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잘 사는 마을, 도시에서는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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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잘 사는 마을, 도시에서는 불가능한가?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1.12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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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다락, 충남 홍성 홍동마을 방문기

협동조합 ‘다락’을 만든 김숙경 이사장은 2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바른 먹거리에 관심을 가졌다. 남구 학익동 신동아아파트 단지 내에서 공동구매 참여를 외치며 건강한 우리 농산물을 먹자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지난해 4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 올 2월 열 명의 조합원이 출자금 55만원씩을 내고 ‘다락’을 발족했다. 김 이사장은 비전을 알리고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까지가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라는 조언도 하지만 조합원들 스스로가 주인이 될 수 있는 협동조합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농민을 지지해줘야 농업이 살아나잖아요. 대기업이 유통을 지배하게 놔두면 안 되죠. 다락의 주요 아이템은 공동구매와 공유경제예요. 생협을 통해 바르고 안전한 먹거리를 구입하고 집집마다 살 필요가 없는 것을 함께 나누면서 소비를 줄이죠.“

‘다락’은 지원금 3천만원으로 소형가전(드릴, 침대청소기), 어린이전집, 건조기 등을 구입해 적은 가격을 받고 주민들에게 대여해준다. 지원금의 일부를 떼어 아파트상가 보증금도 냈다. 현재 관리비만 지불하면서 저렴하게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다.

김숙경 이사장을 비롯해 '항아리(항상 아름다운 마을)' 활동가 25여명과 함께 귀농, 귀촌의 메카 충남 홍성 홍동마을을 찾았다.
 


홍동마을은 교육, 유기농법,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롤 모델로 자리 잡았다. 충남 홍성군은 유기농업 특구 전국 8위고, 좀 더 폭을 좁히면 홍동면은 유기농 생산량 48%로 전국 1위를 자랑한다.

이 지역은 농약 안 쓰는 마을, 농약을 팔지 않는 농협,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탐험 프로그램을 내세운다. 주형로 마을활력소 대표는 '더불어 사는 마을, 생각하는 농민'이라는 주제로 1시간 반 가량 홍동마을의 탄생하게 된 배경과 성공사례로 자리 잡게 된 비결을 설명했다.

지난 10일 한중FTA가 타결됐지만 주 대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좋다, 한번 해보자"는 심정이다. 그는 “체결은 중요하지 않다. 자세가 중요하다. 정부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게 아닌,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과격함보다는 타협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 주형로 마을활력소 대표가 강의를 하고 있다.


주 대표는 홍성에서 태어나 쉰다섯 해를 살았다. 한 번도 동네를 떠나 본 적이 없다. 풀무학교(고등과정)를 졸업하고 스무 살부터 만 35년 동안 농업에 종사했다. 고2때 부천 소사에서 열린 일본인 고다니 준이치의 강의를 듣고 유기농법 실천을 결심했다. 고다니 준이치는 고베에서 배로 1시간 떨어져 있는 아와지마 섬에 원숭이센터를 설립, 3대에 걸쳐 원숭이를 대상으로 농약을 친 것과 유기농으로 재배한 먹거리를 실험했다. 지속적으로 농약에 노출된 원숭이의 약 20%가 불구가 됐다는 사례를 전해들은 주 대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주 대표는 1977년에 유기농벼농사를 시작하고 1994년에 오리농법을 도입했다. “오리농법이라고?” 당시 마을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서 미쳤다고 놀려댔다. 그러나 오리농법이 화제가 돼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경실련에서 초청강연을 하면서 1995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교육과 협동조합, 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똥개도 자기 지역에선 50%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어요. 귀농한다면서 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게 다 손가락과 주둥이 때문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학교선생하면서 부모 모시고 살면 '왜 아직 아파트 한 채도 못 사고 저러고 사나' 손가락질해요. 고향으로 돌아가면 '저 사람 망해서 왔대' 뒷말을 늘어놓고요.” 1년만 눈 감고 살아라, 고향으로 돌아가라, 주 대표의 조언이다.

다른 지역의 귀농자가 50-70대인 데 비해 홍성의 귀농자는 30대부터 50대까지 비교적 젊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오는 경우도 있고 더 늦기 전에 자녀에게 자연을 접하게 해주고 싶다며 오기도 한다.

홍동면은 면적 38.54㎢에 인구 4천명, 1,618세대가 살고 있다. 애들 울음소리가 마을에 울리는, 그런 일상이 어색하지 않은 동네다. 'city'가 아닌 'downtown'임에도 불구하고 빈 집이 없을 정도로 귀농 지역으로 인기가 많다.

마을에는 유아를 위한 어린이집부터 대학교까지 있다. 신나는 어린이집(12-24개월. 저소득 다문화가정 우선), 갓골어린이집(만2세-만5세. 영유아 생태교육), 홍동초등학교(1922년 4월 개교. 농산어촌 전원학교 운영), 홍동중학교(1971년 3월 개교. 진로, 환경친화적, 소통 교육),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1958년 4월 개교. 자급자족) 그리고 2년제 대학과정인 풀무고등학교 생태농업전공과정이 운영된다.

대학은 1년에 10명이 정원이 소규모 학교로 2001년 3월 개교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식품을 먹고, 일부는 팔아서 얻은 소득을 학교 운영비로 쓴다. 그해 수입이 많지 않아 운영비가 부족하면 학생들에게 조금씩 걷는다. 서울대 농과대를 졸업하고 풀무학교에 온 졸업생도 2명이나 된다.

주형로 대표의 꿈은 교육부 지침을 따라야하는 학교가 아닌 농업의 정통성을 살리고 인재육성을 하는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벽돌, 나무, 미생물, 가공, 용접을 배워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교육을 1차 목표로 하려고 한다. 학벌보다 '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농업의 교육적 가치가 인정받는 학교를 만들고자한다.

"교육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닮아가는 겁니다. 부모나 교사가 모범을 보이지 않고 아이들에게만 실천을 강요하면 제대로 지켜질 리 없죠. 농업과 농촌이 다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은 협동뿐이에요."

주 대표는 장애인과 다문화, 노인, 아이, 모두가 섞이며 아름답게 어울리는 마을, 개개인이 주인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인 마을을 소망한다.
 

▲ '밝맑도서관' 내부
 

‘밝맑도서관’ 풀무고등학교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5년간의 준비 끝에 만들어졌다. 군,도에서 각각 천만원씩 후원받고 지역단체와 개인의 도움을 받아 사용하는 사람 모두가 주인인 도서관을 유지하고 있다. 정적인 도서관이 아니라 문화, 예술공간, 교육과 모임장소가 열리는 곳으로 가꿔 나간다.
 

▲ 출판사겸 헌책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항아리' 회원들
 

‘그물코출판사+느티나무헌책방’ 2004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개인기업이지만 지역 분들이 출자해서 협동조합처럼 운영한다. 가게는 무인으로 꾸리며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는다. 손님은 스스로 장부에 살 물건을 기입하고 함에 책값을 통을 넣는다.

이날 홍동마을 답사는 지역에서 생산된 푸드마켓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나만 잘 살자는 이기심, 이익만을 좇는 것이 아닌 더불어 잘 사는 ‘협동’ 정신이 도심에서도 되살아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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