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신나는 그룹홈' 맏이 현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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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신나는 그룹홈' 맏이 현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8.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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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밝은얼굴찾아주기사업으로 소이증 수술한 열아홉 현수

그룹홈은 부모의 방임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양육이 불가능하다고 (위원회를 통해) 판정 받은 가정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현수 역시 부모의 이혼 후 11세에 인천시 아동청소년희망재단 ‘남구 신나는 그룹홈’에 입소했다. 그룹홈은 보육원보다 좀 더 작은 단위로 ‘시설’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소규모로 지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이들은 ‘남구 신나는 그룹홈’ 길옥련 원장을 ‘이모’라고 부르며 가족처럼 지낸다.

길 원장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그룹홈을 퇴소하는 현수(가명. 고3)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소이증을 앓고 있는 현수에게 수술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현수의 귀를 고쳐줄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했지만 몇 천 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는 큰 부담이었고, 인천에서는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삼성 밝은얼굴찾아주기사업.

길 원장은 밝은얼굴찾아주기사업으로 현수가 수술을 받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는 현수 같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평생 움츠리거나 절망 속에 살아갈지 모를 이들에게 밝은 얼굴을 찾아주는 일은 한 사람을 돕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그 친구들이 자립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많이 할 테니까요.” 길 원장은 이런 일이 많이 알려져 더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현수는 지난 6월 삼성서울병원 별관 성형외과에서 소이증 수술을 받았다. 소이증은 귓바퀴 형성부전으로 귀에 귓불만 있고 다른 부분은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귀 재건 수술은 보통 만 8세 때 시작하는데, 명치 주변에 있는 연골(6,7,8,9번 갈비뼈에 붙어있는 연골)로 만들기 때문에 연골 이식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해야 한다. 정상적인 반대편 귀가 어른 귀 크기로 자라나 여기에 맞춰 적당한 크기의 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수의 경우 수술이 많이 늦은 편으로 이미 물렁뼈가 딱딱해지면서 석회화된 상태라 귀를 조각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가슴 연골 채취 1시간, 연골 조각 1시간, 귓볼을 제 위치로 돌리고 연골 넣을 자리를 만드는 데 1시간 정도를 분배해 4시간에 걸쳐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 후 일주일간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고 이후 1주는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의 도움으로 인천의료원에서 안정을 취했다. 1차 수술이 끝난 것뿐, 1년 후 귓구멍을 만들어 주는 ‘외이도 재건술’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머리도 묶을 수 있고, 바람에 머리칼이 날려 귀가 보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바이올린, 현수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매개체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성격이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겼어요. 4학년 때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해 성적이 거의 바닥권이었는데 6학년 때 올백을 맞아서 원장님이 엄청 기뻐하셨죠. 바이올린으로 자존감을 높아지니까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그룹홈 식구들과 앙상블로 여기저기 공연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격려를 받았거든요. 공연 레파토리가 30개도 넘어요.”

바이올린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현수가 세상으로 한 걸음 나올 수 있게 만든 매개체였다. 길 원장은 1995년부터 시온 선교 오케스트라 단장을 맡아왔으며, 2012년부터는 해오름오케스트라 단장을 동시 역임해오고 있다. 그룹홈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정서 안정을 위해 악기를 가르쳤고, 현수에게도 바이올린을 권했다.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했던 현수에게 바이올린은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고등학교에서 미용을 전공하고 있는 현수는 헤어디자이너가 꿈이다.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미용국가고시 합격 통보도 받았다. 길 원장은 현수가 공부도 잘하지만 손 재주가 워낙 좋아 감각적인 헤어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해요. 머리도 잘 만지고, 네일아트도 잘하고, 집안에 뭐가 고장 나면 그것도 뚝딱 잘 고쳐요.”

“독립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없지만 졸업하면 서울로 갈 거예요. 강남이나 압구정에서 (미용 일을) 시작하려고요. 큰 데 있다가 작은 데로 갈 수는 있지만 그 반대는 힘들잖아요. 큰 데서 많이 배워보고 싶어요.”

아르바이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미용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현수는 현장에서 익히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에서 벗어난 것일까 봐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고 싶어 꾹 참았다. 여행은 그룹홈에서 자주 다녔다. 얼마 전에는 태안에도 갔다왔다. 가본 곳 중에는 제주도가 가장 좋았다.

“프랑스에 가서 헤어디자인을 배우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프랑스나 서구는 확실히 헤어에 미(美)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고, 일본은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요. 저는 그 사람의 성격과 스타일에 맞는 아름다운 머리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헤어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잖아요.”

열아홉, 그 나이에는 갖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현수는 특별히 갖고 싶은 건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온통 머리, 헤어디자이너에 관한 생각뿐이다. 졸업작품을 발표한 뒤 11월부터는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데, 그때부터 바로 일을 할 생각이다. 떨리지만 혼자만의 새로운 생활과 자기 꿈을 펼치는 데 대한 기대가 크다.

“꿈이요? 유명해지기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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