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은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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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은 불가능한가?
  • 손현철
  • 승인 2012.08.0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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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 손현철 / KBS 다큐멘터리국 프로듀서


월미 은하레일 

얼마 전 오랜 만에 가족과 인천 나들이를 갔다. 우표 수집이 붐이던 1970년대, 새 기념우표가 나오는 날이면 새벽부터 줄을 섰던 옛 인천우체국 앞을 지나 주변 구도심을 돌아봤다. 서울서 태어난 두 딸 아이는 엄마 아빠 고향에 관해 궁금한 게 많았던지, 이것저것 물어봤다. 연애 시절 아내와 자주 찾던 서해의 바닷바람을 쐬고 싶어 부두 하역차량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월미도길로 들어섰다. 제분공장의 커다란 원형 사일로가 늘어선 길옆에 높이 7~8 미터는 됨직한 하늘색 기둥들이 줄줄이 늘어선 것이 눈에 띄었다. 순간, 문제가 많다고 보도된 모노레일임을 알아차렸다. 

아이들의 눈치가 어찌나 빠르던지 대뜸 "아빠 저거 모노레일 아냐? 한 번 타 보자"라고 채근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응, 저거 아직 공사 중인가 봐. 개통을 안 한 거 같은데." 아이들은 연초 홍콩 여행 중 관광명소인 빅토리아 피크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타본 경험이 있다. 바다와 부두를 내려다 보면서 달리면 얼마나 신날까? 인천에서도 한 번 타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게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실 설계와 공사로 안전에 문제가 많아서 운행도 못해 보고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부모의 고향에서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접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검색해 보니 인천교통공사가 공사비만 853억 원 들였으나 건설업체가 싸구려 부품을 사용했고 시운전 때 사고도 났다는 내용이 떴다. 철거비만 해도 300억 원 가량 든다니 정말 황당했다. 시민의 세금을 그런 식으로 공중에 날려버리다니.

유령도시가 된 지역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지상파 채널에서 유령도시가 된 도심개발지역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됐다. 유리창이 깨져 바닥에 뒹굴고 담벼락엔 험한 낙서가 된 주택가 화면을 배경으로 앵커가 도입 멘트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곳이 내 고향 인천이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서울 재개발 지역이나 지방의 어느 도시쯤이려니 했는데, 잠시 후 낯익은 거리가 보이고 가정동이란 지명이 나오면서 '인천 한복판에 유령도시'라는 자막이 박혔다. 이른바 '루원시티'의 을씨년스러운 현장. 밤이면 어떤 끔찍한 범죄가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어두운 기운이 빈 집들을 짓눌렀다. 가까운 친척이 살아서 중고등학생 시절 자주 갔던 곳이라 눈을 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만신창이가 될 수 있을까?  

사업이 중단돼 지역이 황폐화한 사연은 더욱 기가 막혔다. 시가 정부기관과 사전 협의 없이 경인고속도로를 일반도로로 바꾸는 것을 전제로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주민 보상과 이주를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국토부의 불가 방침이 나오고 금융위기까지 터져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자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는 내용이었다. 매년 수백억 원이 이자로 나간다니, 가뜩이나 전임시장의 방만한 운영으로 어려운 시 재정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도 사태를 그렇게까지 몰고 간  당시 시정책임자가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경선에 나왔단다.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은 불가능한가?

위의 두 사례 말고도 그 동안 내 고향 인천과 시민들이 입은 상처가 얼마나 많고 컸을까?  거대 규모의 도시 재개발 사업, 자연 개발(개선이 아니라 결국 파괴로 귀결되는) 공사를 벌여 이득을 챙기려는 '토건족' 패러다임에선 시민과 자연이 입는 피해는 개발 이익에 비해 무시해도 괜찮은 고통이다. 그들의 사업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희생된 도시 서민층과 자연환경은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제 그런 횡포를 중단시켜야 할 때가 왔다. 시민의 참여와 합의, 감시 없이 소수의 사업 이해관계자와 행정 관료가 짬짜미로 결정하는 개발 사업, 일단 크게 벌여 한몫 챙기고 뒷감당은 다음 세대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거대 프로젝트는 그만 멈춰야 한다. 구시대 사고방식으로 개발 성과를 이루던 시대는 지났다. 부채의 기반 위에 신기루처럼 쌓아올린 사업들은 전 세계적인 부동산 거품의 파열 속에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아픈 경험을 한 국가들은 도시 계획과 재개발에서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다. 시민을 주축으로 한 관련 당사자들이 개발 사업 타당성을 개방적으로 검토하고 후세와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모범사례도 많다. 유럽연합의 LUDA (improving quality of life in Large Urban Distressed Areas, 도시 노후지역의 삶의 질 개선) 프로젝트, 영국의 지속가능한 도시 지역사회 (SUN - Sustainable Urban Neighbourhood) 프로젝트 등이 그 예다. 이들의 핵심은 단순하다. 개발 사업 결정과정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사업 과정과 결과가 후세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가를 엄밀하게 따지는 것이다.  

그런 관점을 갖는다면 큰 자본이 필요한 모노레일 대신 부두와 공장까지 견학 가능한 월미도 순환 산책로나, 1만5천 세대를 이주시키는 대규모 개발 대신 지역을 소규모로 분할해 현지 특성에 맞게 생태, 문화, 재생에너지 생산, 도심 농업, 노인 서비스 등의 특화지역을 구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더 나은 인천을 물려주기 위해, 은퇴 후 다시 돌아가 살고픈 고향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정말 새롭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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