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방어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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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방어권이라니!
  • 이정숙
  • 승인 2013.11.22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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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인천교육미래찾기(33)


  •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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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방어권이라니!

이 정 숙 (하정초, 인천교육연구소)



김샘은 신문기사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내용에 심기가 불편했다. ‘생활지도 쉽잖다. 고개젓는 정규 교원들 때문에… 담임 떠안는 기간제 교사 부쩍 늘었다’, ‘늘어나는 기간제 교사의 담임배정... 피해는 학생들이 본다.’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은 교사들이 귀찮은 것을 싫어해서 실력도 책임감도 없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슬쩍 자신의 일을 떠넘겨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는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관점도 문제의식도 없이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기간제 교사가 늘어난 것은 생활지도를 하기 싫은 게으른 교사 탓이라는 데에 주로 주목하면서 슬쩍 모든 책임을 교사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샘은 며칠 전 작년에 6학년 담임을 맡아 정신과 치료를 받느라 휴직한 동료교사를 만났다. 그 교사는 김샘이 알기에 상당히 활달하고 적극적인 교사였다. 그런데 그녀는 학교에 오면 아이들을 만나는 두려움에 가슴이 떨린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아이들이 무서워 급기야 일 년이 넘게 휴직을 했다. 이것이 한심한 교사 개인의 문제일까.


김샘도 6학년 아이들이 음악실로 쿵쾅쿵쾅 들어오는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그 두근거림은 설렘이 아니다. 들어오자 아이들은 교사가 앞에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욕을 해대며 큰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교사가 제지하자 “야, 수업하잰다. 큭큭, 낄낄.” 여기저기 손뼉을 치며 큭큭거리고 “얘들아 조용히 하래잖아”하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난다.


김샘은 엎드려 자는 아이를 깨웠다. “아이씨, 누구야? 0랄!” 아이는 교사의 얼굴을 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책상에 엎드린다. 제지하는 김샘 코 앞으로 종이비행기가 날아들었다. 깜짝 놀라 주워드니 교과서 표지를 찢어 날려 보낸 것이었다. 김샘은 아이들의 조롱에 수치심이 느껴졌다. 음악책을 찢어 비행기를 날려 보낸 아이의 팔을 잡아 제지시키자 “어, 이거 성폭력이다!”라고 소리친다. 김샘은 수치심과 자신의 무력감에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웠지만 다른 아이들을 생각하며 교사로서 품위와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노력은 몇 분 안 가 좌절되기 일쑤였다.


수업이 끝나자 김샘은 아이들을 따로 불러 개별 상담을 시작했다. 그 아이는 “내가 뭘요”, “아니요.” 간단한 말만하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다문다. 참으로 재수 없이 걸렸다는 표정으로 온갖 경멸을 담은 제스츄어를 온 몸으로 해댄다. 교육자로서 위엄과 다정함을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와 애써 담담하게 짓는 표정이 씁쓸했다.


김샘은 오랜만에 교사인 친구를 만나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고등학교는 더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고 한다. 그래도 교사니까 잘 타이르고 잘 추슬러서 뭔가 해보자고 했지만 매번 그 아이만 상대할 수도 없는 노력이고 몇몇 아이 때문에 정상적인 다른 아이들까지 따라하는 형국이고 보니 더 이상 그 아이들을 ‘이상적으로 교육적으로’대할 수가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했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을 침착하게 웃으면서 대할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어쩌다 신문에 나는 얻어맞는 교사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가세하면 더 기가 막힌다고 했다.


김샘도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한 아이가 친구들을 밀어 다치게 했다. 마침 아이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평소 고집을 부리고 학교생활도 엉망이고 늘 문제상황을 만드는 아이라 아이 어머니를 만난 김에 간단히 자초지정을 말하고 과제를 거의 해 오지 않으니 가끔 아이의 과제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아이 어머니는 그렇게 문제가 있는데 왜 이제 말하느냐, 다른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누가 공부시켜 달라고 했느냐. 몰라도 놔둬라. 등 주문을 하면서 “내가 녹색 교통대인데 선생들이 늦게 오니까 아이들이 그 모양이지”라며 대화 내용과 상관도 없는 억지 내용으로 교사들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김샘은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뭔가 잔뜩 화가 나 있는 사람에게는 진실을 말할수록 기분이 나쁜 법이었다. 또 교사 입장에서 학부모와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저 “그러셨군요. 속상하시겠네요. 저도 많이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하는 말로 뭔가 사과하는 모습으로 대화를 끝내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얼마 전 모 방송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판매원들의 ‘감정노동’의 힘겨움을 다룬 내용이 방송되었다. 감정노동이란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러셀 혹실드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승무원이나 백화점 판매원 등이 일을 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을 숨긴 채 미소를 띤 표정과 몸짓 등으로 일관하면서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김양은 마트에서 일하다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한다. 김 양은 세일 기간 중 손님들이 줄을 서 있는데 새치기 하는 사람이 있어 “손님! 다른 손님들 기다리시는데 새치기 하지 마세요.”라고 말해 고객센터에 신고를 당했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음에도 김 양은 손님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손님이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고객의 입장은 돈을 냈으니까 돈을 지불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세운다. 억울함과 자존심의 상처로 이 감정 노동자들은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감정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방어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즉, 그들에게 감정방어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감정노동에 대하여 한국능력개발원에서 감정노동 삼십 개 직업 순위를 공개했는데 1위는 항공기 객실 승무원이었다. 그러나 교원은 감정노동을 적게 수행하는 직업군으로 분류하였는데 유치원교사는 23위에 올라와 있다. 이 자료들이 어떤 기준으로 작성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위한 감정트레이너들의 접근 방식이 더 눈에 띄였다. 그들은 ‘억울함과 치욕적인 상황 속에서도 “모두들 힘들게 일하고 있잖아. 앞으로 이런 일들은 나아질거야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라고 말하며 감정트레이너들에게 자신들의 감정을 누르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마치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내가 극복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묘히 참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키고 있었다.


김샘은 자기가 겪는 일들이 모든 학교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감정노동자의 일방적 감정 소모가 교사에게도 점점 과잉의 수준으로 요구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단속 못하는 건 교사의 무능함 때문이다’는 식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교사는 문책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들어줘야 된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래서 문제가 야기되면 그것은 교사 자질에 문제가 있거나 성실하지 못한 교사의 책임이다 라고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와 아이들의 폭언과 두려움에 시달리다 못해 우울증으로 휴직한 교사에게 ‘교사의 자질’을 서슴지 않고 운운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건 사회가 만든 잘못을 개인으로 강등시키려는 짓이 아닌가.


김교사는 교사가 감정노동자가 되어가는 모습이 내내 불편했다. 교실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학부모로부터, 힘 있는 부모를 배경으로 떼를 쓰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로부터, 물리적 심리적 상처를 받으면서도 이에 저항하거나 자존심을 지킬 방어장치가 없다. 교사들에게도 감정 방어권이 필요한 것인가.


사회는 이제 교육을 교사라는 판매원으로 거래하기 시작하였다. 자본의 논리로 요구되는 사회의 무자비함에 자신의 인격과 감정을 방어하는 장치도 없이 교사는 매일 자신의 감정에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보니 비전문가인 소비자들의 욕구에 휘둘려 교육의 울타리를 보호하기가 점점 어렵게 되어간다. 그건 누가 더 손해를 보게 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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