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懲毖) - 책임의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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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懲毖) - 책임의 표준
  •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준비위원장
  • 승인 2014.11.13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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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법과 인권 이야기] 7

 

KBS가 내년 1월 대하역사드라마 “징비록”을 방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잘못을) 뉘우쳐 바로 잡고 (올 일을) 삼간다”는 ‘징비(懲毖)’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실천되지 않는 말이다. 이 징비록은 조일 7년 전쟁(임진왜란)의 전란의 기록이자 한 정치인의 역사책임을 실천한 성과라고 본다. 확실히 지금은 징비가 필요하고 그래서 징비의 계절이기도 하다.


올해도 벌써 결산할 때다.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이 해도 막바지로 간다. 자기 생존을 위해 승객에 대한 보호에 대한 의식도 책임 있는 행동도 없었던 그 배 선장은 36년 형을 선고 받았다. 책임질 사람들은 죄다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잘못을 뉘우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선 세월호 대참사 자체에 대한 종합적인 기록도 없다. 어쨌든 가을은 징비의 계절처럼 보인다.


일제강점기, 해방, 분단, 전쟁, 개발형 독재, 민주화운동과 정권교체, 신자유주의 정권 출현 등으로 이어져온 우리 사회도 징비의 계절을 맞았다. 세월호 대참사를 보면서 책임지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는 없었다. 누구 하나 ‘정무적’ 책임을 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운영체계는 이미 쇠약하고 생기를 잃었다. 송파 세 모녀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일가족이, 아파트 관리원이 자살했다. 자살율 1위는 만성적인 뉴스꺼리일 뿐이다. 징비할 것은 널려 있는데 징비해야 할 객관적인 징후들이 속출하는데도 징비할 주체도 표준도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민은 정치인과 공직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타락한 것이다. 각자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면 되는 사회가 됐다. 바꿔 말하면 책임에 대한 표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책임을 제기하면 정치문제로 쉽게 대체한다.


정치를 바로 잡으려면 정치인을 잘 다스려야 한다. 책임은 남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사태나 상황에 대응하는 힘이다. 책임을 사법적인 처벌로 국한하는 것은 남 탓하는 자세다. 책임을 자기 주도적으로 ‘지는’ 행동, 이것이 바로 ‘익숙한 무책임’에서 벗어나는 윤리적 준칙이다.


정치적 책임의 표준 약관의 바탕에는 ‘징비’의 원칙이 있다. 잘못에 대한 뉘우침과 이를 바로 잡으려는 지혜와 의지,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도록 진지하게 통찰하고 역량을 대비하는 일이 징비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반성, 시정, 역량 – 이 세 가지다. 반성 없이 시정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시정 없는 반성은 공허한 바람일 뿐이다. 반성 없는 역량의 강화는 과거를 연장시키는 변명에 불과하다. 오늘 고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할 역량을 갖춘다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반성, 시정, 역량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책임은 반성 않는 오만한 자, 시정하지 못하는 무능한 자, 대비하지 않는 영합주의자와는 대척에 있다.


책임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질서에서 살 권리’의 다른 표현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국민적인 정책에 침묵하고 차별과 혐오에 눈 감고 등돌리는 사이에 민주와 인권의 질서는 사라진다. ‘징비’는 들어서 익숙한 관성적인 단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책임의 표준이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다. 가을은 징비의 시간이다. 우리는 오만한 자, 무능한 자, 영합주의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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