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이곳, 글을 낳는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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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이곳, 글을 낳는 집입니다
  • 최일화
  • 승인 2013.06.12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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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문인 집필실 '글을 낳은집'에 입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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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용대리 문인 집필실 ‘글을 낳는 집’에 입주한 지 이제 2주째가 되어간다. 문학집필실이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해였다. 그전에는 내 관심의 부족 탓이겠지만 토지문화관이나 강원도 만해마을에 문인들을 위한 집필실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한국작가회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글을 낳은 집에서 입주 작가를 모집한다는 안내 메일이었다. 해당 누리집을 방문해 입주 신청서를 작성해서 기한 내에 발송했다. 얼마 후 전화가 왔다. 6월 한 달 입주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하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게 마련이다. 물론 낯선 것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 섞이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손을 꼽아가며 6월 입주 날짜를 기다렸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산골이라고 하니 가서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책도 많이 읽고 좋은 작품 20여 편 쓰겠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기다리던 날이 오고 나는 인천을 출발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김규성 시인이라는 집 주인이 어떤 분인지 어떤 시인 작가들이 입주해 있는지 궁금했다.

문단 행사에 거의 참여해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아는 문인은 내 고장 인천의 시인 작가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상태다. 낯선 문인들을 새로 만나 그분과 교분을 나눌 좋은 기회인 것도 같아서 은근히 기대를 갖기도 했다. 호남 고속도로를 벗어나 긴 문수터널을 지나고 다시 연이어 있는 4개의 장성 터널을 지나 산골짜기 울창한 숲속 길을 달리고 달려 마침내 길가에 낮게 세워진 조그만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세설원 / 글을 낳는 집’이라는 간판이었다.

길옆을 보니 높은 산자락 밑에 길게 세워진 일층 집 두 채가 나타났다. 사진으로 보던 바로 글을 낳는 집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세설원은 주인 김규성 시인의 사모님이 운영하는 약초 관련 연구실의 명칭이라고 했다. 주인 김시인은 반갑게 맞아주며 트렁크를 밀며 배정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침대가 놓여 있고 책상이 창문가에 놓여있는 아담하고 아늑한 방이었다. 나는 가지고 온 짐을 풀어 정리를 했다. 책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세우고 옷은 옷걸이에 정돈하여 걸었다. 세면도구는 책상 한 모퉁이에 올려놓고 컴퓨터를 꺼내 인터넷을 연결했다. 이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다.

현재 입주해 있는 분은 두 명의 여성 소설가 김문주씨와 재미교포 박씨와 시인 송문헌씨였다. 박 소설가는 미국에서 일부러 이곳에 입주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다음 날 박영희 시인이 왔다. 이 주 후엔 꽤 유명한 여성작가 강석경씨가 온다고 했다. 이 집필실은 남성작가들이 머무는 집이 따로 있고 여성작가들은 별채에 따로 집필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식사문제가 궁금하여 먼저 입주한 송 시인에게 물었다. 서울서 온 송시인은 나보다도 연세가 많은 해방둥이 시인이었는데 식사문제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주방에 있는 전기밥솥에 밥만 해 놓으면 주인아주머니가 매일 아침 반찬을 해서 날라다 준다는 것이었다. 목욕탕의 온수 이용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이렇게 집필실 글을 낳는 집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문제는 과연 20여 편의 작품을 쓸 수 있는가의 여부였다. 과욕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시라는 것이 마음먹는다고 여러 편 쓸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지 않는가. 그냥 습작으로 쓰는 것이라면 몰라도 나는 시집에 수록해야 되기 때문에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지금 집필실에 와 잇는 것이다.

나는 금년 중에 반드시 시집을 내야 한다. 인천문화재단으로부터 문예진흥기금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책 한 권 분량이 채 안 되는 상태에서 기금 신청을 하고 기금 수혜자로 결정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출간했던 어떤 시집보다도 작품성이 좋은 시집을 출판해야겠다는 것이 나의 각오다. 그러려면 최소한 20편 이상의 마음에 드는 시를 창작해야 한 권의 시집에 수록할 만큼의 작품 양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열의만 있으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지 하면서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무척 조용하다. 먼 곳에서 가끔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거나 200여 미터 밖 산골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소리가 가끔 들리기는 하지만 창문을 닫고 울창한 숲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깊은 땅속에서 길어 올리는 지하수가 맛있다고 밤을 새워 개구리 울음소리가 적막한 밤을 뒤흔든다고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니 시상이 찾아 올 때까지 오래 기다리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한 밤중에 바깥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면 인천에서는 보지 못하던 별들이 무수히 떠있는 것이다.

북쪽 하늘에 길게 선명한 북두칠성이 오랜만에 내 어릴 적의 기억을 되살려주기도 했다. 날은 하루 이틀 지나가는데 빛나는 시상 하나 반짝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어서 나는 가지고 온 여러 권의 시집 중에 한 권의 시집에서 시 열 편씩을 읽으며 제목 옆에 읽은 날짜를 기록하기도 하고 예전에 읽다가 중단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딸 이민아씨의 신앙간증집 ‘땅끝의 아이들’을 마저 읽으며 아까운 분의 죽음에 안타까운 심정에 젖어보기도 했다.

다시 가지고 간 단편집을 펼쳐 단편 한 편씩을 읽으며 시인과 소설가는 어떻게 다른지 나름대로 상념에 젖기도 했다. 그러다가 절망감이 들기도 했다. 비교적 쉽게 산문적으로 시를 쓰는 내게 소설 속에서 만나는 무수한 시적인 문장들은 내가 어리둥절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내 시가 저 소설의 한 페이지에 들어가도 아무런 이질감도 없이 그냥 소설의 한 대목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고 말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의 시는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시가 정말 가치 있는 시가 될 수 있는가, 나는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한 시인의 충고를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새로운 작품을 계속 시도 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써두었던 습작시들을 미련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계속 가필과 정정을 거듭해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해 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충고였다. 그렇다. 이 고장의 풍광을 시로 쓸 것이 아닌 바에야 기존에 써두었던 습작 시들을 다시 다른 방향에서 새롭게 접근해 작품으로 완성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그렇게 접근해 성공을 거둔 경우가 간혹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습작 시는 너무 유치해서 어떻게 이런 주제를 가지고 시를 써보려고 했던 것인지 의아해하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엔 그러는 가운데 반짝 빛나는 시상이 이어져 나오면서 새로운 작품을 흡족하게 완성해내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습작 시들을 다시 살펴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중이다. 벌써 이곳에 머문 지도 십여 일이 지나갔다.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컹컹 짖어대며 앞으로 다가와 기겁을 했던 하얀 복들이도 이젠 나를 보고 짖지 않는다.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다가오지는 않더라도 사납게 짖으며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듯 쫓아오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복들이와 더 친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무엇이든 정이 들면 작별할 때 힘이 든다. 내가 이곳에 머무는 시간은 한 달이다. 인천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 때문에 일정보다 일찍 6월 하순 경 올라가야 한다. 여기 머물 수 있는 시간이 한 달도 채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온 다음 날 오십대 초반의 시인 겸 르포작가 박영희씨가 입주했다. 20여 권의 저서를 갖고 있는 중견작가다. 시집을 다섯 권 출간하고 만주 등지를 수없이 오가며 우리 민족의 이민사와 독립 운동사를 르포 형식으로 담아내기도 하고 전국의 소외되고 많은 기회를 박탈당한 소시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애환을 담아 이 사회에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명의식이 투철한 전업 작가다.

모든 언행에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대단하다. 오늘 아침에도 르포집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가 문화예술위원회의 1분기 우수문학도서에 채택이 되었다는 소식이 왔다며 즐거워한다. 나도 그런 열정이 필요한데 산문과 시는 글의 형식과 창작되어지는 과정이 다른데 굳이 비교해보는 일은 그다지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하면서도 문학에의 열정과 사명은 분명 배워야 할 점이라 걸 부인할 수도 없다. 어제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아침엔 산골짜기로 짙은 안개가 끼어있더니 오후가 되어도 안개가 걷히지 않고 있다. 이대로 그대로 장마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장마는 즐거운 추억도 많이 주었지만 불편하고 지루한 날들에 대한 기억도 많이 심어주었다.

인적이 드문 이 산골짜기에 매일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면 그것도 새로운 사색의 활로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어줄까.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으니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할 것이다. 두 여성작가는 두문불출 작품 쓰기엔 분주한 모양이다. 해방둥이 송시인은 지금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아침밥을 같이 하고 방으로 들어간 후 역시 두무불출이다. 또 점심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약초전문가인 주인아주머니는 정말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배달해준다. 죽순 나물을 비롯하여 이제까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반찬을 곁들여 밥상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갑자기 어제 밤 월드컵 최종에선 우즈베크 전에서 우즈베크 선수의 자책골로 승리를 거둔 사실이 떠오른다. 세상을 살다보면 그런 해명할 길 없는 알쏭달쏭한 일도 벌어지는 모양이다. 생사의 일전을 다짐했던 우즈베크 선수들은 실의를 안고 다음 기회를 내다봐야 할 것이다. 참 오늘 새벽 이란과 레바논전은 어떻게 되었지. 그 결과에 따라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의 상황이 달라진다는데. 어서 뉴스를 검색해 보아야겠다. 아, 이란이 레바논을 완파했구나. 우리의 월드컵 출전여부는 18일 대 이란 전에 달려있구나. 6월 18일 대 이란 전을 초조하게 또 기다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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