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다리 치우고 교육올레길을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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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다리 치우고 교육올레길을 놓자
  • 임병구
  • 승인 2013.03.1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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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인천교육 미래찾기①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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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다리를 치우고 교육올레길을 놓자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장, 인천해양과학고)
 
심청을 받드는 인천, 용을 만든 개천
 
한 생명이 인천에 태어났다. 교육을 말하려면 그 생명을 기르고 가르칠 책임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낳아 놓았으니 부모가 책임지라면 그 생명에게 인천이라는 공간은, 인천 아닌 공간과 별 차이가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가가 의미를 지니려면 인천은 그 생명이 자라는데 필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부모가 돌볼 수 있는 육체적 건강만으로-그것도 사회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완성되는 생명은 없다. 인간에게는 사회가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마을 역할을 하든 사회적 울타리 역할을 하든, 지역사회는 그 생명을 사회화하는 둥우리다.
 
인천은 심청을 받드는 동네다. 심청은 동냥젖을 물며 사회와 만났다. 애비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생명을 마을에서 함께 키웠다.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자랐다. 집집마다 문은 열려 있었고 끼니때 찾아드는 어린 군입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밥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는 말은 그렇게 사회적 가치가 되었다. 내 배 부른 것과 남의 배 굶주리는 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혼자 먹어도 배고픈 식탁을 더 나누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기갈까지 나눌 리 없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면 승천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머물렀던 동네를 돌아보고 보살폈다. 장자가 서울로 올라가 입신하면 집안이 먹고 살았다. 한 집안이 살림이 피면 동네에 훈김이 돌았다. 개천을 돌아보지 않는 용은 동네에서 배척당했다. 명절날 동네어르신들부터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예의는 형식이 아니라 자라면서 받은 사회적 수혜에 대한 답례였다.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지 않는 용은 후레자식 취급 받았다. 누구 덕에 용이 됐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는가라는 질타에는 그 사회를 운용하는 법칙이 담겨 있었다. 개천이 자양분을 제공했으니 용이 된 자는 마땅히 개천에 진 신세를 기억해야 했다. 개천과 용이 분리되지 않았다.
 
인천이 놓아선 안 될 사다리
 
독일이든 호주든, 선진국에선 나라가 아이를 키운다. 그 지역에서 난 생명이-심지어 외지에서 나서 옮겨 온 이들조차-자기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국가가 책임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어른들은 세금을 내서 아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고르게 해 준다. 그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돼도 똑같이 행동한다. 받았으니 당연히 사회에 되돌려 줘야 한다는 사고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 있다.
 
쿠바에서는 가난한 가정의 학생을 선발해 의사로 키운다.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식비, 교통비와 생활비를 다 지원해 준다. 그 학생들이 의사가 되면 쿠바를 넘어 전세계를 뛰어다니며 의료봉사활동을 펼친다. 쿠바의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의료 수준도 높다. 외국에서도 배우러 오는데 내국인과 같이 대우한다. 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원리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사례다.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려면 집안의 후원이 절대적이다. 웬만한 가정 형편으로는 입학을 시켜준다 해도 수업료조차 대기 어렵다. 초등학생들에게 물으면 열에 예닐곱이 의사를 꿈꾸지만 어림없다. 의사가 되는 과정이 철저하게 개인화 되어 있다. 그렇게 의사가 된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할 말이 없다. 봉사를 주문하려면 사회가 기여한 바가 있어야 하는데, 저마다 각자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으니 옆을 돌아 볼 이유가 없다.
 
인천은 교육 변화를 갈망한다. 교육 때문에 이사 간다는 호들갑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사를 오게 하기 위해 학교 수준을 높이자는 게 오늘 인천교육의 개혁 방향이다.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학교를 짓자는 발상은 그 자체로는 좋은 일일 수 있다.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에서는 갈수록 그런 학교가 필요해 질 것이다. 그렇지만 온전히 개인이 노력해 얻은 성과는 철저히 개인에게 귀속된다. 혼자의 힘으로 -물론 집안의 도움은 필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좋은 학교를 졸업한 인재에게 인천지역사회가 요구할 몫은 없다.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 성공한 개인이 되라는 교육은 과거로 후퇴하는 길이다. 그렇게 획득한 이력이 배타적인 기득권 점유 구조가 되어버린 사회는 생기를 잃는다. 교육은 사회의 활력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인천에서 자란 인재들이 위만 쳐다보지 않고 옆과 섞여야 활력이 생긴다. 인천이 딛고 올라서는 발판이 되기보다 함께 미래를 도모할 어깨동무의 장이 되어야 한다. 혼자 오르는 사다리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놓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계양, 서구, 연수구가 계획하고 있는 교육국제화특구 사업은 재설계가 필요하다. 국제화특구사업 중에 국제중학교 설립 계획이 들어 있다. 청라와 계양에서 서로 설립하겠다고 각축까지 벌인다. 국제중은 국제고를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수직 사다리 구조만 공고하게 할 것이다. 보통 사다리로도 모자라 황금사다리를 놓겠다고 시작한 게 서울 국제중이다. 영훈중학교는 그 사다리에 오르는 길을 돈 주고 팔았다. 실력도 아닌 재력으로 그 사다리에 올라탄 학생들에게 훗날 우리 사회가 기대할 윤리와 가치는 없다.
 
사다리가 아니라 올레길
 
미래에는 도시와 도시가 경쟁할 것이라고 한다. 도시에서 도시로 유목하는 삶이 늘 것이다. 특히 모험에 강한 젊음들은 배움의 과정에서 여러 도시에 걸쳐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니 인천 사람으로 살던 시대는 가고 있다. 국제 도시를 꿈꾸는 인천은 더 많은 인재를 세계로 배출할 것이다. 그들이 교육을 통해 얻은 능력을 어떤 도시를 위해 사용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기여한 도시로 인천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뤄진다. 관계는 본질적으로 수평적이다. 다른 이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해야 지역사회도 눈에 들어온다. 사다리 위만 쳐다보라는 광고, ‘친구가 너의 공부를 대신해 주지 않아!’ 따위로는 서로 이어지는 정체성을 만들 수 없다. 옆을 보지 않는데 관계가 생길 리 없다. 인천이 할 수 있는 교육은 옆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백보양보해서 사교육은 우정이 성적을 대신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제 돈 내서 배운 것이므로 타인에 대한 의무는 없다. 하지만 공교육이 공교육이려면 공공적 가치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인천이 학교를 짓고, 운영을 지원해서 만들어 낸 인재는 공적 의무를 지녀야 한다. 혼자 이룬 것이 아니라 인천이 뒷받침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그건 고독한 사다리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려울 때 기댈 수 있고, 힘들 때는 주저앉아 쉴 수도 있어야 한다. 사다리로 오르는 삶에는 그게 빠져 있다. 여럿이 가야 얻을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가치를 주지 못하는 공교육은 허구다. 국가든 인천지역 사회든 교육을 위해 자원을 쓸 때는 미래에 기대를 건다. 그건 일종의 선투자다. 인재가 된 후 갚아야 할 후불의 의미를 알게 해야 우리 교육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지금은 인천이 가는 길이 어느 방향인가 물을 때다. 사다리를 계속 놓으면 그 뒷감당을 누가 할 것인지 따질 때다. 사다리를 치우면 평평한 교육지형이 드러나고 거기에 자연스레 올레길이 생길 것이다. 못 가본 길도 여럿이 지나면 길이 되고 높은 산도 가슴 졸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인천만 사다리를 치우면 손해 본다고 볼멘소리 할 수 있겠지만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이기에 앞선 길을 열어젖힐 수 있다.
 
인천이 국제도시로 가려면 다른 데서 해 보지 않은 발상으로 도전해 봐야 한다. 인천에서 서울을 찍고 세계로 나가지 않고 인천에서 세계로 가는 ‘교육직항로’를 내는 방안이 가능하다. 그 길이 서울로 향한 사다리의 복사판이 되지 않고 인천 지역 사회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길이 되게 하려면 인천이 기여하는 바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천대학과 인천시의 관계, 글로벌캠퍼스타운의 미래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해 봐야 한다.
 
길은 원래 없었는데 생긴 것이다. 서울로 가는 사다리를 치우고 인천에서 세계로 직접 가는 길을 열려면 공교육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의무를 각성하게 하는 것이다. 배워서 남 주는 단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개인과 사회를 함께 보려는 시야는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인천이 개인의 사회화 과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그 과정을 기억하게 하는데 교육이 기여해야 한다.
 
교육이 경쟁을 위한 사다리로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와 만나는 올레길이 되도록 인천교육의 방향을 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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