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는 잘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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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는 잘 몰라서...
  • 이정숙
  • 승인 2013.12.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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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인천교육미래찾기(36)
  •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정치는 잘 몰라서...

이 정 숙(인천하정초, 인천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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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김샘은 올 들어 한 번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교실에서 푹푹 찌는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온도가 32도라고 했으니, 건물 끝 교실에다 맨 윗층, 아이들이 앉아 있는 교실은 40도가 웃돌았다. 수업을 하면서도 늘어져 있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들으라거나 문제를 풀어보거나 발표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 미안했다. 딴청 떨거나 떠드는 아이들을 제지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이 환경에서 공부를 하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이 말을 들은 어르신들은 “무슨 소리, 우리는 거적대기 깔고 폭탄이 떨어지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공부했는데‘라고 자신의 꿋꿋이 견뎌냈던 시절과 비교하기도 한다.


모두들 더위와 전쟁을 하면서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한마디씩 한다. “에어컨은 왜 달았대? 그러게 말야. 선생님! 에어컨 틀어줘요. 난 권한 없어. 교장선생님한테 말해 ”. 조회시간에 교장샘이 아이들에게 한마디 하신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은 틀어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전력난 인거 아시지요? 우리는 나라가 어렵다는 걸 알고 참고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제 겨울이 되었다. 방학이 다 되도록 역시 히터 한번 가동된 적이 없다. 영하의 날씨다. 아무리 양말을 겹쳐 신고 오리털 털옷을 겹겹이 끼어 입어도 앉아 있기가 어렵다. 손이 시려워 컴퓨터 자판이 쳐지질 않는다. 영하의 온도가 되어야 아침에 한 시간 틀어준 게 다다. 그러면서 전기를 아껴야 되니까 교실 모든 전열기구는 압수라는 행정실장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팝업창에 뜬다. 월요일 조회시간엔 ‘불조심’만 강조되는 교장샘 훈화에 ‘온기도 없는데 뭔 불조심이냐’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 나온다.


김샘은 아이들은 더 이상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어쩌다 덥다거나 춥다거나 불평하는 아이가 있으면 몇몇 다른 아이들이 “야, 우리나라가 전력 난이라잖아”라고 일갈하여 그 아이를 머쓱하게 한다. 참으로 애국심이 넘치는 기특한 아이들이다. 협의실에 동료교사들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뭐 어째, 나라가 어렵다잖아. 참아야지 뭐. 전력 난 이래. 다들 절약해 줘야지.”


그러자 평소 온화한 박샘이 이게 다 그 나쁜 놈들 때문이야. 자기네들이 비리 저질러 놓고 우리 세금만 올리고 피해는 우리들이 다 보고..“ 라고 흥분을 하기 시작하자 이 샘이 맞장구를 치며 거든다. 그러자 한 두 샘들이 나가거나 수첩을 뒤적이거나 복사를 하거나 수업자료를 뒤적이며 각자 자기 할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박 샘이 다시 다른 샘들에게 시선을 돌리자, 한 샘이 ‘저는 정치는 잘 몰라서요’ 라고 응대한다. 그러자 이샘과 조샘이 저도요. 다 그놈이 그놈이죠 뭐. 라고 응대한다.


김샘은 샘들이 착한 건지 관심이 없는 바보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저, 샘들, 이건 정치 얘기가 아닌데요. 이건 우리가 처한 상황에 관련된 거예요. 우리가 쓰는 전기사용량은 기업이 사용하는 것에 비해 16%에 불과해요. 특히 최근 몇 년 간 기름값이 크게 오르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은 산업용 전기는 더 싸진 셈이 됐지요. 우리 개개인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껴야 할 게 아니라 우선 산업전기를 아끼도록 권장해야 전력 수급이 제대로 될텐데...”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여주었다.


‘(상략) 여기에 외국기업 유치를 한다며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쓰는 산업까지 국내로 가지고 오려고 안달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데이터센터, IDC입니다. 서버에 냉각장치가 어마어마하게 달려서 전기 잡아먹는 귀신입니다. 반대로 고용유발효과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외국 기업의 IDC를 우리나라에 유치하려고 제도를 손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그 주체가 바로 전력난을 관리하는 산업통상자원부입니다. 한쪽에선 전기 모자라다며 국민에게 아끼라고 하고, 한 쪽에선 세금까지 들여가며 전기 잡아먹는 외국 산업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공무원들의 '실적'이 되기 때문이겠죠.(후 생략)’


김샘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가정 냉난방기기를 줄이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고 하지요. 라고 말하고 나니 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부조리한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불평하거나 아니면 귀찮다는 듯 외면하는 다수의 동료들이 안타까웠다. 정치가들의 비리나 불합리적인 행정적 처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돌리며 정치색깔로 바삐 덮으려는 행동이 속상했다. 마치 정치적 발언을 하면 생명을 위협당하는 것처럼.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정의나 합리적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인데도 정치로 덧 입혀져, 정치가 금기가 되는 현상은 정치를 더욱 혼탁하게 하는데 기여한다. 이렇게 보면 실상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아닌 게 어디에 있는가. 정치는 우리 사회이고 우리 문제가 되어 기꺼이 논의되고 합의되고 소통되어야 건강한 정치와 사회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이 사회는 정치를 금기시 하는 사회가 되고야 말았다. 어떤 문제를 꺼내기만 하면 한쪽 색깔을 덧 입혀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마녀사냥의 원시성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로 복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쉽게 ‘정치’라고 하는 것에는 대부분 우리의 권리와 삶의 문제를 말하는 것임에도 ‘정치’로 몰아넣거나 은근히 멀리하게 하거나 정치는 위험한 것이라고 여기게끔 하는 음험한 전략이 읽히는 것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프랑스는 해마다 바깔로레아라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치른다. 바깔로레아는 것은 1808년 부터 시작되어 근 200년 넘게 진행되어 왔으며, 이 시험이 치러지는 날은 최고의 지식인부터 택시 운전사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갖고 자기 나름대로 답을 작성하는 일들이 벌어진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관심들은 프랑스 지성의 ‘허브’가 되어, 프랑스 시민을 보다 성숙하게, 또 건강하게 소통하는 창구로 기능했을 것이다. 사회가 다르고 구성원이 다른 상황에서 프랑스와 우리가 같을 수는 없지만, 보류되지 않는 인식의 공유가, 그리고 적극적 소통의 참여가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의식이 사회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현상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 소통의 주제로 올해 바깔로레아 시험문제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였다고 한다. 프랑스는 정치를 윤리적인 문제와 결합시켜 생각하고 있다. 정치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보편적인 도덕성으로부터 관련지어져야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정치를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늘 정치를 언급하는 것을 감추고 금기시하고 또 의견을 색깔론으로 덧입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사들 역시 그러한 전략에 스스로 안주하면서 교육자로서 ‘골치 아픈 얘긴’ 하지 않으려는 무심함으로 일관하려 한다. 하지만 그 무심함이 교육을 오히려 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교육자가 나서야 할 목소리도 슬며시 권력에게 다 주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교사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으며 그 정체성에 비추어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김샘은 며칠 전, 인성교육이 내년부터 초중고 의무화 된다는 법안을 국회에서 법으로 초안을 잡았다는 기사를 접했었다. 사범대 교대에서는 필수과목이 될 예정이라 이것들에 대한 국회포럼이 개최되고 법초안이 조만간 (한겨레 13년 11월26일자) 공개된다고 한다. 세상에나! 이젠 법도 모자라 인성을 법으로 만들려나 보다. 아니 그것보다 더 심한 건 필수 과목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젠 감성도 사랑도 다 정규과목으로 만들 기세다. 교육자들이 발의 한 것도 아니고 정치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말이다. 정치하는 사람이 발의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를 교육자들의 합의과정 없이 ‘필요’라는 당위성만 가지고 문제를 은폐하거나 봉인하는 식의 처방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몇몇 소수의 교육자들의 참여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다수 국민 여론과 숙성의 시간을 말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기보다 처방전을 만들어서 뿌려대는 전시행정의 단면을 보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진데 이 사회는 그것을 감당할 여론을 수렴하고 응집할 창구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교육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비교육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는데 어찌 ‘나는 정치를 모른다’ 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개인이 선택한 것들은 구체적인 특정 개인의 것이지만 그 개별적 행위와 선택의 이면에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자유롭게 자기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발언이 활발하게 교환되고 그 발언에 대한 책임과 함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김샘은 누군가 트위터에 올린, “고통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지만 개별적인 고통들의 배후에는 사회적 맥락과 의미망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걷는 법을 익혀야 한다.” 라는 김연수라는 작가의 말을 곱씹어 본다.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그저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애써 설명하고 끌어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샘은 오늘 교과와 상관없이 만델라 타계 소식을 아이들에게 전했다. 학교가 있는 지역이 열악해서 부모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는 극히 적었는지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초등학생이지만 세상에 돌아가는 일에 귀 기울이는 것이 생활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회를 알고 정치를 금기시하지 않는 첫걸음이 될 것 같았다. 아이니까 몰라도 돼. 하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애써 만델라의 삶을 이야기했다. “오십여년 전에 감옥도 무수히 드나들며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야 할 권리를 위해 애써왔던 분이다. 오늘날 흑인의 인권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권이 이렇게 까지 지켜 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초를 ... ”.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심드렁하게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감옥을 가라는 거지요?” 김샘은 얘기가 너무 길었구나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알려주기 위해 참으로 많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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