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문학상 수상자 4인에게 꿈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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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문학상 수상자 4인에게 꿈을 묻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4.20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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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돌봐준 엄마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고 싶어요.”
제34회 장애주간을 맞아 진행된 ‘제6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에 심언애 외 16명이 수상했다. 지난 2009년부터 6회째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문학공모전에 올해는 시 536편, 소설/수필/동화 111편으로 총 647편이 출품됐다.

이번 행사는 비장애인 부문을 제외한 장애인들의 작품으로만 구성됐다는 점, 먼 거리로 인해 시상식 참여가 어려웠던 지방 거주 수상자에게 호텔 숙식 제공 및 중구 관광을 진행했다는 점이 색다르다.

시상식 하루 전인 지난 14일(월) 오후, 중구 투어를 마치고 하버파크 호텔에 머물고 있던 수상자들을 만나 공모전에 응모하게 된 동기와 꿈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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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혜(55세, 지체1급) 씨는 경남 부산에서 친구와 함께 올라왔다. 직장에 다니던 25세 무렵부터 서서히 류머티스 관절염이 진행됐다. 20년 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다가 5, 6년 전 수술을 한 뒤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다.

김 씨는 시와 수필을 써서 여러 번 상을 탔고 이번에는 수필로 가작을 받았다. “내가 스토리가 좀 있다 보니 가끔 응모해서 상도 타고 그랬어요. 상 받으니까 좋죠. 600편 이상 접수됐다는데 가작이라도 탄 게 감사하죠. 몸이 불편하다보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잘 안 나가요. 이 기회를 통해 인천도 보고 친구랑 여행도 해서 좋아요.”

그녀는 인천에 처음 와 봤다. 중구투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버스에 앉아 겉핥기식으로 돌아볼 줄 알았지 해설사에게 인천의 역사를 듣고, 두세 시간을 걷고,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음식)을 풀코스로 먹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부산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작고, 거의 유흥가거든요. 인천은 너무 멋있네요.”

김 씨는 아이들에게 하모니카를 가르친다. 장애여성 모임을 만들어 어르신 생일잔치가 있는 곳에 찾아가 몇 곡씩 연주하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비장애인이었는데 지금은 1급 장애자예요.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할 수 있는 걸 찾는 데 몇 년이 걸렸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매일 받기만 했는데 우리도 남한테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 꿈이 있으세요?

“제 병은 진행성이거든요. 더 이상 진행이 안 됐으면 하는 게 꿈이에요. 또 제가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국문과, 2학년) 엄마가 학교 다니는 걸 좋아하세요. 엄마가 올해 여든인데, 졸업해서 학사모를 씌워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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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에서 온 이정숙(52세, 지체2급) 씨는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이 씨가 딸에게 먼저 시상식에 가자고 했고, 갓난쟁이 손자랑 셋이 차를 타고 올라왔다.

작년에는 여행이라는 주제로 응모했는데 떨어졌다. 나중에 작품집을 받아 읽어보고는 ‘이 정도 수준으로는 안 되는 구나’하고 본인 글을 점검했다. 이 씨는 올해 ‘전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가 됐고, 바로 그곳에서 글과 사진을 배웠다.

“제가 찍은 사진 중에 특이한 게 있었어요. 건설 현장에서 신는 안전화 안에 누가 꽃을 담아놨는데 저는 그게 너무 예쁘더라고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남편 생각도 나고요. 그걸 주제로 글을 한 번 써보면 괜찮겠다 싶었죠.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하다가 마감이 다가와서 급하게 막 생각나는 대로 쓴 거예요. 작년에 안 된 게 서운하기도 했고요.”

이 씨는 중구 투어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인천이 이런 데구나,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바다를 좋아하는데 여기서 인천항도 내려다보이고 너무 좋아요.”

- 꿈이 있으세요?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꿈이 있었겠죠. 제가 여성이고, 장애인이니까 여성장애인을 위해 열심히 일해보고 싶어요. 올해 ‘전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를 맡았으니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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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자들의 중구 투어 모습 ⓒ 중구장애인복지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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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영(59세, 뇌병변3급) 씨는 경남 울산에서 혼자 올라왔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힘든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천천히 걸으며 혼자 이동할 수 있다.

고 씨는 수필을 써서 은상을 탔다. 꾸준히 일기를 썼고, 카페에 올린 글 등을 보고 주변에서 “네 글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글 한 번 써 봐라”고 권유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산대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을 배웠고 6개월 과정을 두 번 수료했다. 응모는 이번이 두 번째지만 상을 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6-7년 전 병에 걸린 뒤 우울증이 심했다. 받아들이지 못해서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이제는 이것도 다 업보고 연인가 보다 한다.

고 씨는 오랫동안 식당을 했다. 영수증을 적는 것도 힘들고 칼질도 잘 안 돼, 처음에는 목 디스크인 줄 알았다. 점점 몸이 굳어 병원에 갔고, 파킨슨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파킨슨은 약을 잘 먹는 게 중요한데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약을 끊기도 했다.

고 씨는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이 퇴근 후 내려오기로 했다. “딸이 운동 안 하고 살 쪘다고 뭐라 할 낀데….”

- 바람이나 꿈이 있다면요.

“다시 식당을 해서 성공하고 싶은 거죠. 일하고 싶은 마음에 복지관에 일자리 알아봐 달라고 말해놓긴 했는데 다른 사람한테 피해 줄까봐 걱정이 돼요.”

중구장애인복지관 이유진 사회복지사는 “몸이 불편하신데도 본인보다 더 힘든 분을 보면 먼저 달려가서 도와주셨다. 직원들이 미안해할 정도였다”며 “남을 돕는 게 몸에 배신 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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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거주하는 대상 수상자 심언애(43세, 지체1급) 씨와는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녀는 사고로 장애를 얻어, 19년째 불편한 몸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심 씨는 작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권유로 ‘대한민국장애인음악제’에 작시로 참여했는데 자신의 글이 노래가 되는 게 재미있었다. 정식으로 시를 공부한 것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들은 6개월간의 강의가 전부다.

혼자 습작을 하면서 ‘내가 쓴 것이 과연 시가 될까’ 궁금했다. 첫 응모에서 운 좋게 ‘대상’을 탔다. 수상 소감에서 그녀는 “큰 상을 받아서 너무 과분하고 감사하다. 글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꿈이 있으세요?

“꿈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고, 바라는 건 글 쓰는 거 놓치지 않고 계속 시를 썼으면 좋겠어요. 신춘문예 같은 데서 상을 받아 인정받으면 더 좋겠죠. 매일 매일, 하루를 살아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기쁘게 살고 싶고요.”


-대상 수상작-

호랑거미

                      심언애

길은 한 채의 무덤을 완성하는 것
처마와 나뭇가지 사이
호랑거미 한 마리 터진 허공을 꿰맨다
허공에 매달린 목숨이 길을 놓는 건
맨몸으로 풀어내야 할 과업
둥근 그물위로 생이 놓이고 있다
홀로 버티는 시간
쉬 풀어 낼 수 없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
묵묵히 발을 내딛으면
푸른 바람의 발목이 걸리고
달빛이 내려 앉는다
자신 안에서 꿈틀대는
또 다른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성체
알맹이 빠진 생도 두렵지 않은 까닭이다
기꺼이 껍질로 남겨 질
호랑거미 한 마리
길 위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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