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이야기, 그 작은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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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이야기, 그 작은 출발
  • 이수석(인천교육연구소, 석남중학교 교사)
  • 승인 2014.08.20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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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64)


2013년 학생의 날, 스스럼 없이 자신들의 바람을 드러내는 신흥중학교 학생들 (*사진출처=전교조 인천지부) 

선생님!

전 한동안 명예퇴직을 생각했었어요. 아이들이 너무 변했거든요.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제가 이해를 못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남은 교직생활을 정리해야겠어요.

독서교육과 글쓰기 교육, 그리고 토의와 토론 교육에 중점을 두어 학생들과 놀아야겠어요.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도 나잇값(?) 못하고 아이들처럼 노는 게 저잖아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반응하며 아이들처럼 행동했죠. 그래서 아이들이 저를 따르고 좋아하나 봐요. 우려를 하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셨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배우러 다니고, 문화생활도 하면서 언제 책을 읽고 글을 쓰느냐고 선생님이 물으셨던 적이 있죠? 선생님과 건배를 하면서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죠. 제겐 아바타가 있는데, 그 아바타가 저 대신 공부하고 책을 쓴다고.

선생님도 알다시피, 저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해요. 그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많은 지혜와 지식을 얻죠. 다음 날 아침에, 또는 잠시 생각에 잠길 때, 대화 나누었던 내용이 생각나면 메모를 하고, 그 메모한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고 필요한 지식을 서핑하지요. 이게 제가 하는 공부방법이에요. 제가 썼던 책들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만들어졌어요. 요즘에는 텔레비전 특강을 들으면서 운동도 해요. 친구들이 하나 둘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하고, 또 어떤 친구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도 했으니까요. 건강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건강해야 보다 많은 것을 아이들과 저를 알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제는 저만의 진짜 책을 써 볼 생각이에요. 1만 시간의 법칙을 실천해 보려고요. 매일매일 1,000자 되는 신문사설 베껴 쓰기를 연습할 거예요. 글쓰기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기자들의 사설을 베껴쓰다보면, 문장공부와 글쓰기, 시사상식과 이슈에 대해서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와 같은 글쓰기 훈련을 자발적으로 지원한 석남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할 거예요. 10년 뒤에는 그 아이들 가운데 위대한 사상가나 시인과 소설가가 나올지도 모르죠. 물론 이것은 저 혼자만이 할 수는 없겠죠. 석남중학교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할 거예요.

세월이 많이 변했어요. 과거에는 이단아로 생각되었던 사람들과 생각이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하는 선생님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커 가고 있네요. 사회 곳곳에서도 발상의 전환, 의식의 전환, 생각의 전환을 독려하고 있네요. 이제는 선생님과 제가 잘하는 것을 펼쳐야 할 때인 거 같아요. 청함을 받을 때, 요청의 박수를 받을 때 무대에 올라야 하겠죠.

제가 다른 선생님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은,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죠.

“왜 그래야 하죠? 다르게 할 수는 없는 가요? 발상의 전환을 하면 오히려 쉽게 풀릴 문제 같은데요. 학생의 눈으로 바라보면 저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돼요. 선생님도 초중고 때 머리 염색을 해 보셨잖아요. 선생님은 했었는데, 쟤들은 왜 안 되는 거죠? 한 학년의 소풍을 모두 한 곳으로 가야만 하나요? 반별이나 2~3개 반의 테마 여행식의 소풍도 괜찮잖아요. 하던 때로 따라하면 중간은 한다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골치 아픈 일을 하지 말자고요? 직무유기 아닌가요? 콜럼버스가 위대한 건, 달걀을 뚫어 세운 게 아니잖아요? 그가 위대한 것은 처음으로 발상의 전환을 했고, 그것을 실천한 거라고 배웠습니다. 실패할까 두려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짓는 거 아닌가요?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건 고문이잖아요.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살라고 가르치셨나요? 때로는 반항하고 저항하라, 다르게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모두가 ‘예’라며 고개를 끄떡이며 찬성할 때, ‘아니요’라며 손을 들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모두가 ‘아니오’라며 반대할 때, ‘예’라며 찬성하며 친구들을 설득하고 소통하라고도 하셨잖아요. 이게 교육이라고도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선생님은 선생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고, 당신의 기준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하시는지요? 왜 가만히 움직이지 말고, 중간만 가라고 하시는지요?

교육은 정답이 없는 거 같아요. 아니 인생 자체가 정답이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모범답안은 있는 거 같아요. 저의 행동과 말과 사상-교육철학을 보고 듣고 느끼는 학생들이 선택하겠죠. 어떻게 살 것인가? 이수석 선생님처럼 살아도 괜찮겠다. 아니면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도 판단하겠죠.

제가 아이들에게 인사를 잘 하는 교사로 통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존경하는 윤리선생님이 계셨어요. 선생님을 뵈면 정성을 다해 배꼽인사를 했지요.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며 눈이 마주쳤는데도, 미소 한 번 안 주시고 외면하셨던 게 몇 번 있었어요. 상처받은 저는 그 선생님 같은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죠. 그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저는 자상한 아빠, 아내의 수다를 잘 들어 주는 남편, 인사 잘하고 받아주는 선생님이 될 수 있었죠.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은 참이면서도 거짓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찾아내어 발현시켜 줄 수 있는 교사를 만나지 못하면 무용지물의 능력이 되겠죠. 하지만 그런 능력을 알아보고 키워 낼 능력은 없지만 수많은 학생에게 배움의 즐거움, 깨달음의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영감을 불어 넣는 수업을 하는 교사는 스승의 능력을 뛰어넘는 학생들을 키워낼 수 있겠죠. 인류의 역사가 그래도 과거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질적으로 고양되는 이유는 바로, 스승의 능력을 뛰어 넘는 학생들 때문이었죠. 저는 학생들이 저를 밟고 넘어가길 바라며 오늘도 교단에 선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어느 순간 쏟아질 영감과 자존감을 기대하며 수업을 시작합니다.

선생님!

이제 박수칠 때 무대에 오르자고요. 물론 예전부터 오르내렸던 교단이었지만,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교단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내일 뜨는 태양은 오늘의 태양과는 다르니까요.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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