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연극을 완성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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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연극을 완성시킵니다"
  • 박은혜
  • 승인 2012.06.13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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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회 새얼아침대화, 연극배우 박정자 강사 초청

스크린을 보며 사진별로 에피소드 형식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연극배우 박정자 씨

제315회 새얼아침대화가 13일 오전 7시 박정자 연극배우를 강사로 진행됐다. 새얼아침대화 강연자로 연극배우가 서기는 처음이다. 강사인 그도 의아해 새얼재단 측에 물었다. "고향이 인천이라 초청한 겁니까? 연극배우라서 초청한 겁니까?" 새얼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둘 다"라고 답했다. 이날 강연은 '말랑말랑'하지만, 한 연극배우의 50년 간 끈기와 열정을 잘 보여준 강연이었다.

인천 소래가 고향인 박씨(71)는 연단에 선 소감에서 "아트플랫폼이 몹시 부럽다"면서 "밤중에 몰래 훔쳐다가 서울로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창고를 그대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멋진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박씨는 지난 50 여년 간 연극인생을 스크린에 띄운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파노라마' 형식으로 강연을 했다. 

"배우는 매우 축복받은 직업이다. 모습이 수시로 변한다. 그러나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연극배우가 직업인지는 잘 모르겠다. 연극으로 빵을 해결할 수는 없다. 가난하기 짝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업이 연극이지 직업이 연극배우는 아니다."

그는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신의 아그네스>, <19 그리고 80> 등 14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그는 <위기의 여자>에서 당시 주인공을 캐스팅 할 때 자천했던 스토리를 말했다. 당시 연출자에게 "어떤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김혜자씨나 김민자씨 같은 배우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 배우들은 TV 때문에 너무 바쁘다. 연극은 한 작품을 준비할 때 1~2달 연습하고 연극이 시작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천했지만 연출자는 "박정자는 위기의 여자 주인공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 당시 노년 역할을 많이 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했지만, 내 스스로 원해서 얻은 배역, 이 배역을 통해 3관왕을 차지하고 새롭게 연극배우로 거듭났다.

<엄마는 50에 바다를 발견했다>는 지난 20년간 하고 있는 공연이다. 딱 50 나이에 연극한 후, 6명의 딸을 두었다. 계속해서 공연이 이루어지는데, 엄마와 딸 두 명이 나온다. 공연 시작에 이미 엄마는 죽어 있고 딸이 소설을 쓰는데, 딸이 소설을 쓰면서 엄마를 추억하는 5번의 장면을 연극으로 꾸민 것이다. 그는 절대 같은 배역과 연속으로 호흡을 맞추지 않는다.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까' 걱정도 하고, 스스로 새로운 연기를 선보이고 싶어서이다. 다만, 어떤 회에는 8개월간 월요일 딱 하루 쉬고 계속 공연하기도 했다. "배우는 아플 권리도, 슬플 권리도, 외로울 권리도 없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 연극의 한 장면. 박정자가 변기에 앉아 있고, 딸이 바닥에 앉아 있는 사진을 통해 "저 장면을 정말 사랑한다"라고 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발끝과 머리끝까지 연기하는 것이다.

"연극은 관객이 완성시키는 것"이다. 관객 여러분이 직접 연극에 참여해주지 않으면 죽은 연극, 실패한 연극이다. 앞으로 연극을 보러 갈 때, 나는 연극의 절대 요소 중 하나임을 기억하고 기를 마음껏 보내주길 바란다. 그 기를 받은 배우들이 관객에게 다시 기를 전달한다. 배우의 휴머니티와 관객의 휴머니티가 만날 때 연극이 태어난다.

모노드라마(혼자하는 연극)는 4편 정도 했는데,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부담이 가는 작품이다. 모노드라마를 통해 "박정자라는 배우는 많은 서랍을 가지고 있는 배우다"라는 평을 받았다. 배우야말로 많은 서랍을 갖고 그때그때 꺼내서 써야 한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넌센스>에서는 평생 받을 박수와 환호를 다 받았다. 당시 나는 철 없는 원장이었다.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에서는 못된 동생역할을 맡았고, 언니역에 손숙씨가 호흡을 맞추었다. '자매 간 오해'로 빚어지는 비극을 이야기했다. 되도록 오해가 있으면 풀면서 살아야 한다. 응어리는 풀면서 살아야 한다. 연극과 연극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과 이 세상 많은 사람은 모순 투성이다. 인간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등장인물들을 작품을 보면서 거울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 연극배우가 하는 역할이 거울이다. 우리를 보며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연극을 통해 위로와 용서와 사랑 역할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극중 언니가 동생에게 고백을 하는 장면은 연극의 막바지이다. 마지막에 진실을 이야기한다.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그런 시간에 관객들이 자신을 생각할 수 있다.

<신의 아그네스> 캐스팅을 받았을 때는 너무 뻔했다. 수녀원장 역할이었다. "연출자가 어쩌면 저렇게 꽉 막혔나"라고 타박했더니, "아그네스가 하고 싶으세요?"라고 묻더라. 나는 "정신과 닥터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수녀원장 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닥터가 누구냐?"고 물으니 '손숙'이라고 해서, 하겠다고 했다. <신의 아그네스>는 1년동안 전국 공연을 한 작품인데,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계속 연극무대에 서야 했다. 그는 "매일 같은 연극을 한다고 매번 같은 연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영화를 틀어놓지 왜 배우가 매번 무대에 서나? 매번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면서 연극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햄릿>의 파리공연 때는 햄릿역이었던 유인촌씨가 부친 부고를 들었다. 그러나 유인촌씨는 갈 수 없었다. 연극배우는 그렇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30대에 노년 역할을 맡았을 때는 머리를 희게 하기 위해 '백구두약'을 발랐다. 당시에는 샴푸가 없었기 때문에 '하이타'이를 물에 풀어 머리를 감았다.

<19 그리고 80>은 "제가 80까지 할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올 가을에 다시 연극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19세 청년과 80세 할머니의 사랑을 그린 것으로, 여기서 80세 할머니는 매우 사랑스럽고 지혜롭다. 그는 이 역할을 '롤모델'로 꼽았다. "내가 이 나이가 되었을 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 80세 생일날 19세 청년이 꽃과 반지를 들고 와서 진심으로 청혼을 한다. "키스하는 장면에서 매우 긴장되고, 배우라서 행복하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강연 마지막에 그는 "허락하는 한 연극무대에 설 것이다. 할 수 있는 게 연극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데 '이 연극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자의식이 들기도 한다. 완전할 순 없다. 정말로 완전한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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