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이 사라진 사회
상태바
맥락이 사라진 사회
  • 김영수
  • 승인 2013.12.11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지칼럼] 김영수 / 인천YMCA 갈산종합사회복지관장
 
ICZ47kae.jpg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고성과 욕설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심해지면 몸싸움과 협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단련된 사회복지사도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어진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사회복지 현장을 떠난 이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의 윤리수준에 혐오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떨어지는 건지,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낮아서 가난해진 것인지 선후관계를 분별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 심해지면 몸싸움과 협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단련된 사회복지사도 이런 상황은 피하고 싶어진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사회복지 현장을 떠난 이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의 윤리수준에 혐오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떨어지는 건지,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낮아서 가난해진 것인지 선후관계를 분별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각 사람의 살아온 과정과 지금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 즉 그 삶의 맥락을 살펴보다보면 지금의 모습을 도덕적 윤리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은 그가 살아가는 환경과 관련하면서 살아 왔고, 살고 있고, 살아 갈 것이다. 사회적 맥락을 읽어낸다면 지금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고유한 사람의 특성이 있을 것이지만, 문제는 그 고유한 특성이 사회적 환경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 가이다. 맥락을 살피는 과정은 관계를 위한 준비과정이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여자 아이가 있다. 뚱뚱하고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데다가 사교성도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진 그 아이는 살아가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손목을 칼로 그었는데 선생님도 놀라고 친구들도 놀라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자신을 주변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종종 손목을 긋고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 이 아이의 자해하는 모습이나, 외모와 성적, 어울리지 못하고 숨어 들어가는 성격만을 본다면 이 아이는 어울리고 싶지 않은 아이이다. 즉 배제시켜도 되는 아이인 것이다. 하지만 맥락을 살펴보면 이 아이가 왜 이러는 지 이해할 수 있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 지를 알 수 있다.
맥락을 살피고 이해하는 사회는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이다. 맥락을 살피지 않고 현상만을 바라보는 사회는 배제와 포섭이라는 선택에 관심을 쏟는 사회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 그 관계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복지공동체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회복지는 어설픈 선행이거나, 비난을 피하는 면죄부에 불과하다.
한국사회는 맥락을 단절하여야 성공할 수 있는 이들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친일파가 그러했고, 총칼로 집권한 이들이 그러했고, 그 권력에 빌붙어 배를 불린 이들이 그러했다. 연대와 관용, 평등한 관계형성은 맥락을 복원하는 행위였기에 용납할 수 없었다. 맥락이 단절된 오랜 시간을 겪었음에도 시민들은 맥락을 복원하고자 하였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맥락은 단절되고 현상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통해 배제하고 포섭할 대상을 선별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된 것 같아 무섭고 안타깝다.
맥락을 살피고 이해하고 관계를 고민하는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노력, 즉 사회복지가 비로소 정착된다. 전후 맥락을 끊고, 사회적 맥락을 생략하는 것은 배제와 포섭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려는 이들의 퇴행적 시도이며, 복지국가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맥락을 복원하기 위해 다시 연대하고 이해하고 실천해야하는 시기도 더불어 온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