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냄새 은은한, 책카페 독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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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냄새 은은한, 책카페 독서마당
  • 차지은 I-view 청년기자
  • 승인 2013.11.26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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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동 골목어귀에서 '옛 책방'을 만나다
<I-view - 인천in 협약기사>
 
 
책방 소파에 앉아 뒹굴며 놀던 기억은 어느새 옛날 추억거리가 되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책방이다. 그래서인지 송림동 어느 골목어귀에서 만난 책방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옛날 사진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반갑다.

딸랑하는 문소리와 함께 종이냄새가 퍼진다. '책카페 독서마당'은 흔히 동네에서 볼 수 있었던 책방의 모습 그대로다. 갈색 가죽소파는 반질반질 윤이 나고, 종이는 누렇게 변해 넘길 때마다 사그락대는 특유의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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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책더미 사이에서 이곳의 주인 이경옥(65)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반납 들어온 책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평생을 주부로 지내던 그녀는 책을 좋아했다. 어느 날 책방을 내놓다는 말을 듣고 인수한 뒤, 10년이 넘는 세월을 이 책더미들 속에 묻혀 지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 못내 섭섭하다고 말한다. 소일거리들과 책정리만으로도 벅차다는 것.
"제가 운영한건 10년이 넘었어요.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잘 안나요. 인수하기 전에 주인이 운영하던 것까지 합치면 꽤 오래됐을 거예요. 요 앞에 한군데 더 있었는데 지난 5월에 문을 닫고, 이제 동네엔 여기밖에 없어요."




대형 서점이 들어서는 사이, 동네 책방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나마 있던 단골들도 발걸음이 끊기고 오는 사람만 오는 정도다. 그래도 이 씨는 여전히 찾아오는 손님이 고맙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어느새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만큼 만화책의 인기는 자연스레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류로 넘어갔다.
"만화류는 거의 전멸이예요. 학생들은 거의 없고,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의 손님들이 많이 와요. 요즘엔 큰 서점이나 전자책을 많이 보잖아요."



정갈하게 정돈된 서점과는 색다른 풍경이다. 구석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쌓였다. 책 먼지 사이로 한 손님이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이내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이곳을 찾는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손을 절래 절래 흔들 뿐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방해가 될까 싶어 더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인터뷰를 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웠지만, 주인장의 대답으로나마 위안을 삼기로 했다.
"대부분 조용히 쉬러 오는 거죠. 옛날생각도 하고 뭐." 이런 것조차도 대형서점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이곳 책방엔 고양이도 함께 숨 쉬고 있다. 책방 곳곳에 놓인 고양이 사료가 고양이의 흔적이다. 박스에 앉아 낮잠을 자던 이 고양이는 원래 길에서 생활하던 고양이였다. 길에서 돌멩이를 맞고 사람한테 해코지를 당하던 아이가 불쌍해 거둬 기른 지 5년째라고. 잘 살라고 이름도 '대박이'라 붙여줬다. 처음엔 경계가 심한 아이었지만 정성으로 기르니 이렇게 순할 수가 없단다. 청년기자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기분이 좋다는 '그르릉'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 손님이 찾아왔다.
“현금결제밖에 안되죠?”
“네”
“50권 한 번에 빌려가고 모자라는 건 반납할 때 드리면 안 될까요? 조금 부족해서요.”
“그렇게 하세요. 그럼 되지 뭐.”
옛 책방의 모습은 딱 상상하는 만큼, 정이 넘쳤다. 낡을 대로 낡아 찾는 이도 그리 많지 않지만, 이런 모습이라도 남아있어 훈훈한 미소가 그려지는 것 아닐까.
이경옥씨는 고양이의 이름만큼 ‘대박’이 날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책방의 셔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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