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분단의 상처, 예술의 힘으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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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과 분단의 상처, 예술의 힘으로 극복"
  • 이재문 강신아 대학생기자단
  • 승인 2013.09.0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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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사람] 이종구 / 인천평화미술프로젝트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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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평화미술 프로젝트-백령도 525600시간과의 인터뷰’에 ‘황해’라는 작품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종구 작가(중앙대 서양화전공 교수). 80년대부터 대표적인 농민화 작가로 활동해온 그는 2005년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번 평화미술 프로젝트의 운영위원 이기도하다. 백령도 전시를 마치고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돌아와 8월 14일 부터 2차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이종구 작가를 만났다.
 
- '평화 미술 프로젝트'란 무엇이며, 운영위원으로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평화 미술 프로젝트는 평화라는 화두를 지닌 예술운동의 일환이다. 인천은 지정학적으로 서해5도를 품는 등의 긴장과 분단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천에서 평화라는 화두는 다른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도시의 정체성 중 하나이다. 이에 인천은 필연적으로 긴장과 분단의 상처를 극복해야한다. 평화 미술 프로젝트는 이러한 극복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을 통해 이뤄지는 평화 지향 미술프로젝트이다. 이에 정치적 해석, 보수와 진보의 구분 등을 배제한다.
프로젝트 내의 운영위원들은 행사 기획, 작가 선정, 행사 방향 논의 및 실행 등을 하는 단위체이다. 위원 멤버는 고정이 아닌, 매해 새롭게 선출된다.
 
- '평화 미술 프로젝트'는 다른 전시회와 무엇이 다른가?
주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전시회는 작가의 개인적 관심과 취향으로 창작을 한다. 이에 반해, 평화 미술 프로젝트는 분단의 극복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예술적 상상력과 창작의 내용을 전제로 한다. 또한 인천에서 이뤄지는 프로젝트인 만큼 서해의 역사, 현실, 풍경 등도 전시회에 포함된다.
 
- '525600시간과의 인터뷰'의 개최지를 백령도로 선정한 이유는?
NLL등의 문제로, 분단의 상징인 서해 5도에서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의지가 있었다. 서울 예술의 전당 같은 대중적인 곳의 전시를 통해 많은 관객들과 마주할 수도 있지만, 백령도로 직접 찾아가 전시를 해 작가들의 평화를 향한 의지를 더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남북 간의 긴장을 예술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 긴장지역으로 찾아갔기에, 작가들의 메시지가 시민들에게 더 잘 전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백령도에서 전시할 때에 지하 벙커를 미술관으로 바꿨다. 전쟁에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곳을, 평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바꾼 것이다. 지하라는 공간은 습기가 많이 차, 작품이 쉽게 훼손되는 환경임에도 작가들은 꺼려하지 않았다. 긴장지역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작가들의 평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기에 가능했다. 다만, 일부 정치인들이 작가들의 평화에 대한 의지를 이데올로기적 시점에서 왜곡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백령도에 작품이 전시되면서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외딴 섬이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의 방문이 늘고, 백령도의 경제적 상황의 개선도 바라볼 수 있었다. 골프장 등의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문화가 아닌, 예술 문화적인 개선이었기에 더욱 의의가 있었다.
 
- ‘525600시간과의 인터뷰’전에 출품한 작품 '황해'의 의미는?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해 아는가? 그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공법 위반으로 1959년 사형을 당했다. 조봉암 선생은 2011년 대법원 무죄판결로 복권됐지만, 사형을 통해서 잃은 그의 삶과 인간적 가치는 아무도 보상해주지 못한다. 또한, 그가 살았다면 변화했을지도 모를 분단의 상황이 너무나도 아쉽다. 복권을 통해 재조명받은 그였지만, 진보적 정치 활동과 역사가 아직 깊은 바다 속에 갇혀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실 속의 조봉암 선생의 죽음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에 푸른 바다 위에 조봉암 선생을 흑백으로 그려서 표현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남북 간·한국 내 정치적 갈등의 상징인 NLL을 빨간색으로 조봉암 선생의 위에 그렸다. 언젠가 통일을 통해 NLL이 걷힌다면 조봉암 선생도 역사상의 현실로 부활할 것이다.
 
- 작품의 주제로 '농촌'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지켜보며 자라왔다. 산업화가 진행되며 많은 것들이 자본 중심으로 변화하였고, 80년대부터 농촌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도시 산업사회의 발달이 가속화될수록 많은 노동력이 요구됐고, 이에 이농 현상의 증대와 농촌의 고령화라는 악영향이 나타났다.
 
농촌에서 태어났기에 농촌문제에 대해 더욱 공감할 수 있었고, 도시로 올라와 공부를 할 때도 농촌의 문제를 잊지 못했다. 작가가 된 이후 농촌의 현실을 그림을 통해 그려, 농경사회의 해체 과정을 기록·고발했다. 지식인으로 황폐화되는 농촌, 수입 개방 정책으로 낙후되는 농촌의 삶을 세상에 알려 저항하고 싶었다.
 
- 인천의 예술문화 발전이 서울에 비해 더딘 이유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것들이 서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의 경우 교육·의료·전시회 등이 서울로 이전하면서 점차 지역성을 잃고 있다. 인천은 특히, 다른 지역보다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더 의존적이다. 거기에 예술관련 시설도 타 지역에 비해 부족해, 많은 예술작가들이 서울로 옮겨가고 있다. 서울과 가까운 것이 경제적 측면에서는 강점이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지역 자원의 유출을 초래해 약점으로 다가온다. 서울 중심의 사회가 가속화될수록 인천의 문화적 빈곤도 가속화될 것이다.
 
- 인천에게 바라는 점?
우리나라의 모든 시도에는 미술관이 있다. 단, 인천을 제외하고. 광주광역시의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광주광역시는 인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인천의 절반밖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92년 시립 미술관을 건립한 뒤, 광주 비엔날레를 개최해 세계적인 미술 축제로 성장시키면서 예술적인 측면에서 인천을 앞섰다. 또한 서울 중심가에 광주 시립미술관 서울 갤러리를 만들어 광주 작가들을 서울로 보내 작품 활동을 돕고 있다. 몇 해 전엔 베이징에 광주 시립 미술관에서 창작 공간 6곳을 만들어서 작가들의 중국 진출과 창작활동도 돕고 있다. 이에 반해 인천은, 시립 미술관도 없고, 미술관 건립에 대한 예정과 로드맵도 없어 자치단체장들의 문화적 수준과 의지가 타 지역에 비해 낮음을 알 수 있다. 인천이 아시안 게임, 송도국제도시 등의 대규모성의 투자 만큼, 시민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문화·예술적 투자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한다.
 
- 향후 활동 계획은?
지금 활동하는 방식을 유지, 지속하며 사회에 대해 더욱 깊이 있고,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싶다. 지금까지 해온 여러 가지의 노력들을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활동을 할 것이다.
‘백령도 - 525600시간과의 인터뷰’는 이달 14일(수요일)부터 인천 아트 플랫폼에서 전시를 시작한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18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20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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