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있을 땐 일당 벌러 나가고, 없을 땐 시 쓴다."
상태바
"일 있을 땐 일당 벌러 나가고, 없을 땐 시 쓴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9.18 0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은 최종천 시인을 만나다
 
IMG_5055.JPG
 
 
 
“요즘에는 일자리가 워낙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느낀다. 중소기업에서 하는 일이 많이 나와야 일이 생기는데 요즘엔 그렇지 못하다. 경기침체가 심각한데 국민들은 그만큼 피부로 못 느낄 수도 있다. IMF 때는 일자리가 한꺼번에 없어져 피부로 와닿았다. 요샌 일이 있는 날은 일당 벌러 나가고, 일이 없을 때는 시를 쓰고 사람을 만난다.” 지난 4월 <노동과 예술>이라는 산문집을 내고, 2012년에 제5회 오장환문학상을 탄 최종천 시인(59)을 만나 그가 살아가는 이야기와 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이 들어오면 가리지 않는다
“시는 주로 집에서 쓴다. 일을 하지 않을 때나 스케줄이 없을 때 쓴다. 일이 있으면 못 가지만 시간이 되면 시낭송회에 참석하는 편이다. 용접 일만 하는 건 아니다. 요샌 이런저런 일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들어오면 한다.”


<고양이의 마술>에서 인간의 성과 노동을 다루었다
“요즘 ‘창세기’를 읽고 있다. 성서 전체 중에서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거기에서 비롯해 성과 노동 이야기를 하게 됐다. 딱히 종교는 없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했다.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얘기였다. <고양이 마술>은 인간에만 관심을 둔 책이다. 요즘에는 생물학, 신학, 진화론에 대한 책을 읽는다. 창세기를 제대로 읽어내려고 읽는 거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다. 내 시는 처음에는 쉽게 읽히는데, 파고 들면 어렵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뤄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보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1968년 김신조가 내려왔을 때 서울 응암동에 살게 됐다. 삼촌이 나를 학교 보내려고 집을 샀다. 새 집에서 외할머니, 외숙부, 삼촌, 나 이렇게 잠을 자게 됐다. 그런데 연탄가스 중독으로 외숙부가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도 사경을 헤매다 돌아가셨다. 나는 사흘이 지나 깨어났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다보니 시가 뭔지 몰랐다. 평소 낙서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내가 한 낙서를 보고 회사 상사가 “시라는 게 있다. 시를 써봐라” 고 했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쓰기 시작했다.”
 
 
IMG_5062.JPG


내 시 내용을 보면 ‘노동자 시인’이라고 한정할 수 없어
“노트에 낙서한 걸 1986년에 존경하던 선생님 세 분한테 보냈다. 그해 여름 8월에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대문에 책이 꽂혀 있더라. <세계의 문학>에 당선된 거였는데, 그때는 그게 등단인 줄 몰랐다. 다시 공부를 해서 1988년에 <현대시학>에서 등단했다. 등단하고는 열심히 썼다. 어느 때는 결근하면서 공부를 했다.(웃음) 지금 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보기엔 다 엉터리다. 읽어야 할 고전을 읽으면서 공부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노동자 시인’이라고 하는데 시 내용을 보면 그렇게 한정할 수 없다. 사소한 문제가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인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시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라. 기회가 닿으면 수업도 하고, 독서클럽도 꾸리고 싶다. 시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시 스타일이나 기법이 정착되지 않은 사람이 많다. 공부할 땐 미쳐버려야 제대로 기초를 닦을 수 있다. 물론 시를 취미로 할 수도 있다. 그 가운데에서 능력과 열정이 있어 잘하는 사람은 등단하면 된다. 문학은 어쩔 수 없이 대중성이 있다. 책이 멀리 하는 풍토에선 더 그렇다. 잡지사들 상황이 다 안 좋다. 어떤 데는 시 한 편에 2만5천원, 2만원 한다. 또 어디는 7만원, 더 잘나가는 데는 10만원을 주기도 한다. 제대로 된 독서를 해야만 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시는 머리가 좋아야 쓸 수 있다.(웃음) 내가 상당히 ‘종교적인 사람’이다. 항상 인간의 근원적인 걸 생각한다. 시집을 많이 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내 먹을 만큼만’ 하면 된다. 2011년에 시집을 냈으니까, 2015년 정도에 시집을 낼 생각이다. 지난 4월에 열린 <노동과 예술> 북콘서트는 후배들이 주선해서 열린 거다. 유쾌하고 재밌었다. 다음 산문집은 '창세기 해설‘을 담아낼 생각이다.”


일당으로 일하는 사람은 정보가 무척 중요해
“시간이 나면 집에서 책을 읽고 음악도 듣는다. 일이 없어도 다음 일을 알아보려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일당으로 일하는 사람에겐 정보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용접’ 자체는 힘들지 않다. 지금은 대체로 아무 일이나 해야 한다. 돈을 괜찮게 주면 해야 한다. 전공만 찾을 수 없다. 최근에는 백령도 공군기지 짓는 데 가서 초소를 짓고 왔다.”

“인천에서 일을 많이 했다. 남동공단, 주물단지, 청라지구 쪽에서 많이 했다. 인천은 안상수 시장 때 많이 변했다. 여기저기 개발이다 뭐다 해서 시작을 많이 했다. 아파트도 많이 지었는데, 거기에 사람이 다 차겠나? 강화 가는 방향으로 해안도로도 개발 많이 했다. 이렇게 무리하게 개발해서 빚이 많은 거다. 너무나 넓은 지역을 개발만 하고 있다. 자꾸 도시를 새로 만들고 있는 거다. 인천에는 자동차 보험료도 높다고 하잖나. 그만큼 교통사고도 많은 지역이다.”
 
 
 
IMG_5059.JPG


인천은 문화콘텐츠가 다양한 곳
“인천은 문화콘텐츠가 다양한 곳이다. 지원도 많다고 한다. 2015년 책의 수도로 선정됐잖나. 평소에 사람들이 돈이 안 되는 것에도 달라붙어야 한다.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돈 버는 일만 생각하면 안 된다. 당장 먹고 살 수는 있지만, 현실문제만 신경 쓰면 인간의 보편적 가치과 결부돼 있으니까, 개별적인 것만 생각해선 안 된다. 삶에 대한 태도가 단편적이면 책을 읽지 않는다. 바쁘고 힘들더라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독서모임을 꾸리고 싶다.”

“사람들이 ‘천천히’ 살았으면 좋겠다. 일본은 큰길에서도 경적소리를 내지 않는다. 길에 고급차, 큰차가 거의 없다. 그런 쪽에서 보면 우리 한국사람들은 촌사람 같다. 잔머리를 많이 굴린다. 일본사람들은 치밀하고 무서운 사람들이다.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좀 다른 얘기인데, 일본사람한테 역사왜곡을 반성하라고 하는데 그것도 웃긴다. 우리는 우리 현대사에 대해 자기반성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생각을 바로 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197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는 문고판 책이 쏟아져 나왔다. 헌책방도 많았다. 지금도 그래야 한다.”


생각을 요구하는 책이 많이 팔려야
“생각하는 버릇을 키워야 한다. 먹고 살기 어렵다보니, 모든 게 먹는 수단이 되고 본질적인 탐구는 뒷전으로 밀렸다. 보수정권이 계속 집권하면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 우리나라는 통일이 안 되면 힘이 없다.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기필코 평화적인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 ‘통일비’ 내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고두고 분단조국을 후세에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을 요구하는 책이 많이 팔려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