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있는 사람만 정치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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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있는 사람만 정치하란 말인가?"
  • 이병기
  • 승인 2010.04.0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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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나가려면 '돈이 장난 아니네'


6.2 지방선거 투표용지 예시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취재: 이병기 기자

"전에는 잘 몰랐는데, 출마를 하려고 하니 '거대 정당들은 자판기 정당'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더라. 200원을 넣으면 일반거피가 나오고, 300원이면 고급커피, 400원이면 더 좋은 커피가 나오듯이 정당도 돈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역 기초의원에 출마하려고 했던 A씨의 말이다. 그는 비록 지역 공천 문제로 인해 출마를 포기했지만, '돈' 문제 역시 출마를 포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기초의원이라고 해도 명함과 홍보물, 사무실 비용까지 더하면 기본 3000만~4000만원이 들어간다. 그러나 넉넉치 않은 형편에 '목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 후원회를 설립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고스란히 자신의 비용으로만 충당해야 한다. TV 모 개그프로그램에서 나온 유행어를 빌리면 '돈 있는 사람만 정치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남의 돈으로 정치해 결국 쇠고랑

물론 자신이 가진 돈이 없어도 출마는 가능하다. 그러나 남의 돈을 빌려 출마해 당선될 경우 중도에 직책을 내놔야 하는 불상사를 겪을 수도 있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비양심적인 정치인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미 경기도 안성과 오산, 군포, 안산, 용인 등의 기초단체장들이 뇌물·인사 등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거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검찰에 따르면 이동희 안성시장은 2007년 10월 골프장 대표 공모씨에게 선거운동 명목으로 3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법원으로부터 벌금 500만원과 추징금 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노재영 군포시장은 2월18일 뇌물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부로부터 징역 5년과 4억4천만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노 시장의 정무비서 유모씨 등이 재판과 선거비용 채무 변제금 명목으로 4억5천여만원을 받은 것은 노 시장의 권위를 등에 업은 측근들이 지역 내 업자들에게 거액을 모금할 빌미를 준 것"이라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기하 오산시장은 아파트 건설업자에게 인허가 업무와 관련해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작년 11월 구속됐으며, 인사비리에 연루된 서정석 용인시장은 직원 4명의 근무성적평정 서열을 변경하도록 지시하고 조작된 근무평정이 근무평정위원회를 통과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고(故) 오근섭 경남 양산시장의 경우 선거 자금 60억원의 빚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검찰에 따르면 오 전 시장은 2004년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후 선거자금으로 빌린 60억여원을 갚으라는 상환 독촉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오 전 시장의 어려움을 알던 부동산 개발업자 B씨는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청탁으로 오 전 시장에게 접근했고, 오 전 시장은 이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오 전 시장은 부동산 개발업자 3명과 지역 일간지 사장 1명으로부터 24억원을 받아 선거 채무를 갚는 데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작년 11월 말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살했다. 

사무실 임대료, 인건비, 유세차량 등 선거비용 큰 차지

인천광역시장과 인천시교육감 선거의 경우 선관위에서 규정한 선거비용 제한액은 13억4900만원이다. 구청장·군수 선거에는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다. 가장 적은 옹진군 1억1200만원~ 제일 많은 부평구 2억5천만원으로 평균 1억7630만원이다.

이는 4회 지방선거와 비교해 시장은 14%, 구청장은 평균 약 11% 증가한 수치. 시의원 선거비용 제한액은 1억9600만원으로 4회 지방선거 대비 15%가 상승했다. 

구·군의원의 경우 다른 선거에 비해서는 제한액이 낮은 편이다. 옹진군 4천만원, 중구·동구 4천400만원, 부평구 7천100만원 등 평균 5천440만원을 기록했다. 4회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12% 정도 늘어났다.

선거비용 제한액은 인쇄물과 선거운동에 소요되는 경비, 각 후보의 선거사무 관계자 수당 및 인구수 등을 근거로 산출해 선거단위 및 지역별로 차이가 발생한다.

후보자들은 선관위가 규정한 선거비용 제한액 내에서 일정 부분 이상 득표할 경우 선거비용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득표율이 15% 이상일 경우는 전액 보존되며, 10~15%이면 선거비용의 50%를 돌려받는다.

그러나 예비후보 기간에 사용한 선거금액은 선관위에 보고만 될 뿐 전혀 보전되지 않아 일찌감치 선거캠프를 마련한 후보들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후보자들의 선거비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무실 임대료와 인건비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소위 '목 좋은 곳'에 사무실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인천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모 후보자의 경우 삼거리에 위치한 사무실 월 임대료가 500만원 정도다. 2월 초께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니, 6월 선거까지 약 1500만원~2000만원이 사무실 임대료로 지출되는 셈이다.

또한 선거사무원의 경우 인천시장과 교육감 예비후보들은 선거사무장 1인을 포함해 총 5명을 선임할 수 있다. 구청장과 군수는 3명, 기초의원들은 2명의 선거사무원을 둘 수 있다.

선관위 규정에 따르면 광역단체장의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는 수당 7만원과 일비 2만원, 식비 2만5천원 등 총 11만원 이상을 수령할 수 있다.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수당 5만원(선거사무원 3만원)과 일비 2만원, 식비 2만원 등 9만원을 선거사무장과 회계책임자, 선거연락소장에게 지급할 수 있다.

따라서 인천시장 예비후보가 5명의 선거사무 관계자를 둘 경우 어림잡아 인건비로만 월 1천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모 후보 인천시장 선거캠프 관계자는 "다른 건 몰라도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끼면 안 된다"며 사람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눈에 보이는 인건비 외에 각 동네를 관리하는 사람들까지 챙기려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비록 선관위 규정상 금지된 사안이라고 해도 조직을 관리하려면 어쩔 수 없는 비용이다. 캠프 관계자는 "규정상 5명 이외에 임금을 지급하는 사람을 더 둘 수 없다"면서도 "사조직을 관리하려면 추가로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한번에 많은 선거비용이 사용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모 후보의 경우 사무실 건물에 걸려있는 현수막 비용으로만 1천만원이 들어갔다.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게 하는 대형 현수막을 제작하는 것부터 크레인을 이용해 고층 건물에 설치하기까지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또한 유세차량 대여와 리플렛, 포스터 제작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비록 15% 이상 득표할 경우 선거비용 제한액 이내에서 환급받을 수 있지만, 당장 선거를 준비하려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

아내를 선거사무장으로, '알뜰 선거' 해요

한편으로는 예전보다 선거비용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다는 평도 있다.

민선 1기부터 이번 6.2 지방선거까지 5번째 도전하는 C 후보는 구의원과 시의원의 문을 번갈아가며 두드렸지만 매번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C 후보는 "구의원에 나선 첫 선거만 해도 6~7억원이 소요됐다"며 "올해까지 쓸 선거비용을 합치면 빌딩 2채는 날린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보통 구의원 선거에서는 6억원, 시의원은 10억원 정도 든 것 같다"며 "예전에는 친목회에 단체관광을 보내주거나 경조사 봉투를 돌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은 국민 의식이 변해 선관위에서 규정한 금액만 지출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선거비용이 상당히 줄었다는 것이 C 후보의 말이다.

또한 인천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모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거액의 공천 헌금을 상납해야 한다는 말도 더이상 새롭지 않다. 이 정당에서 "기초단체장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1억원, 시의원의 경우 5천만원이 기준이다"라는 소문은 정치권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본 얘기다.

한편으로는 '알뜰 선거'를 진행하는 후보도 있다.

소수 정당에서 기초의원으로 출마하는 D 후보는 약 3천만원을 선거 예상비용으로 책정하고 있다. D 후보의 선거사무장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회계책임자 역시 따로 두고 있지 않다.

D 후보는 "어디가도 이만한 능력의 선거사무장을 구하기 어렵다"며 "월 300만원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선거사무장을 공짜로 두고 있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끔씩 아내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으로 임금을 대신한다.

또한 그에게는 선거 유세차량도 필요치 않다. 10년이 넘은 준중형차가 그의 선거 유세차량이다. 그나마도 차 대신 선거사무원 명찰을 목에 건 아내와 둘이서 동네를 걸어다니며 선거운동을 하기 때문에 기름 쓸 일도 적다. 그의 유일한 선거운동 준비물은 명함과 튼튼한 두 다리다.

'돈 선거'가 아닌 예비후보자들의 건전한 의식과 더불어 유권자들의 '깨끗하고 공정한 눈'이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가장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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