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인천석유화학, 장외영향평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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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인천석유화학, 장외영향평가 필요
  • 강창대 기자
  • 승인 2013.10.1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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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검증 없이 주민과 갈등의 골만 깊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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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봉수대로 주변에 SK인천석유화학이 증측 중인 공장 전경

공장 증설을 두고 SK인천석유화학과 시민들 간의 갈등이 해결될 조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은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구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진 후, 10월 5일에는 SK석유화학공장 건설 승인취소를 위한 인천주민연합대책위원회(이하 SK대책위)를 꾸려 조직적인 대응을 펴나고 있다. 

정치권도 이에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천시 서구의회는 지난 9월 6일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SK인천석유화학 파라자일렌(PX) 공장 공사 중지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서구의회 박형렬 의회운영위원장은 10월 15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검증위 조사 등에 의해 공장 증설의 문제가 발견될 경우 48만5천여 서구 주민의 대표인 13명의 서구의원들은 준공검사를 저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10월 7일에는 서구 주민 1만3천591명이 인천시의회에 공사중지 결의를 촉구하는 청원을 냈다. 이어 10월 11일에는 인천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김병철 의원이 제2011회 임시회 2차 본회의 ‘5분 발언’에서 SK인천석유화학 공장 증설의 문제를 제기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인천시는 지난 10월 10일 서구청에 감사반을 투입해 자료수집에 들어갔다. 14일 인천시 감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시는 현재 수집된 자료를 분석 중이다. 공장등록과 건축허가, 4차에 걸친 환경영향평가 등, 20여년에 걸쳐 진행된 공장 증설관련 인·허가 사항을 검토하고 있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조사 결과 발표는 늦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시 관계자는 조사 결과 위법 사항이 발견될 경우 본격적인 감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최고라는 삼성전자도 불산 누출 사고 일으켰다

지역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SK인천석유화학이 증설하는 화학공장이 생산하는 벤젠과 톨루엔, 자일렌 등의 위해성 때문이다. 즉, 이들 화학물질이 누출될 경우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벤젠의 경우 1급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어 주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11일 기자와 가진 면담에서 SK인천석유화학 관계자는 생산물질의 위해성을 일축했다. 무엇보다 유해물질이 발생하거나 누출되면 가장 먼저 현장의 근로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고, 이를 소홀하게 관리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자살행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생산과정이 공정별로 나뉘어 관리되기 때문에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공정을 차단해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잇달아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SK석유화학 측의 해명은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구미의 한 화학제품 생산업체에서 불산이 누출돼 5명이 죽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의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사고로 인해 2천여명이 치료를 받아야 했으며, 사고지점 일대의 농작물이 모두 고사하고, 산업단지 내 40여개 업체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올 1월에는 삼성전사 화성사업장에서 또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SK인천석유화학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SK대책위는 “1급 발암물질 벤젠을 비롯한 유독물질이 배출되는 화학공장이 주거지 한복판에 들어서는 것은 결코 인근지역 및 서구, 동구만의 문제가 아닌, 인천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인천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확산해나가고 있다.

발암물질에 대한 우려보다는 폭발 위험이 더 문제

그런데 SK인천석유화학 공장의 생산물질의 위해성을 지나친 우려로 보는 또 다른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인천대학교 에너지환경안전보건원의 이인복 연구원은 벤젠이 발암물질인 것은 맞지만 주민들의 우려는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벤젠의 위해성은 다량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커지기 때문이다. 

이인복 연구원은 “유해화학물질의 단순 누출은 SK인천석유화학의 자체기술로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하며 “화학물질 누출에 대한 건강상의 위해성보다는 이런 물질들이 누출됨으로써 화재나 폭발이 발생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2005년 3월에 발생한 ‘BP 텍사스 시티 정유공장’ 폭발 사고와 같은 해 12월에 영국 번스필드 유류저장소 화재 사례를 예로 들어 “유류저장소가 다량으로 밀집된 곳에서 폭발이 일어날 경우 거대한 화염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현재 SK석유화학 단지 사업장 담벼락을 경계로 생활시설이 근접해 있어 대형화재 폭발이 일어나면 주민들에게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책으로 이 연구원은 ‘장외영향평가’를 제시했다. 장외영향평가는 일정 기준 이상의 주요 위험시설을 신축 및 증축하거나, 위험시설 주변을 개발할 때 위험도에 따라 구역을 설정하고 해당 위험도를 관리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환경부가 2015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SK인천석유화학 측은 장외영향평가 도입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SK인천석유화학 관계자는 “법규에서 정하고 있는 위험성평가 기법인 HAZOP(위험과 운전분석) 실시와는 별개로, 장외영향평가와 유사하며 심층적인 위험성평가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방호계층분석기법(LOPA, Layers of Protection Analysis)과 정량적 분석기법(Consequence Analysis)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시가 나서서 장외영향평가 권고해야

SK인천석유화학 측의 설명에 반해, 이인복 연구원은 SK인천석유화학이 밝힌 위험성평가 기법은 단지 내부의 위험성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지, 외부에 대한 위해성은 포함돼 있지 않은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도 마찬가지다. 환경영향평가의 항목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 사회·경제적 환경, 이렇게 3개 분야에 23개 항목으로 세분화돼 있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화재, 폭발, 누출로 인한 유해위험물질 사고에 대한 위험범위 및 주변지역 주민들의 안전조치 계획에 대한 항목이 없다”면서 “향후 기술적, 제도적 접근을 통해 장외의 위험 분석을 실시하여 안전대책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 차원에서 검증단이 꾸려져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장외영향평가가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나온 자료만으로는 실질적인 검증을 진행할 만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인복 연구원은 현재 주민들이 벤젠 등 유해화학물질이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장 증설을 반대한다면 설득력을 잃고 주민들의 주장이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환경운동연합의 이혜경 사무처장도 맥을 같이했다. 이 처장은 지금 시민들이 벌이는 싸움을 통해 “주민들이 최대한 실익을 얻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직 장외영향평가가 법제화되기 전이지만 “SK인천석유화학의 공장증설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반드시 실행되도록 시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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