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한반도 평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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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한반도 평화·통일
  • 이 병
  • 승인 2012.08.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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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 이 병 / 한겨레신문 콘텐츠비지니스협력단장


바야흐로 대선정국이다.

넉달 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하여 여야 대선후보들이 너나 없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세우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벌인 '잘 살아보세' 이후 어느 선거건 '경제 제일주의'가 공약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던 양상과 판박이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인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에 대한 언급은 항상 뒷자리이다. 그만큼 해방-남북분단-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짖누른 냉전시대 상흔이 너무 깊어서인가. 아니면 대선득표 이해 득실에 매몰되어 민족사적 책무에 등한시하는 대통령 후보들의 역사인식 부재가 원인인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만 놓고 남한의 대통령을 평가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특히 냉전 해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목도하면서 역사의 물줄기에 걸맞는 남북관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고독한 결단과 국민적 통합에 진력한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어떨까.

먼저 이승만 정권부터 현재까지 반공냉전주의에서 출발한 보수진영의 대통령들을 살펴 보자.

한국전쟁이란 냉전의 극한 파열을 겪은 이승만 대통령이나 동서냉전의 최첨단 기지를 자임하며 한반도를 넘어 공산주의를 척결하기 위해 베트남 파병을 강행한 박정희 대통령은 모두 냉전 주재자였으니, 냉전의 후과를 놓고 이 분들을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노릇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친북한 공산주의자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폭압적으로 진압하고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박정희 반공주의 군사정권을 계승하였으며,이러한 정권의 속성 상 앞선 두 분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기여한 성과와 별반  차이를 둘 게 없다.

1980년대 후반부터 소련 등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1989년 12월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조지 H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냉전종식'을 선언함으로써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대결구조는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냉전구조가 해체된 이후에도 냉전의 추억(?)에 사로잡혀 남북관계에서 세계사적 흐름과 상치된 리더쉽을 행사한 대통령들이라면 그 분들은 시대적 통찰력도 없는 낙제점 이하 리더십을 보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김영삼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그 분들 아닌가 생각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부추켰던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조문파동'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집권 이후 추구한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이런 면에서 전두환 군사정부의 맥을 이으면서도 6.29선언이란 위장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사뭇 전직 군사정부 대통령들과 다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는 북방외교를 통해 1990년 소련과의 수교, 1992년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동북아시아 냉전구조 해체에 기여한다. 더 나아가 노 정부는 1989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입안하고 1991년에는 남북관계 기본장전으로 평가되는 남북기본합의서(‘남북 사이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체결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와 반대로 앞서 말한 군사보수세력의 대통령들과 대척점에 서서, 노태우 대통령 성과를 이어받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화해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대통령이 바로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의 대통령이다. 민주세력의 대의를 갖고 집권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한 성과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으로 집약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미일중소 4대국 한반도 안전보장, 남북화해와 교류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박정희 후보 등  집권여당으로부터 '용공'이라는 규탄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그러한 역사적 탄압에 굴하지 않고 김 대통령은 1998년 집권 이후 금강산 관광 등 '햇볕정책'이라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을 펼친 결과 2000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 정상회담을 열어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이로써 개성공단사업 등 남북화해협력의 실질적 성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1971년 대선에서 제안한 공약을 그야말로 30년 만에 현실로 실천해 내는 정치적 리더십을 펼쳐보인 것이다.

김 대통령의 민주정부를 이어받아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을 통해 6.15선언이 5대 중점사업의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40여 가지 사업을 합의하는데 이른다. 그러함에도 집권 초기인 2003년 한나라당의 집중적 공세에 휘말리어 김대중 정부의 금강산관광과 6.15정상회담과 관련된 대북송금특검을 진행하여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로 '역주행의 단초'를 제공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과거 대통령들의 평가를 통해 이번 대선에서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사적 전환과 시대정신의 변화를 먼저 읽는 통찰력과 이에 기반을 두고 남북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실천적 정책을 결단력 있게 펼칠 리더십의  창출에 있다. 20년 전에 해체된 냉전논리에 파묻혀 오늘을 재단하려는 무모한 결기보다는 40년 전부터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역사의 흐름을 직관하고 남북화해협력의 정책적 비전을 펼쳐온 그런 담대한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서 선출될 대통령의 자질을 언급하면서 "2013년에 대통령이 될 사람은 1971년 김대중 후보가 제시한 깜짝 놀랄 정도의 공약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향토예비군 폐지, 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대화 등 정말 충격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이번에 나올 지도자는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충분히 고민하고 반대세력의 역풍을 견뎌낼 만반의 준비를 한 후,구체적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라며 남북관계의 대담한 구상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것이 어찌 대통령 후보에게만 요구될까. 그러한 리더십을 만들어 가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선 과정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투표하라'는 국민적 캠페인과 다르지 않다. 이제 함께 힘을 모아 갈 시기이다.

*필자 이 병은 인천출생으로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합류해 경영기획실장, 출판국장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를 거쳐 현재 한겨레신문  콘텐츠비지니스협력단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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