음 글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입니다. 타고르는 1913년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이 연설은 1921년 5월 26일 행해졌습니다. 나는 산티니케탄 그의 옛집을 방문해 그곳 관리 직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여직원은 당황하면서 세계 1차 대전의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이라고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 차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려고 했지만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 연설문 자료는 타고르 시인의 옛집 다섯 채가 모여 있는 우타라얀(Utarayana) 정문 근처 노점상에게서 산 기탄잘리 영문시집 뒷부분에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을 통해 타고르의 노벨상 수락 연설문을 입수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구하지 못했습니다. 어딘가 자료가 있겠지만 인터넷 자료엔 올라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이 자료가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그 영문 시집의 자료를 일일이 타이핑해서 번역을 했습니다. 내용이 좀 길기는 한데 한 번 읽어보면 당시 인도를 비롯한 동양의 처한 상황과 노벨상 수상에 대한 타고르의 감회와 당시 동서양의 상황과 타고르의 삶의 목표를 알 수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 연설문

-R. 타고르

마침내 내가 여러분 나라에 와서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나의 작품을 인정하고 보상함으로써 여러분들이 내게 안겨준 영예에 고마움을 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영국의 한 출판사로부터 전보를 받던 날의 그 오후를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겠지만 그 때 나는 산티니케탄의 학교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 나는 학교 근처의 숲으로 한 무리의 학생들을 인솔하면서 전보국과 전화국 옆을 지나가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우리에게 뛰어오며 전보를 번쩍 들어 올렸지요. 나는 영국인 손님과 함께 마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 전보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고 나중에 읽기로 하고 그냥 주머니에 넣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인 방문객은 그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며 어서 전보를 읽어보라고 종용을 했습니다.

전보를 열어 내용을 읽고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전보에 적혀 있는 말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과 그 의미를 내가 잘못 읽었을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확실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지요. 이 사실이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얼마나 기쁜 일이었을지는 여러분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더 깊이 나를 감동시킨 것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존경하는 사람에게 수여된 이 영예를 자랑스럽게 느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영예를 우리 국민 모두가 나와 함께 나누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머지 오후는 이렇게 지나가고 밤이 되었을 때 나는 테라스에 혼자 앉아 다른 인종에 속해 있고 서양 아이들과는 산과 바다로 분리되어 멀리 떨어져 있는데 서양에 의해 내 시가 인정받고 영예를 안게 된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양된 감정을 지니고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그 질문을 탐색해보는 시간이었음을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겸손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나의 인생이 전개되어 왔는지 기억합니다. 내가 스물다섯쯤 되었을 때 갠지스 강가 숨겨진 벵골마을 보트하우스에서 극도의 고독 속에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가을철 히말라야 호수로부터 날아오는 기러기 떼가 나의 유일한 친구였고 철저한 고독 활짝 트인 공간에서 햇빛과 함께 흘러넘치는 포도주에 취해 있는 듯 했습니다.강물의 웅얼거림이 내게 말을 걸고 자연의 비밀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고독 속에서 꿈꾸고 시와 학문으로 내 꿈에 형태를 부여하며 나의 날들은 흘러가고 나는 생각들을 잡지와 신문을 통해 켈커타 대중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이해하듯이 그것은 서양의 삶과는 아주 다른 삶의 형태입니다, 서양의 어떤 시인이나 작가가 그러한 절대적인 은둔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은둔처라고 하는 그 자체가 서양엔 없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나의 이러한 생활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에게 나는 희미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나의 고장 밖으로는 내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나는 그것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일반대중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중 그 고독을 벗어나 인류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동경을 느끼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깊이 명상하거나 단지 내 꿈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확실한 봉사, 어떤 결정적인 일을 통해서 나의 사상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에 다가온 한 가지, 그 한 가지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일에 특히 적합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정규교육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나는 이 과업을 떠맡아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연에 대하여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에 대한 사랑도 자연히 갖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교육기관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나의 목표는 인간의 어린이들에게 풍부한 기쁨의 자유, 생활의 자유, 자연과 함께하는 풍요로운 교육의 자유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려서 학교 다닐 동안 대부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장애물들로 나 역시도 고통을 겪고 기계와도 같은 교육을 경험 했는데 그것은 어린이들이 끝없이 갈증을 느끼는 생활의 자유와 기쁨을 말살하는 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자유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주위의 몇 몇 어린이를 모아서 가르쳤습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지요. 나는 친구였고 놀이 친구였습니다. 그들과 생활을 함께 했고 한 무리의 어리이들 중에서 내가 가장 큰 어린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대기 속에서 함께 성장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생기와 기쁨, 재잘거림과 노랫소리가 대기를 환희의 영혼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나는 매일 그 공기를 마시며 거기 있었습니다. 해질 무렵 저녁 시간에는 그늘로 덮인 도로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혼자 앉아 있곤 했습니다. 오후 시간의 고요함 속에서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외침과 노래와 즐거운 목소리는 대지의 심장에서 무한한 하늘의 가슴으로 향하는 생명의 분수처럼 솟구쳤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슴으로부터 하늘 높은 데까지 솟아오르는 모든 환희와 열망의 표현이며 인간 삶 속에서 우러나는 모든 외침을 상징하고 있었으며 그 외침을 내 목전에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성장한 어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우리의 열망의 외침을 무한 속으로 띄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느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는 나의 시 기탄잘리(Gitanjali)를 썼습니다. 나는 한밤중 인도 하늘의 장엄한 별 아래서 나 자신에게 그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아침이나 저녁 타오르는 석양 속에서, 다시 한 번 밖으로 나가 넓은 세상의 심장을 만나야 한다고 느끼는 날이 왔을 때까지 나는 나의 노래들을 쓰곤 했지요.

나의 모든 자연의 벗들에게로 향한 봉사와 즐거워하는 어린이들 사이에 있는 삶의 은둔처로부터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더 넓은 세상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기 위한 서곡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 서양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강렬한 열망을 느꼈습니다. 현 시대는 풍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서양 사람들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삶은 모든 경계를 넘어 흘러넘치고 위대한 미래를 향하여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서양으로 가서 성스러운 존재가 거처하는 그 사원의 비밀의 성역 사람들을 내가 죽기 전에 만나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힘과 삶의 열망을 품고 있는 성스러운 사람들이 서양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왔습니다. 내 기탄잘리 시들은 벵골어로 쓰였고 나는 그것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영어에 숙달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출판해야겠다는 어떤 열망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서양으로 갈 때 그 원고를 가지고 갔지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시들이 영국의 출판업자 앞에 놓였을 때 원고 상태로 이 시를 전에 읽어봤던 사람들은 아주 기뻐했던 것입니다. 나는 받아들여졌고 서양 사람들의 마음은 지체 없이 열렸습니다. 거의 순간적으로 서양 사람들에게 시인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서양과 멀리 떨어져 아무런 활동도 없이 50여년을 살아온 내게는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게 놀라움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이것이 아마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서양의 정신과 생활로부터 분리되어 은둔처에서 보냈던 여러 해가 그들에게 깊은 휴식과 고요의 느낌, 영원의 느낌을 가져다주었으며 이것이 정확하게 활동적이며 깊은 마음의 평화, 그 무한한 평화에 목말라하는 서양인들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정서가 아닐까 느꼈습니다. 나의 건강성은 바로 갠지스 강변의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보냈던 젊은 날로부터 깊은 명상 속에서 단련된 것입니다. 나의 기질 속에 저장되어 있던 그 시절의 평화를 꺼내어 서양 사람들에게 높이 들어 올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제공한 것이 그들에게 감사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나는 그 상을 나 개인의 몫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동양정신이고 나는 그것을 서양인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동양은 인간의 정신적 어머니가 되지 못했고 서양 사람이나 그 어린이들이 게임이나 놀이 중에 다쳤거나 굶주리게 되거나 화가 났을 때 그들의 얼굴을 동양이라는 고요한 어머니에게 돌리지를 않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동양으로부터 그들의 양식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피곤할 때 밤의 휴식을 동양으로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절망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바로 그 순간에 내가 왔고 서양 사람들은 다시 그의 얼굴을 동양 쪽으로 돌리고 양분을 찾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양의 친구들로부터 내가 보상 받은 그 동양정신을 내가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내게 수여한 그 상이 나 자신에게서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개인으로서 그 상을 받을 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상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해왔습니다. 나는 이 상을 동양의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바칩니다. 그러면 이것을 흙속에 심어진 씨앗이 되어 다시 그것을 뿌린 사람들에게 돌아올 것이고 그들에게 혜택을 주면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내게 주신 상금을 나는 최근에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는 대학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대학은 서양의 학생들이 와서 동양의 형제들을 만나 함께 일하고 수세기 동안 숨겨져 있던 동양의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동양의 정신적 자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작업은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인도의 문명이 영광스러웠던 날 인도가 위대한 대학을 가지고 있던 시절을 나는 여러분에게 상기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등불 하나가 켜질 때 그것은 좁은 범위 내에서만 들어 올려 질 수 는 없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장엄함과 지혜와 부가 함께하는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도는 그러한 자원을 자국의 어린이들만 위해서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인도는 호의를 가지고 모든 인류 종족에게 문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중국인, 일본인, 페르시아인과 모든 다른 민족들은 인도에 와서 가장 좋은 것, 모든 시대 모든 인류에게 인도가 제공하는 가장 좋은 것을 얻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인도는 그것을 너그럽게 제공했지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전통은 가르치는 대가로 학생들로부터 물질적 비용을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인도에서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학생들에게 나눌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오는 학생들을 위해서만 선생님들에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선물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제공함으로써 삶의 사명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바로 선생님들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은 바로 인도 속에 저장되어 왔던 것을 주고, 주는 것이 가능하도록 인도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자기표현이며, 이것은 인도의 각 주에서 시작된 대학들의 설립 기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고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류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호의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전 세계와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데서 오는 은둔과 어둠의 고난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동양의 인간성과 동양의 문화에 비해 물질적인 우수성을 가지고 있는 서양 민족과 접촉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일 세기 넘게 우리 자신의 문명에 대한 확신을 잃고 있었으며 우리 자신의 문화를 위해서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일에 우리는 아무런 사전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 세기가 넘는 동안 우리 학생들은 자국의 과거 문명의 가치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한 채 키워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유산 속에 숨겨 있던 위대성에 접촉할 기회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단지 남에게 구걸하거나 문화를 빌리며 영원한 어린아이처럼 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는 영예조차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낭비해서는 안 될 때는 왔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 세기에서 또 한 세기로, 이 나라 저 나라 남들 앞에 가난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도 우리가 자랑으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는지, 남들에게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유였으며 그것이 나로 하여금 동서양의 학생들이 만나 영혼의 양식을 함께 나눌 축제를 열 수 있는 국제적인 교육기관 설립을 결심하도록 이끈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게 상을 수여한 것이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 위대한 목적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점을 나는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서양에 오도록 만들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저 먼 동양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이 축제에 여러분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그것을 요청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나의 초대가 거절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문했고 그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환영은 그 자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이 서양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서양도 동양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서로 만나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내가 이 위대한 시대, 위대한 시기에 속해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동서양이 같이 모인 이 때, 이 위대한 시대를 선언하는데 있어서 내가 몇 가지 일을 해왔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만나기 위해서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만나기 위해서 자신들의 초대장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문명과 미래의 위대한 문화를 건설하는데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나는 번역을 통해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내 글로 인해 그러한 사상이 여러분들에게 전달되었다고 확신합니다.

동서양 모두에게 속해있는, 그리고 동양에서 출발한 사상이 서양으로 갈 수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서양 사람들에 의해 그 동양 사상이 이곳에서 안식을 얻고 거처를 정하고 환영받기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내 글 속에 시대가 요청하는 목소리를 운이 좋게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영광스러운 기회를 내게 준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하는 바입니다. 스웨덴으로부터 내가 받은 인정은 나를 서양의 출판사 앞으로 나자신과 나의 작품을 끌어냈으며 그것이 또한 내게 다소간의 곤경을 주었다는 점을 확인하여 드리는 바입니다.

나에게 익숙하던 은둔생활이 그것으로 인해 깨진 것입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엄청난 대중 앞에 나를 끌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적응이 안 되고 있습니다. 내가 서양에서 엄청난 대중 앞에 섰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위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내게 주었던 그런 방식의 찬사와 큰 칭찬의 선물을 받아들이는데 아직 익숙해있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 앞에 섰을 때 수줍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기회를 내게 주시고 동서양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모이는데 도구가 되도록 해 주신데 대해 신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이 끝나는 날 까지 그 사명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합니다. 동서양이 서로 분개하고 있는 것은 다시 평화롭게 되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인가 해야만 하고 그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이 교육기관을 시작한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거절하고 어떤 민족을 거절하고, 어떤 문화를 거절하는 것이 인도의 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도의 정신은 항상 통합의 사상을 주장해 왔습니다. 통합의 사상은 결코 무엇인가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어떤 민족 어떤 문화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에 길을 낼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정신적 힘을 발휘하고 높은 목표가 되어왔으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전체 우주 속에서 어는 것 하나 배제하지 않으며 사랑과 동정심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도의 정신입니다, 지금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에 똑같이 위대한 인도의 어린이들이 서양의 거절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의 상처를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그들이 서양으로부터 받는 교훈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거절은 우리의 사명이 아닙니다. 인도는 모든 민족을 통합하기 위해서 거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인도 내에서 민족 간의 통합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인종의 문제이고 모든 인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드라비족이 있고, 모하메트족이 있고, 힌두민족이 있으며 인도 내에서 모두 서로 다른 구역과 다른 공동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표면적인 정치적 통합의 결속도 우리에게 호소력을 갖지 못하고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우리에게 현실성 있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깊이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심오한 통합, 서로 다른 종족들 간의 정신적 통합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영혼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 모든 민족에게서 발견되는 통합의 위대한 유대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장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불멸의 작품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으며 종교적 통합과 동정심을 주창하는 위대한 작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를 자기 자신처럼 보는 사람, 모든 인류를 자기 자신처럼 깨닫는 사람은 진리를 아는 것이다'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이러한 것이 동양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서양 어린이들에 의해서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위대한 불멸의 진리를 또한 그들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다른 민족 다른 개인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평화와 화해를 가져와 우정과 사랑의 유대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싸우는 짐승과는 다릅니다. 우리 삶에서 우선하는 것은 자아의 삶인 것입니다. 자아는 사적인 영역을 창조해내고 고통과 질투와 미움, 정치적 상업적 경쟁 속에서 삶을 고양시킵니다. 우리가 사랑과 종족간의 통합이라는 성역의 중심부로 내려간다면 모든 이러한 그릇된 현상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인도의 이러한 위대한 사명을 위하여 나는 이 대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요청합니다. 내가 이런 기회를 갖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와서 손을 맞잡고, 이 교육기관이 단지 우리에게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과 학생들이 와서 이 대학교가 동서양의 공동의 교육기관이 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초대하는 바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이바지하고 우리 모두 함께 분열되지 않는 세계 인류의 대표자가 되어 이 교육기관이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나는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부탁하고 모든 인간의 통합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오기를 요청합니다.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1921. 5. 26 스톡홀름에서

*혹시 영문 원고가 필요하신 분은 댓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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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균 2012-06-03 15:30:03
귀한 연설문 잘 보았습니다. 메일로 영문 원고 부탁합니다. tragu97@naver.com

김영애 2012-05-07 17:39:22
잘 번역된 타고르시인의 수락연살문을 잘 읽었습니다.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영문원본을 받을 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영애올림
이메일 susauk04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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