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앞바다! 새로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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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앞바다! 새로운 발견
  • 김용구 인천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4.07.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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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구 박사의 인천 섬 이야기] 1

울도에서 본 덕적군도

인천은 바다도시이다. 인천 앞바다에는 대략 155개 섬들이 있으며 그중에 유인도 41개, 무인도 114개 정도로 파악된다.

인구는 강화군이 67,358명, 옹진군 20,826명 인천시 인구의 약 3%를 차지하고 있으나 면적으로는 강화군 39.5%(411.35 ㎢), 옹진군 16.5%(172.07 ㎢)로 인천시 전체 면적의 56%를 차지하고 있다. 수산물 어획고는 35,201M/T(금액 186,874,437,000원)이며, 갑각류 51.7%, 패류 25.9%, 어류 17.6%, 연체동물 2.1%, 해조류 1.0%, 천해양식업1.2% 순으로 나타났다(2013년).
 
다음 표는 2008년 1월부터 2012년 12월 까지 최근 5년간 옹진군 관광객 입도현황(선주민 제외)이다.

 
관광객이 제일 많은 8월에 북도면은 평균 53,000명, 자월면은 35,000명 이상으로 방문하고 있고 최근 5년 동안에 평균유지하고 있다.

백령면은 2010년부터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 덕적면은 2009년 8월 약 55,257명으로 최고를 기록하였으나 그 이후 계속 하강하여 2012년 8월 21,097명으로 38% 감소하였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섬에서 태어나 살고 계시는 어른들의 인터뷰를 통해 섬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러시아의 구전문학 연구자 프로프는 ‘구전문학은 귀중한 사료(史料)가 되며, 그 사료에 바탕을 두고 민족지학자가 사회체제나 민중이라는 관념을 재구성해 갈 수 있다. 역사적 연구가 요구되는 구전문학은 그 자체가 귀중한 역사적 민족지학적 사료가 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전국 어선들이 다 모여들기 때문에 항내가 배가 이중 삼중으로 되었죠. 배가 천여척이 모여들고 그리고 술집들이 따라 들어왔어요. 그래서 조기파시가 형성 되었는데 어른들이 제2의 서울이라고 했어요. 거리에 사람들이 꽉 차서 애들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어요. 60년대에도 여기가 다방이 7개-8개가 있었어요. 그 당시 연평도엔 맥주홀이 있다는 말이 있었지요(연평도, 조홍준 79세).

우리나라 조기 어획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기 어획고를 보면 1957년 전국 34,872톤으로 인천이 평균 47%를(16,217톤) 차지하였다.
조홍준 어르신 말씀처럼 1960년대 중반까지는 연평도는 조기가 풍년이었다. 그러나 1969년 20%, 1981년 4%으로 계속 감소하여 2010년 2%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인천앞바다(특히 연평도)에서 조기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가?

따라서 필자는 섬에서 태어나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섬의 역사, 문화, 생활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나아가 각종데이터 및 자료를 통해 이를 증명하고자 한다.

섬 주민들의 생생한 인터뷰 및 데이터를 통해 인천 섬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보자. 예상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연평도, 조기가 사라진 이유는?
2. 연평도, 꽃게
3. 덕적도와 굴업도, 민어파시
4. 굴업도, 땅콩농사
5. 덕적도, 마을 이상향을 실천하신 최분도 신부님
6. 문갑도와 울도, 새우어장
7. 울도, 보물선
8. 백아도, 약초식물의 보고와 덕적군도
9. 대청도, 고래잡이와 홍어
10. 대청도, 몽고 원나라 순제의 궁궐터
11. 백령도, 심청이는 임당수에 몸을 던지지 않았다
12. 이작도와 자월도, 어촌?어부체험
13. 무인도, 사승봉도와 선갑도
14. 장봉도, 김
15. 시인을 만나다, 기형도(연평도)와 이세기(문갑도)
16. 납북어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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