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공립박물관 68주년, 이명숙 시립박물관 관장을 만나다
1946년 4월 1일, 인천시립박물관이 중구 송학동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태어났다. 해방된 지 일년이 안 된 시기였다. 공립박물관 문을 연 초대관장은 석남 이경성이었다.
박물관은 문을 연 지 채 4년이 안 돼 한국전쟁을 겪었고, 소장 유물이 불타 없어지는 불운을 만났다. 또 인천상륙작전 때는 박물관 건물이 포격을 받아 없어졌으며, 1953년 4월 1일 휴전되기 전에 송학동 제물포구락부 건물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의 옥련동으로 자리를 잡은 지도 25년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해온 시립박물관의 역사가 안타깝고 애틋하다. 박물관의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를 이명숙 관장을 만나 들어봤다.
-박물관장에 취임한 지 일년 됐다. 그동안 어땠는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그동안 여성이나 사회복지, 유아교육 쪽 일에 치중해 있다가 박물관에 와서 일하니까 참 좋았다. 마치 친정에 돌아온 것 같았다.(웃음)”
-인천시립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면서 68년 됐다. 역사나 전통에 비해 다른 지역 박물관보다 덜 알려졌다고들 말한다.
“그게 참 안타깝다. 그런 점 때문에 일년 동안 박물관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역대 관장님들은 개관식 기념을 몇몇 사람이 식사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그동안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박물관 이야기를 하면 “박물관이 어딨어요” 하는 사람이 많았다. 충격이었다. 시의원을 하면서 박물관을 자주 와봐서 사람들 생각이 그 정도인 줄 몰랐다. 무엇보다 많은 분이 박물관을 직접 와봐야 우리 인천시의 대표적인 기관이 되겠구나 싶어 알리는 일을 많이 했다.”
-박물관 이전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박물관은 접근하기 힘들과 공간이 비좁다. 그래서 취임하면서 박물관 이전 이야기했다. 그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박물관에 대해 관심을 끌어내고 자연스레 시민과 시 정책 관계자들 정서에 박물관 이전을 기정사실화했다. 가는 곳마다 “어디로 이전할 거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구도심으로 오기를 바라는 분이 많더라. 여기 컴팩스마트시티에서 바라보이는 부지도 계획에 있다. 송도신도시의 센트럴파크에는 NSIC가 계획한 박물관부지가 있다. 투자유치를 받아 박물관을 짓고 운영하다가 기부체납하는 형식인데 투자유치도 어렵고 박물관은 운영할수록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니고 운영비가 계속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NSIC가 박물관을 잘 지어서 인천시에 바로 기부하면 국제도시 송도를 개발하면서 박물관을 기부했다는 좋은 이미지로 NSIC가 계속 인천과 세계 역사에 남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원도심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정서가 더 많아 조심스러운 일이다. 제물포 인천대 있던 자리나, 부평 미군부대 있던 자리도 모두 거론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언제 될지 모르지만, 빠른 시간에 이전이 될 수도 있다. 경제청하고 이야기를 해서 빨리 될 수도 있다.”
“또 지난해 인터뷰 때,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서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상륙작전기념관하고 송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다. 오히려 월미도 평화의 공원 쪽이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 인천시에는 복합수장고가 없다. 사립박물관도 그렇고… 전시가 있을 때 한꺼번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수장고가 있으면 좋겠다. 사립박물관들이 다 좁으니까 만약 시립박물관이 상륙작전기념관까지 넓히게 되면, 시립박물관이 그런 점을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대한 생각은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취임해서 일년 동안 힘든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박물관장은 공무원이다. 시에 가면 문화체육관광부에 있는 최말단 사업소더라. 박물관의 위상이 너무 약하다. 종합예술문화회관 도서관 박물관이 모두 사업소인데, 보고하는 순서도 예산이 배정되는 순서도 다그렇더라. 사업소 세 개는 흔히 말하는 사업소와는 구분이 돼야 할 것 같다. 박물관은 인천시의 대표적 문화기관으로서, 직접 시민과 소통하고 관람객을 만나는 곳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인천시의 문화와 역사를 한 곳에 놓고 보여주는 데인데도 조직이 그렇게 돼있다는 사실이 일하는 데 어려웠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그동안 시의원도 했고 시민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그 점을 조금 뛰어넘긴 했다. 박물관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나아지도록 애썼다.”
-일년을 바쁘게 보냈을 것 같다. 힘들었지만 일년을 돌아봤을 때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
“일년 동안 일하고서 가장 기뻤던 점은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말이 가장 기뻤다. 그 말을 듣고 행복했다. 자원봉사자분들도 바뀌었다, 정리정돈 됐다고 말해줘서 기뻤다. 박물관에 와서 처음에 신경 쓴 곳은 환경정비였다. 수장고를 비롯해 정리할 곳이 많았다. 전시장에 음악을 틀어 관람객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게 했고, 1층에 카페도 만들어 쉴 공간을 만들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오륙백명이 오더라. 눈에 보이는 성과는 편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유물을 관람하고 쉴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밖에 바꿀 점들은 아직도 많다.”
“박물관 최초로 유물기증자들을 초청해 감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기증자들에게 자부심과 시민에게 기증 운동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또, ‘박물관으로 떠나는 음악여행’을 진행하면서 피아노가 없어 빌려왔는데 석남홀에 작은 그랜드피아노를 구입해 배치했다. 조례개정으로 현실적이지 않던 박물관 관람료를 무료로 바꾸고 특별전시나 대관전시 참여프로그램 실비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취임하면서 말한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환승객들을 박물관으로 유치하는 환승투어프로그램을 인천공항공사와 함께 개발해 지난해 9월부터 다달이 백여명 이상의 환승객들이 우리 박물관을 찾게 했다. 최근 들어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박물관이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역할을 다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직업성격상 창의적이고 추진력이 있어야 하는 학예사들의 역할도 중요했을 테고, 바쁜 시간 쪼개서 열정적으로 일한 자원봉사 분들도 한 분 한 분 참 소중하다.
“맞다. 박물관은 어떤 한두 사람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박물관에 자원봉사자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 계신 분들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해설하시는 분들에 따라 관람객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자원활동 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면 한정된 공간과 시간에서는 자원활동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스스로 숙련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은 한 번 되짚어볼 필요는 있다. 자원봉사자 분들은 행복한 박물관을 만들어나가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이다. 자원봉사 활동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너무 양만 중요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되기도 한다.”
“귀한 시간을 쪼개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데 8천 원을 드리는데, 이건 식대도 안 되는 돈이다. 일이 있으면 시간 내서 와주시고, 어떤 때는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오시기도 한다. 그렇게 소중한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좋겠다. 박물관에 요구할 부분은 당당히 요구도 하시고, 의견도 말씀해주시고…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 박물관에는 10년 넘게 자원봉사 활동하신 분들도 꽤 많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박물관에 대해 정보를 더 잘 알고 계신다. 일이 서투르다 싶으면 질책보다는 잘 될 때까지 기다려 주기도 하더라.”
-이곳 컴팩스마트시티는 건물 규모부터 거대하다. 어떻게 이곳 운영권을 가져오게 되었나.
“컴팩스마트시티는 2009년 도시축전 때 도시관으로 급조해서 문을 연 곳이다. 하지만 도시관으로 하기에는 부족하다. 1층은 어제의 도시, 2층은 현재의 도시, 3층은 미래의 도시로 인천을 보여준다고 만들어줬다. 시설공단에 위탁해 관리하다가, 이후에 도시공사에서 2년 위탁해 관리했지만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다. 우리 박물관에서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시에 단도집입적으로 박물관에 달라고 했다. 인천처럼 거대한 도시에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시관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해에 학예사를 채용해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주말에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또 수장고도 너무 좁다. 여기 컴팩스마트시티는 전시공간이 많고, 3층 미래도시관은 현재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잘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공간을 인천에 대형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70여평 되는 수장고가 잘 만들어져 있다. 지금 인천시 관련 유물은 이리로 옮겨 전시할 때 금방 올리면 되니까 좋을 것 같다. 시의회, 도시계획부, 도시공사와 협의해서 올해 1월 1일부터 운영권을 가져오게 됐다. 박물관에 와서 외형을 넓히는 데 성과라면 컴팩스마트시티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가 영구히 가져왔다.”
-박물관이 규모면에서 많이 커졌다. 그만큼 할 일도 많고 힘든 점도 많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에 중점을 둘 것인가.
“컴팩스마트시티를 통해서 프로그램을 많이 확산하려고 한다. 인문학 강의는 도시 관련, 미술 관련해서 하고, 책의수도가 내년에 있으니까 그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면 ‘내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제목으로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고 한다. 또 영상실이 아주 잘돼 있어서 영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또 100석짜리 예술극장은 운영할 계획이다. 첫 번째 주는 독립영화, 둘째 주는 고전영화, 셋째 주는 도시를 주제로 한 영화, 넷째 주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애니메이션, 다섯째 주가 있는 주는 한국영화 이렇게 상영하려고 한다.”
“일년 동안 박물관을 알리려고 애썼다. 사회복지협의회, 교육청, 교육연수원과 MOU를 맺어 여러 사람들이 박물관을 많이 찾도록 했다. 선생님들이 박물관을 찾아와 연수를 했고, 박물관 투어도 했다. 상설전시회도 보고 컴팩스마트시티에 와서 보고, 이민사박물관에 가서 보고, 또 다른 팀은 송암미술관까지 갔다. 그 분들이 교육현장에 가서 아이들한테 알리고, 아이들하고 함께 체험학습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지자체로는 남구와 MOU를 맺어 공무원들이 박물관을 왔다갈 수 있도록 했다.”
-지리적으로 인천은 섬이 많은 지역이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데 그 분들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있나.
“그 분들에 대한 배려가 꼭 필요하다. 내가 시의원으로 있을 때는 ‘찾아가는 예술관’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활성화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박물관도 영상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가든지 그 분들이 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밖에 별그대 촬영지 인연으로 “별그대” 관광투어 프로그램을 만든다. 박물관, 도시공사, 경제청, 인천대학교가 함께 일을 한다. 극에 나온 비녀를 만드는 등, 곧 가시적인 일이 될 것 같다. 올해 상반기에서 그 일에 중점을 두게 된다. 참, 지난해 송암미술관에서는 국비로 강화도, 교동도로 찾아가는 박물관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인천시립박물관에는 이민사박물관, 검단선사박물관, 송암미술관이 분관으로 있다. 분관과의 협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시립박물관에는 아주 특별한 콘텐츠를 갖고 있는 분관들이 있다. 정말 자기의 독특한 콘텐츠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분관장들이 자기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아끼지 않겠다. 미술관으로서 정말 훌륭한 송암미술관, 인천에서 최초로 이민을 떠났던 이민의 역사를 이민사뿐 아니라 이주사 박물관으로 해서 고려인들이나 재일본인들에 대한 부분까지 담으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검단선사박물관도 선사유물이 있는 데라서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특히 송암미술관은 좀 외진 곳에 있어서 시민들이 접근하기 힘든데, 이번에 남구청하고 박물관 가는 길을 정비하기로 했다. 공사현장에 어쩔 수 없이 울타리를 쳐야 하니까 그곳에 예쁜 그림이 있는 시트지 같은 걸 뽑아서 예쁘게 정비하려고 한다. 컴팩스마트시티도 도시관으로서 도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소중한 박물관으로 키워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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