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연미'가 선보인 연극 ‘소년B’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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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연미'가 선보인 연극 ‘소년B’ 관람기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1.16 23: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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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의 인천문화 관람기' 1


건방진 십대, 불만 많은 중학생. 포스터의 첫 느낌은 그랬다. 자기가 다 자란 줄 아는 시커멓고 머리 큰 남학생. 삐딱한 시선에서 좀처럼 따뜻함을 찾을 수 없어 ‘감동은 됐고 빤한 얘기만 반복하지 말아다오’하고 바랐다. 사회 고발도 좋고, 중2병을 앓는 아이들의 고민도 좋아, 짝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지, 학교 내 폭력이나 계급, 왕따 이야기는 또 들어도 충격적일 거야. ‘어쨌든 지루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늦잠 자서 엄마한테 잔소리 듣는 중학생, 개그맨이 되고 싶어하는 중학생, 예쁜 여학생의 인사로 하루가 즐거운 중학생, ‘박영진’은 평범해 보였다. 힘 있는 아이의 무시가 괴롭지만 말 못하고, 외계인의 존재에 신경 쓰고, 교문 앞에서 벌어지는 동식물의 죽음이 불편하지만, 더 센 거 없어? ‘특별하길 바라지만 특별할 수 없는’ 영진이가 뭔가 ‘사건’을 만들어냈으면 했다.

하지만 연극 시작 전 남자가 고백한 것처럼 소년B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자기만의 스토리는 있는 내 이야기’다. 그래서 재미 없었느냐고? 시시했느냐고? 지루했느냐고? 아니. 전혀.

성장통을 겪는가 싶던 열네 살 ‘박영진’이 훌쩍 서른일곱이 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꿈과 현실이 뒤섞인다. 친구들은 모두 달라졌는데, 심지어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나만 그대로다. 개그맨은 되지 못하고 작은 극단에서 배우를 하고 있는 ‘나’. “배우라고? 멋진데?” 친구들의 인사도 반갑지 않고 외롭기만 하다.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특별하다고 믿고 있는’ 자신이 가엾다. 믿지 않을 수 없잖아, 나를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데. 나를 토닥여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쓸쓸하지만 어렴풋이 ‘그런 게 인생이잖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툭툭, ‘힘 내, 영진아’ 눈물을 삼킨다.

무대는 특별한 장치 없이 몇 개의 사물만으로 학교, 집, 버스 안, 식당 그리고 공원으로 변한다. 극을 이끄는 ‘남자1(박영진)’의 이광용을 제외한 배우 이하늬, 한상완, 김덕환, 정윤경, 유진영은 1인 다역을 하며 아이와 어른, 지나간 시간과 여기/지금을 오간다. 덕분에 덜 지루했는데, 통시적 구성에서 살짝 벗어난 연출이 복잡하다고 느낀 관객도 있었을 것 같다.

‘소년B’는 일본의 극작가 시바 유키오의 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작가는 5년 전 동갑내기 극작가들과 작은 연극 페스티벌을 기획했고, 축제 테마를 ‘열네 살’로 정한 뒤 ‘소년B’를 완성해 무대에 올렸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자아가 싹트고,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한 나이, 어른이 되어서도 중학교 2학년생의 감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을 놀리는 ‘중2병’이라는 말도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열네 살’과의 결별을 그린 작품이다. 지금의 ‘열네 살’에게, 예전의 ‘열네 살’에게, 제가 보내는 응원과 작별인사를 소리쳐 외친 작품이다.”

일본에서 공연해 호평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극단 연미가 처음 무대에 올렸다. 여주인공이 YB(윤도현밴드)를 좋아하고, 마지막에 배우들이 모두 ‘나는 나비’를 열창하는 등 우리 식에 맞게 연출했다. “이 작품을 통해 고독한 일본의 젊은 세대와 한국의 젊은 세대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공감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라는 시바 유키오의 바람을 한국의 이성권 연출가가 잘 살렸다.

“내 얘기는 여기서 끝나. 내 스토리, 내 중심은 언제나 난데,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내가 아니야. 그래도 난 이제 그런 걸로 고민 안 해. 난 이제 옛날의 내가 아니니까.”

연극은 빤하지도 않고, 값싼 감동을 유도하지도 않았다. 배우들은 코믹과 슬픔의 정서를 적절한 온도로 조절했으며, 관객도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소년B’는 극장 떼아뜨르 다락에서 지난 11일부터 16일까지 [인천in] 후원독자 특별할인으로 진행됐다. 떼아뜨르 다락은 12월 말 경 새로운 작품으로 [인천in] 독자를 위한 할인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소년B’는 오는 20일부터 23일까지 문학시어터에서 열리는 ‘두근두근 연극전’에서 다시 한 번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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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윤 2014-11-17 12:14:24
늘 그렇듯 가난한 극단의 연극을 보는 것은 불편하다.
제 값을 내고 보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후원이나 무료로 보는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지켜나가는 그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지 못한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아무튼 그들이 꿈꾸는 것들을 이루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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